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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으로 가는 25번 버스에 올라탄다. '부동산' 문 열러 갈 시간이다. 시장에 돈 많고 놀기 바쁜 할아버지들은 그를 아줌마라 부른다.

"나쁘지 않지만 좋지도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사장님이라 부른다. 그렇게 불린지 17년이 됐다. 최현정(가명∙50)씨는 이제 사장님 소리가 익숙하다.

그가 뛰어든 부동산 중개업, 결코 쉽지 않았다

버스 계단을 오르는데 그의 샌들에서 또각또각 소리가 난다. 높이 6.5cm인 신발 굽은 '사장님'의 자존심이다. 맨 뒷자리에 앉은 그는 핸드폰으로 기사를 읽는다. 주로 정치∙사회 뉴스를 본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이후로 기사 읽는 게 습관이 됐다. 경제가 나아질까, 경기가 살아날까, 기대를 품고 뉴스를 본다. 사무실에 도착하는 25분 동안, 가장 댓글 많이 달린 기사 1위부터 10위까지 다 읽을 것이다.

최씨의 사무실은 거대한 가방 판매점과 체육용품점 틈에 끼어 있다. 너비 약 10제곱미터로, 근처 상가에서 제일 작다. 사람들이 사무실을 못 보고 지나칠까봐, 그래도 간판은 최대한 큰 걸로 달았다.

문 열고 들어가면 양 옆의 벽이 지도로 꽉 찼다. 왼편 벽에는 수원시가 있다. 오른편에는 전국, 경기도, 팔달구, 시장 점포가 다 있다. 양 옆 지도에 펼쳐진 수많은 부동산 중에서 최씨가 계약한 곳은 우주 속 먼지만큼 작다.

 수원시 팔달구와 시장의 점포 배치도다. 지도를 본 최씨는 여태 계약한 부동산이 얼마 없다며 아쉬워 했다.
 수원시 팔달구와 시장의 점포 배치도다. 지도를 본 최씨는 여태 계약한 부동산이 얼마 없다며 아쉬워 했다.
ⓒ 김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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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에는 다른 부동산 중개사무소의 실장으로 있었다. 그때는 나중에 사장이 되면 우주 먼지보다는 많이 계약할 줄로 기대했다. 당시 그는 직책이 실장이었지만, 일찍 출근해서 바닥 쓸고 손님 커피 타주는 일을 주로 했다. 그곳 사장님은 잘 될 때 월 500만 원을 벌었지만, 최씨는 월급 70만 원을 받았다. 두 살 난 아들의 분유 값과 기저귀 값까지 대기에 70만 원은 턱없이 모자랐다. 밤마다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공부를 했다. 사장님이 되었다.

 "내리막길을 걷는 기분이지."

사장님이 되고서 뛰어든 부동산 중개업 시장은 쉽지 않았다.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제가 생기면서 투기가 줄었는데, 고객도 팍 줄었다. 손님은 안 오고, 그 대신 어느 날 사기꾼이 찾아왔다.

최씨는 그가 사기꾼인줄 몰랐다. 그래서 그에게 아파트 분양권을 소개했다. 사기꾼은 하나의 분양권을 여러 사람에게 매도하고 잠적했다. 어떤 손님은 그 일로 4000만 원을 잃었다. 최씨는 '브로커'로 몰려 고소당했다. 1년간의 재판 끝에 그는 승소했지만, 마음속에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생겨났다.

올해는 손님이 거의 없다. 7월 이후로 계약을 못했다. 그는 상가를 전문으로 중개하는데, 장사하려는 사람이 없으니 계약도 못하고 있다.

"나 같아도 인터넷으로 물건 사는데 누가 여기서 장사하겠어."

6월에 원룸 하나 계약한 게 마지막이다. 그 때 수수료로 20만 원을 받았다. 3개월 동안 계약으로 그렇게 벌었다. 가게세만 한 달에 100만 원이다. 이걸로는 버티기 힘들다.

빈 상가를 단기로 임차하는 상인들이 있는데, 그들이 매월 건물주에게 내는 '깔세'에서 최씨는 조금씩 수수료를 떼어 받는다. 선불로 내는 월세를 깔세라고 부른다. 최씨는 거기서 나온 수수료로 겨우 월세를 낸다. 중개업자는 지인이 많아야 '깔세 상인'과 접촉하기 쉽다.

수원에서 17년간 잔뼈가 굵어진 최씨를 깔세 상인들은 자주 찾아온다. 최씨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터를 잡고 짧은 기간 장사를 시작하면, 최씨는 돈을 걷으러 다닌다. 그들 중에는 깔세 주는 것을 계속 미루는 사람도 있다. 그때마다 최씨는 그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피곤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돈을 버니 최씨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뭐든지 닥치면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버텨야지"

최씨가 파는 액세서리 피어싱, 팔찌, 머리핀 등을 판다. 사무소 문을 열면 옆집 사장님의 힘을 빌려서 악세서리들을 바깥에 내놓는다.
▲ 최씨가 파는 액세서리 피어싱, 팔찌, 머리핀 등을 판다. 사무소 문을 열면 옆집 사장님의 힘을 빌려서 악세서리들을 바깥에 내놓는다.
ⓒ 김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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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부동산 중개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다. 그는 액세서리도 판다. 주로 피어싱을 판다. 요새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소리를 듣고 얼른 구해왔다. 그전에는 벨트를 팔았다. 식혜도 팔았다. 저녁 여덟시 반에 사무소 문을 닫는 그는 매일 상가 화장실도 청소한다. 오후 여덟시 반부터 아홉시까지 청소한다. 그 일을 마치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그렇게 해야 먹고 산다.

분유 값 때문에 속 썩인 아들은 고3 수험생이 됐다. 최씨는 고3 아들이 가엾다. 최씨의 눈에 아들은 "온실 속 강아지"다.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모르겠다. 뉴스를 보니 좋은 대학 나와서도 백수가 허다하다. 대학을 가도 걱정, 못 가도 걱정이다. 머지않아 거친 세상에 나올 아들에게 최씨는 자주 조언한다.

"사는 게 약육강식이라 해도, 내가 약해도 버티면 돼. 뭐든지 닥치면 할 수 있어.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버텨야지."

최씨는 나중에 강원도 횡성에서 살고 싶다. 그곳이 고향이다. 지난봄에 그곳에 갔다 왔는데 마음이 편안했다. 그곳에 텃밭이 있는 조그만 시골집을 한 채 사고 싶다. 텃밭에는 고추, 상추, 옥수수, 감자를 심을 것이다. 그걸로 전도 부치고 비빔밥도 해 먹을 것이다. 마을사람들이 놀러오면 그들에게도 좀 나눠 줄 것이다.

요즘 최씨는 문화센터에서 현대 의상 만들기 수업을 듣고 있다. 매주 두 번씩 듣는다. 수업 듣는 날은 한 시간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항상 즐겁다. 그는 옷 만들기를 좋아한다. 옷 만들기 수업을 듣는 것은 그에게 미래 사업을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횡성에 가면 거기서 부동산이랑 옷 수선도 할 거야. 자식한테 눈치 안 보이게 내가 돈 벌어야지."

강인한, 17년 경력의 사장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최현정(가명) 사장님 강원도 횡성과 옷 수선 관련 얘기를 하면서 최씨는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최현정(가명) 사장님 강원도 횡성과 옷 수선 관련 얘기를 하면서 최씨는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김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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