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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는 29일 지역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신교 옛터에서 표지석 제막식을 가졌다.
▲ 신교 표지석 제막식 종로구는 29일 지역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신교 옛터에서 표지석 제막식을 가졌다.
ⓒ 박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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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복원할 신교제작도의 전후면 청사진 모습이다.
▲ 신교복원도 앞으로 복원할 신교제작도의 전후면 청사진 모습이다.
ⓒ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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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구청장 김영종)는 8월 29일 오후 2시 신교동(新橋洞)의 유래가 된 신교(新橋) 터 안내판 제막식을 신교동 교차로 주변인 신교동 60-4 옛터에서 지역 주민 약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행사를 가졌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인사말에서 "우리 주위의 잊혀진 조상들의 흔적을 되찾음으로써 문화민족으로써 자긍심을 되찾고, 향토 문화재에 대한 지역 주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홍보의 기회를 통해 전통을 아끼고 사랑하는 문화가 더욱 정착되기를 바라며, 이를 확산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경술국치 107년이 되는 오늘 일제 식민지 하에 없어진 신교가 그림으로나마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선상선 종로구 부의장은 "현실적으로 복원이 어려운 문화재는 옛 사진 등을 활용하여 원래의 모습을 알려야 한다"고 하였다.

한편 종로구청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옛 사진을 활용한 안내판이 신교동에 만들어진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신교 복원 후 상상도 모습이다.
▲ 신교 복원 상상도 신교 복원 후 상상도 모습이다.
ⓒ 종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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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는 청계천 발원지인 백운동천(白雲洞川) 상류에 있었던 돌다리로 선희궁(宣禧宮)과 경복궁 사이를 흐르는 백운동천의 가장 북쪽에 위치했었다.

영조는 1764년(영조 40)에 자신의 후궁이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생모인 영빈이씨(暎嬪李氏)가 죽자 이듬해(1786) 의열(義烈)이라는 시호를 추증하고 사당의 명칭을 의열묘(義烈廟 : 선희궁의 전신)라고 명명했다. 이때 영조는 의열묘와 생모인 숙빈최씨(淑嬪崔氏) 사당인 육상궁(毓祥宮) 참배의 편리를 위해 새 다리를 건설한 것으로 전해온다.

새다리라고도 하는 신교로 인해 1894년 갑오개혁 때 이 지역 동명이 다리 이름을 따서 신교동이 되었다.

1909년-1927년 사이 독일 선교단이 촬영한 신교의 모습. 
뒷쪽으로 북악산 전경이 손에 잡힐듯 다가온다. 독일 성베네딕토 상트 오리엔탈 수도원 소장.
▲ 신교 옛 모습 1909년-1927년 사이 독일 선교단이 촬영한 신교의 모습. 뒷쪽으로 북악산 전경이 손에 잡힐듯 다가온다. 독일 성베네딕토 상트 오리엔탈 수도원 소장.
ⓒ 종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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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1927년 독일 선교단이 촬영한 신교 근경. 
독일 성베네딕토 상트 오리엔탈 수도원 소장.
▲ 옛 신교의 근경 1909년-1927년 독일 선교단이 촬영한 신교 근경. 독일 성베네딕토 상트 오리엔탈 수도원 소장.
ⓒ 종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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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는 1760년경에 제작된 <도성대지도>에는 표기되지 않았으나 1800년 이후에 제작된 <한양도성도(18세기 말-19세기 초)>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후 <首善全圖(1840년)> <청구도(1846-1849)> <수선총도(19세기 중엽) <슈션젼도(1892)>에 연이어 표시된다. 1911년 제작된 <경성부시가도>에는 오늘날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 있었으며, 1925년부터 시행된 복개공사로 인해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청운초등학교 운동장 화단에는 당시 신교에 사용되었던 난간석 6개(엄지기둥 1개, 귀틀석을 끼울 수 있는 난간석 4개, 미확인 난간석 1개)가 남아 있다.

한양도성도(18세기 말-19세기 초)에 최초로 표기된 신교의 모습이다.
▲ 한양도성도의 신교 표기 모습 한양도성도(18세기 말-19세기 초)에 최초로 표기된 신교의 모습이다.
ⓒ 종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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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초등학교 운동장 화단에 남아 있는 난간석 부재 6개의 모습이다.
▲ 잔존한 신교 난간석 청운초등학교 운동장 화단에 남아 있는 난간석 부재 6개의 모습이다.
ⓒ 박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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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에서는 2016년 신교에 대한 학술용역을 실시했고, 이 용역을 토대로 안내판을 설치했으며, 앞으로 다리 복원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이번 신교 제막식을 통해 지역주민의 향토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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