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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갑시다. 앞으로 나와요."

누군가 소리쳤다. 사람들이 세월호를 향해 나아갔다. 해수부가 참관인의 명단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며 목포신항에 모인 2천명을 뙤약볕에 줄 세웠지만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참사 직후 명단조차 제대로 확인 못하던 정부였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상시적인 업무에는 소홀한 국가가 참사의 실상을 목격하고자 하는 국민들에게 여전한 방해세력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8월 26일,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를 참관하러 간 시민들
 8월 26일,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를 참관하러 간 시민들
ⓒ 최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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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6일 토요일 세월호를 보았다. 세월호는 많은 것을 토해낸 채 여전히 누워있었다. 수많은 자동차들, 화물차와 굴착기, 컨테이너, 철근더미 등이 처참하게 일그러져 녹슬어있었다.

그 중 제주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던 권재근님 가족의 살림을 실은 트럭도 있을 것이다. 여행의 설렘이 담긴 짐을 차곡차곡 실은 자가용도 있을 것이다. 생계를 위해 오가는 뱃길에 무심히 꾸린 일감이 가득 실린 화물차들이 있을 것이다.

승객 443명과 선원 33명의 삶, 아니 그 가족과 가족의 가족들의 삶과 미래가 차곡차곡 실려 있었을 것이다. 일상에서 뜯겨져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일그러져 쌓여 있었다.

여러 물건들과 한데 뒤엉킨 채 수북이 쌓여있는 펄더미 안에는 미수습자의 유해가 있을지 몰랐다. 아니, 만져지지 않더라도 3년간 녹아내린 살과 뼈가 뒤엉켜 있을 것이다. 과거 김진태 의원의 발언처럼 가슴에 묻힌 게 아니라 세월호에 묻혀버렸던 것이다.

참사 1년이 지나서야 인양계획이 발표되고 3년이 되고 박근혜가 탄핵된 후에야 세월호가 이곳 목포신항으로 올라왔다. 인양을 저울질하며 미수습자의 수습과 진실 규명을 지연시켜온 사람들이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세월호는 아직도 더 토해낼 것이 많아 보였다.

아직도 토해낼 것이 많은 세월호

 온갖 물건들과 뒤섞인 펄더미. 엄청한 양에도 놀랐지만 저 안에 미수습자의 유해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온갖 물건들과 뒤섞인 펄더미. 엄청한 양에도 놀랐지만 저 안에 미수습자의 유해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 최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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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참히 일그러진 화물차. 그날의 고통을 증언한다.
 처참히 일그러진 화물차. 그날의 고통을 증언한다.
ⓒ 최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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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를 지켜보는 시민들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세월호를 지켜보는 시민들 모두 할 말을 잃었다.
ⓒ 최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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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저 사람 왜 저기 올라가 있어, 위험한데."

한 아이가 말했다. 조사원 한 명이 세월호에 설치된 계단 하나를 오르고 있었다. 그가 계단을 오를수록 배의 크기가 실감났다. 세월호는 거대했다. 그 큰 배가 가라앉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안전불감증의 발전공화국, 이 나라에서는 대형사고가 빈번했다. 백화점이 무너지고 한강다리가 끊어지고 지하철이 폭발하고 배가 가라앉았다. 부실시공, 안전관리 미흡, 사고 후 대응 미비(대응 체계 부재) 등이 공통된 원인이었다.

이렇게 무겁고 큰 배가 물 위에 떠있다는 것은 범상한 일이 아니다. 당연한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인간적인 행위다. 편리함과 진보를 추구하는 인간이 만든 법칙이다. 지켜야 할 규정을 준수해야 최소한의 안전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지키지 않았다. 무리한 증축과 과도한 화물적재를 위해 규정을 어겼다. 안전의 통제범위를 스스로 벗어났다.

평온하게 물살을 가르는 그 배는 위험요소가 가득한 시한폭탄 같은 것이었다. 땅위를 걷듯 물 위를 떠가던 배가 순식간에 침몰하자 우리는 내가 발 딛고 선 땅조차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의심은 정당했으나 국가는 의심하는 자들을 억압했다. 그 억압이 더 큰 위험을 연쇄적으로 불렀다. 수색과 인양, 선체조사작업 등의 위험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졌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목포시내를 행진하는 시민들. 전국에서 2000명이 모였다.
 목포시내를 행진하는 시민들. 전국에서 2000명이 모였다.
ⓒ 최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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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 시내에도 그날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었다. 목포 한국병원은 수많은 생존자, 유가족, 희생자가 거쳐간 곳이다.
 목포 시내에도 그날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었다. 목포 한국병원은 수많은 생존자, 유가족, 희생자가 거쳐간 곳이다.
ⓒ 최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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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신항으로 가기 전 오후 2시 목포역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난겨울 전국에서 불타올랐던 촛불의 기록을 최근에 본 터라 깃발만 봐도 괜히 울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에 이르게 하고 재벌들을 감옥에 가두게 한 촛불의 힘에는 세월호가 있음이 분명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참사의 진상을 밝히겠다는 유가족들, 시신으로도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끈질기게 기다려온 미수습자 가족들의 꺾이지 않은 의지가 세월호를 기억하고 함께 아파하는 힘이 되었다. 그 힘이 부당한 권력에 맞서 촛불을 밝히게 했고 오늘 여기까지 오게 했다.

뙤약볕 아래 목포 시내를 행진하며 만나는 사람과 간판 하나가 모두 예사롭지 않았다. 카페, 해장국집, 미용실 사장님 적어도 네 명 중 한 명은 촛불을 들었을 것이며, 마트의 직원들과 수많은 알바생들도 세월호 희생자와 백남기 농민, 그리고 우리의 팍팍한 삶을 태워 밝히는 촛불을 들었을 것이다(한 통계에 따르면 2016년말 국민의 23.9%가 촛불에 참가했다고 한다).

행진은 터미널 앞에서 마무리되었다. 목포 한국병원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스로 배를 탈출한 생존자 다수가 머물던 곳(당시 다섯 살이던 권지연양이 가족을 모두 잃고 공황상태로 목포한국병원에 입원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가 오열하다 혼절한 가족들이 실려간 곳(아직 돌아오지 못한 양승진 선생님 사모님 유백형님은 생존자 명단을 확인하고 기절해 목포한국병원으로 실려갔다), 수많은 희생자들이 숨을 거둔 상태로 나와 거쳐 간 곳(첫 번째로 사망확인 된 정차웅 학생, 이혜경 학생 등 많은 희생자들은 목포 시내 병원으로 옮겨졌다). 곳곳에 그날 이후의 고통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도...

 끈질기게 기록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문지성의 아빠 문종택 님
 끈질기게 기록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문지성의 아빠 문종택 님
ⓒ 최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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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정부에 인양실패의 책임 또한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양이 지연되면서 증가한 위험과 비용논리에 따른 부실한 계획과 관리, 그로 인해 선체 훼손이 더욱 심해졌고 그 과정에서 미수습자와 증거자료의 유실가능성이 높아졌다.

세월호의 수색, 인양과 선체 조사의 과정 전반에서 우리는 일종의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평범한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이고 전문가나 정부의 조치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세월호가 뭍으로 끌어올려진 게 정부에서 알아서 그냥 해준 일인가. 피눈물 나는 가족들의 싸움과 시민들의 지속적인 연대가 이끌어낸 일이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세월호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그 목소리가 계속되어야만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양승진, 남현철, 박영인, 권재근, 권혁규 다섯 분이 듣고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는 뭍으로 올라왔지만 아직도 그날의 진실을 품은 채 말없이 누워있다.

 양승진 선생님 어서 돌아오세요
 양승진 선생님 어서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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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현철 님 어서 돌아오세요.
 남현철 님 어서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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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인 님 어서 돌아오세요.
 박영인 님 어서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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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근님 어서 돌아오세요.
 권재근님 어서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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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규 님 어서 돌아오세요.
 권혁규 님 어서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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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단원고 희생학생 이혜경의 어머니 유인애 님이 그리움과 아픔을 꾹꾹 눌러 쓴 시집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 가 출간되었습니다. 9월 5일(화) 오후 6시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립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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