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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결심공판을 앞둔 7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긴장이 감도는 듯하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결심공판을 앞둔 7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긴장이 감도는 듯하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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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라는 영화가 한때 유행했었다. 라이언 일병 구출 작전이라는 특수임무를 부여받은 소수 정예 부대원들,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전쟁 서사극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8년 작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오마하 해변 전투 장면의 생생한 묘사로 전쟁의 공포를 실감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스필버그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준 영화다. 이번에는 민주주의 심장 한국에서 보수 언론인들이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 구하기에 나선다.

그동안 일부 언론에 드러난 바와 같이 언론인들 중 일부가 삼성그룹에 여러가지 청탁을 하면서 받은 은혜를 갚으려고 작심하고 나선 것이 아닐까 의구심을 갖게 한다. 판결 선고를 앞두고 있는 재판부에 일정한 지침을 줌으로써 방향을 제시하고, 또한 재판부의 부담을 그만큼 줄여 주려고 서둘러 나선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정도다. 일부 언론인들이 삼성 그룹의 사장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기사로 보답하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특검이 처음 청구한 영장이 기각되었다가 구속영장 재청구를 통해서 구속되어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그동안 55회 공판기일이 열렸고(준비기일 포함), 59명의 증인이 법정에 나왔으며 일주일에 3회씩 5개월에 걸쳐서 재판이 진행되었다. 전 국민적 관심사였음은 물론 언론 또한 주요한 기삿거리로 다루어 왔다. 세기의 재판이라 불리는 이재용 재판은 지난 7일 결심공판이 있었고, 25일 판결 선고를 남겨두고 있다. 결심공판이 끝나고도 언론에서는 주요 기사로 다루면서 과연 유죄인가, 무죄인가에 대하여 나름 추측성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많은 기사들이 '여론재판에 휘둘리지 말라, 뇌물로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 경영현실을 무시하지 말라, 한국에서는 빌게이츠(Bill Gates | William Henry Gates III)나마크 저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 같은 유력 경영인들도 모두 범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등의 내용으로 재판부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모양새다. 기자들이 기사로 보답할 테니 판사는 판결로 보답하라고 다그치는 형국이다.  

일부 언론에서 특정 기업의 오너나 유력정치인들 편들기에 나섰던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단순히 판결 뿐만아니라 특별사면이나 가석방에 있어서도 미리 분위기를 조성했던 경우는 자주 있었다. 평소 유착관계를 형성해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보답을 해야 했던 것이다. 이미 언론으로써의 기본적 태도는 버린 지 오래다.

이재용 재판은 이미 상상할 수 없는 특혜를 얻으면서 진행된 사건이다. 일반 사건 같으면 재판과정에서 이재용에게 줬던 변론의 기회 만큼 배려했을까.

물건 하나를 훔쳤다고 기소된 사건, 누구와 간단한 시비가 붙어서 폭행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은 억울한 심정으로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은 재판장의 눈치가 보이고, 여러가지 증거들을 신청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소사실 부인, 피고인에게는 위험부담... 그러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결심공판을 마치고 호송 차로 향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박영수 특검팀으로 부터 12년 형을 구형 받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결심공판을 마치고 호송 차로 향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박영수 특검팀으로 부터 12년 형을 구형 받았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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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건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자백)하면서 증거에 동의하면 곧바로 간이공판절차에 들어가고 검사의 구형, 변호인의 변론과 피고인의 최후진술을 통해서 재판이 종결된 후 판결 선고를 하게 된다. 그러나 공소사실을 부인하면서 증거에 부동의 하면 증거조사 절차를 거치게 된다. 먼저 검사가 증인을 신청하게 되고, 피고인 측도 필요한 증인이나 기타 증거를 신청하게 된다. 재판이 여러 차례 더 열리게 되고 하나하나 세심한 검토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이 걸리고 품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형사사건의 재판장들은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피고인, 특히 뻔한 사실을 부인하면서 뚜렷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피고인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리 만무하다. 항상 실형을 선고하거나 형량을 높게 하면서 드는 이유가 공소사실을 부인하였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러니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피고인에게는 그만큼 위험부담이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공소사실을 부인하면서 증인을 신청하면 재판장이 필요 없는 증인이라고 자르는 경우가 자주 있다. 정말 필요 없는 증인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꼭 필요한 증인도 부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게 된다.

그러나 이재용 재판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사소한 부분까지 모두 범죄사실을 부인한다. 그러면 특검이 신청한 증거는 모두 하나하나 법정으로 불러서 조사해야 한다. 증인을 59명이나 불렀다는 것은 그만큼 특검이 조사한 사람들에 대하여 피고인 측이 증거에 부동의 했다는 것이다. 그 모든 사람들이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

일반 피고인이라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아마도 일반 사건을 이재용 재판처럼 진행하려 했다면 재판장으로부터 엄청난 핀잔을 듣거나 심지어는 모욕적인 언사를  받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재용의 무게 때문에 형사재판에서 충분한 변소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그건 당연히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절차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피고인들이 재판을 받으면서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절차에 따라서 충분히 변소의 기회를 주고 있는지 묻고 싶다.

또 하나 점을 살펴보자. 삼성그룹 임원들이 특검에서 조사받은 내용을 증언하러 법정에 출석해서도 증언을 거부하거나 조사내용과는 다른 진술을 한다. 일반 사건에서라면 재판장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당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증언을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수사기관에서의 진술과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답하도록 요구받는다.

일반적인 시민이라면 법정에 나가서 수사기관의 진술을 뒤집거나 자신이 원하는 증인을 마음대로 신청할 여유가 거의 없다. 형사재판을 몇 번이라도 경험한 변호인이라면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이 다른 사건에 비해서 이례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충분한 변소기회가 주어졌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재판과정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모든 절차를 다해 본 셈이다.

언론과 법조인, 균형감각 잃지 말아야

결심공판이 끝나고 나서는 언론이 지원사격에 나선다. 궁극적으로는 여론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이다. 혹시나 재판부가 여론에 따라 쉽게 유죄판결을 하는 것을 염려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유죄판결을 내리면 여론에 따라 유죄로 한 것이라는 의심을 받을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재판부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단편적인 사실관계만 살펴봐도 이재용에게 뇌물공여죄의 유죄를 인정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사실관계는 대부분 언론이 제공한 것들이다.

언론인이나 법조인이나 균형감각을 잃으면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 언론은 있는 그대로 사실관계를 보도하면 되는 것이고, 판사는 증거관계에 기해서 사실관계를 판단하면 된다. 언론이 자신의 주관적 의도를 독자에게 강요하거나, 판사가 일반적인 사건과 다른 기준에 의해서 특정의 사건을 판단한다면 이미 궤도를 일탈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판결 선고에서는 한 가지만 고려하면 된다. 지금까지 다른 뇌물사건에서 유죄와 무죄를 어떤 기준에 따라서 선택하였는지 말이다. 삼성그룹이 돈을 준 이유가 가장 문제일 터이다.

그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더욱이 돈을 준 시점 전후로 일정한 혜택을 입었다면 당연히 대가관계를 의심해야 한다. 삼성그룹의 사장들은 자신들이 임의로 돈을 준 것이고 이재용 부회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오너십이 분명한 회사에서 사장들이 오너에게 사전 또는 사후 보고도 없이 자금을 집행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유독 삼성에서만 이례적으로 벌어졌던 일들, 합리적인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한 이재용 부회장은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나라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삼성이라고 해서, 삼성의 실질적인 오너 이재용 부회장이라고 해서 다른 일반적인 사건과 다른 기준에서 판단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부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입니다.



태그:#이재용판결선고, #이재용부회장재판, #삼성그룹부회장, #이재용뇌물, #이재용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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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기업법, 세법 등)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범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태도, 패거리, 꼼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나의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비판합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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