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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효리네 민박' 화면 캡처
 JTBC '효리네 민박' 화면 캡처
ⓒ 고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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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 "말씀 좀 묻겠습니다. 거기 애월읍 민박집이죠? 지금 찾아가려고 하는데 거기 대중버스 가는 게 있습니까?"

이효리 : "아…대중버스는 없는데, 혹시 렌트 안 하세요?"

할아버지 : "(당황한 목소리로)레...렌타요?"

현재 방영중인 종합편성채널 JTBC의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 4화의 일부다. 부푼 마음을 안고 제주공항에 발을 디딘 두 노부부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허술한 대중교통 체계.

결국 이효리씨의 남편인 이상순씨가 직접 차를 가지고 제주공항에 두 부부를 데리러 나서며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방송을 지켜보던 나는 제주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혹시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한 의도적인 편집이 아니었을까' 의심하며 스마트폰 지도 어플을 통해 길찾기에 나서본 나는 할말을 잊었다. 직선거리로 불과 13km에 불과한 민박집에 도착하기 위해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 것은 물론 30분 가량을 걸어가야 한다.

방송 내용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팩트다(이효리씨의 소길리 집이 시도 때도 없는 방문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기사의 취지와는 별개로 두 분의 생활은 외부 간섭 없이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전 싹을 틔운 제주올레의 영향으로 도보 여행자가 증가하고 대중교통이 활성화됐다고는 하나, 렌트카는 여전히 제주여행자들의 필수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제주의 대중교통은 도민들에게도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게 현실이다. 들쭉날쭉한 배차시간은 물론 일부 운전원들의 거친 언행과 난폭 운전 등으로 외면받아왔다. 가구당 평균 차량 등록대수가 1.9대로 전국 평균의 두 배에 육박하지만, 대중교통 수송 분담률은 2014년을 기준으로 11.2%에 불과해 전국 꼴지인 이유이기도 하다. 자가용으로 통학하는 대학생들도 부지기수다.

30년 만의 대중교통개편...1200원으로 제주섬 한 바퀴

제주도가 오는 26일부터 대중교통 체계를 전면 개편한다. 지역 토호 세력과 기득권의 입김에 눌려 30년 동안 손을 대지 못한 버스 노선이 수술대에 오르는 셈이다.

그동안 대중교통 허브 역할을 수행해왔던 도심내 시외버스터미널의 기능을 축소하고 제주공항 주변에 대규모 광역 복합환승센터가 조성된다. 제주의 동서남북으로 4개의 환승센터가 들어서는 것은 물론 22개 읍면동에 환승정류장이 만들어진다. 서울 등과 같이 지하철에서 버스로의 환승이 아니라, 버스에서 버스로의 환승인 것이다.

크게 시외버스와 시내버스(공영, 민영)로 구분됐던 체계는 급행(빨간색)과 간선(파란색), 지선(초록색), 관광지순환(노란색)으로 세분화된다. 640여개에 달했던 버스 노선은 중복 노선 등을 최소화해 140개로 줄였다.

들쭉날쭉했던 요금 체계도 단순해진다. 제주 전역을 시내버스 요금인 1200원(성인)에 다닐 수 있으며, 70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은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다. 다만, 급행버스는 2천원의 기본요금에서 출발해 구간별로 최대 4천원까지 받게된다.

대중교통 우선차로, 누구냐 넌?

26일부터 전면 시행되는 제주 대중교통개편에 따라 전용차로가 운영되는 구간. 파란색 구간은 가변차로제, 빨간색은 중앙차로제가 각각 도입된다.
 26일부터 전면 시행되는 제주 대중교통개편에 따라 전용차로가 운영되는 구간. 파란색 구간은 가변차로제, 빨간색은 중앙차로제가 각각 도입된다.
ⓒ 고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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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운전도 하며 제주에서 생활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 대중교통개편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대중교통 우선차로제의 도입이다.

버스전용 차로와 유사한 개념인데, 버스는 물론 손님을 태운 택시 등이 다닐 수 있다. 구간에 따라 버스정류장이 도로 한 가운데 있는 중앙차로제와 3차선에 있는 가변차로제가 설치됐으며, 지난 23일부터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첫 날부터 운전자들의 혼란이 이어졌다. 새롭게 선을 보인 버스용 신호기로 혼선이 생겼고, 전용차로를 위해 일부 구간에서는 U턴이 금지되고 P턴이 도입되면서 항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변경된 도로와 신호 체계 등이 정확히 반영되지 않아 네비게이션에 의존하는 일부 렌트카 운전자들의 혼란도 관찰됐다.

일부 구간 중앙차로제는 전신주 이설작업 등 공사가 지연되자 시행시기를 오는 10월로 늦췄다. 또한 차선이 평균적으로 3~4개에 불과하고 이면도로가 많은 제주의 상황을 고려하면 버스전용 차선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중교통개편 혼란 불구 반드시 정착해야

대중교통개편 전면 시행을 앞두고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버스 래핑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대중교통개편 전면 시행을 앞두고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버스 래핑 현장을 둘러보는 모습.
ⓒ 고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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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초기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개편이 반드시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특히 제주가 그동안 인구와 차량 증가, 이에 따른 주차장 부족과 여러가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 것을 감안하면 개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대중교통개편은 제주도라는 한정된 공간을 보다 넓게 활용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서울과 유사하게 신제주나 택지지구 등 일부 특정 지역으로 인구가 쏠리는 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면 부동산 가격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해결되어야 한다. 우선 도민들의 참여를 위해 누구보다 지역 공무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제주도청 공무원의 경우 이미 자가 차량 운행이 금지된 상태지만 이를 온전히 믿기에는 역부족이다.

많은 예산을 투입한 만큼 버스 기사들의 전문성과 친절도 향상은 물론 운행 시간 등 대중교통에 대한 믿음을 줘야 한다. 제주시 외곽 지역을 다니는 막차 시간 역시 운행시간을 오후 11시 이후까지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좋은 정책은 내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대중교통개편이 좋은 정책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필자 같은 자가 운전자를 버스로 유인해야 한다. 편리하고 정확해야 하며 부담이 없어야 한다. 2,3년 후 통계와 데이터가 이를 증명할 것이다. 지방선거를 불과 10개월 앞둔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치적 홍보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선 정보 등 대중교통개편에 대한 자세한 각종 사항은 제주도청 120 콜센터나 불편신고센터(064-710-7777)로 문의하면 된다.


태그:#효리네 민박, #제주, #제주여행, #대중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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