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성일의 출세작 <맨발의 청춘>(1964) 한 장면.

배우 신성일의 출세작 <맨발의 청춘>(1964) 한 장면. ⓒ 한국영상자료원


(강)신성일은 데뷔부터 남달랐다. 경상도에서 올라온 20대 초반의 청년 강신영을 눈여겨 본, 당대 최고의 감독 신상옥은 그에게 '(신상옥 감독이 운영하는 영화 제작사) 신필름의 뉴 스타 넘버원'이라는 뜻을 가진 신성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데뷔하자마자 <로맨스 빠빠>(1960) 주역으로 발탁된 신성일의 연기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1964년,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뒤에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가장 독보적인 스타 배우로 우뚝섰다. 신성일은 단순히 잘생기고 멋있는 미남 배우 이미지에 그치지 않았다. 그를 스타로 만든 청춘물에만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경향, 스타일을 가진 영화에 도전했던 배우 신성일은 한국 모더니즘 영화를 대표하는 유일한 얼굴이기도 하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올해 10월 열리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의 주인공은 배우 신성일이다. 너무 유명해서 과소 평가가 된 배우. 젊은 세대에게는 신성일이 영화사에 남긴 업적보다 몇 년 전 그가 스스로 폭로한 과거 스캔들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 이름. 신성일처럼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정작 그가 얼마나 대단한 배우였는지, 그 진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필자도 그랬다. 1968년 만들어진, 신성일의 주연작 <휴일>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휴일>을 보기 전까지, 필자에게 신성일은 1960~1970년대를 풍미한 미남 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출연한 수백편의 영화에서 제목이 뚜렷하게 기억나는 작품은 <맨발의 청춘> 정도 였다.  신성일이 한 때 한국 영화사를 대표하는 굉장한 스타 배우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이상 딱히 관심을 가질 일도 없었다.

그러나 제작년 우연히 이만희 감독의 <휴일>을 보게 되고, 필자는 신성일이라는 배우를 다시 평가하기 시작했다. <휴일>은 신성일 뿐만 아니라, 한국 고전 영화에 대한 총체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인생 영화이지만, 아무리 봐도 <휴일>은 신성일이라는 배우 아니면 그럴 싸하게 흉내도 낼 수 없는, 신성일을 위한, 신성일에 의한 신성일의 대표작이다.

방황하는 청춘의 얼굴에서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상징적 존재로

박찬욱 감독은 신성일을 두고 일본의 미후네 도시로, 프랑스의 알랭 드롱, 미국의 그레고리 펙, 이탈리아의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어깨를 견주는 배우라 평하지만, <맨발의 청춘>이 인기를 끌 당시만 해도 신성일은 일본의 이시하라 유지로와 비견되는 청춘의 얼굴이었다. 오늘날 신성일을 있게한 <맨발의 청춘>이 이시하라 유지로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감독 나카히라 코우의 <진흙투성이의 순정>(1963)에서 영감을 받은 탓도 있겠지만, 낡은 기성 체제에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맞서는 극중 신성일의 무모한 돌진은 박정희 체제에 순응하면서 살아야했던 당시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맨발의 청춘> 성공 이후 신성일은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가 되었고, 무려 506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는 놀라운 대기록을 성취하였다. 그 중에서 배우 신성일의 인장을 뚜렷이 남긴 영화는 모더니즘 계열의 멜로 영화이다. 1960년대 후반, 동시대 서구 감독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잉마르 베르만 등에 영감을 받아 모더니즘 경향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감독들은 언제나 신성일을 찾았다. 신성일이 한국 영화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김수용 감독의 <안개>(1967), 이성구 감독의 <장군의 수염>(1968)에 연이어 주연을 맡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야 많았지만, 신성일 만큼 모더니즘 특유의 우울하고 불안한 방황을 온 몸으로 드러낼 수 있는 배우는 드물었다. 그렇게 신성일은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한국 영화가 대대적으로 몰락기를 겪던 암울한 시절에도 배우 신성일은 건재했다. 그 역시 한국영화의 최전성기로 꼽히는 60년대처럼 많은 히트작을 남길 수 없었지만,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 임권택 감독의 <왕십리>(1976),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1977) 등에 출연하며 한층 성숙해진 연기력을 과시하였다.

다가오는 10월에 열리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신성일이 출연한 수백편의 작품 중 대표작 8편을 꼽아 한국영화회고전을 진행한다. 신성일의 출세작인 <맨발의 청춘>을 비롯하여, 청춘 멜로 드라마 대표작으로 꼽히는 정진우 감독의 <초우>(1966) <안개> <장군의 수염> <휴일>, 신상옥 감독의 사극 영화이자, 1986년 이두용에 의해 리메이크 되기도 했던 <내시>(1968), <별들의 고향>과 함께 중년의 깊이있는 연기를 보여준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5)이 상영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배우 신성일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을 더 보고 싶다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운영하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VOD 서비스를 통해 관람 가능하다. 최근 암투병 사실이 알려져 영화팬들을 안타깝게 한 신성일이 빠른 시일 내 쾌차하여 그를 위해 열리는 회고전 레드카펫을 힘차게 밟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성일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 맨발의 청춘 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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