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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경 대표
▲ 봄날의책x옥희살롱 공동기획북콘서트 전희경 대표
ⓒ 권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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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 '옥희살롱 X 봄날의 책'이 공동주최한 서평회에 참여했다. 최근 발간된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라는 책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질병이나 노년, 나이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이었다. 은평의 시민카페 '책방비앵'에는 3층을 꽉 채운 인원들이 모였다.

<아픈 몸을 살다>는 대학에서 사회학 교수로 오래 재직한 저자가 갑자기 심장마비와 암을 경험하게 되면서 겪은 일을 예리하게 서술한 글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는 소수자의 목소리다. 누구나 아플지도 모르며, 아프고 있을지도 모르며, 아팠을지도 모르는데... 그만큼 '아픈 몸'은 우리 사회에서 비정상에 가깝게 인식된다. 서평회에 온 한 참석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아팠을 때, 다들 이렇게 말했어요. 빨리 나와서 돌아와야지. 그렇다면 돌아오지 못한다면, 저는 늘 돌아오려고 애썼어요. 지금 있는 아픈 몸은 피하고 싶고, 인정할 수 없는 의미가 되는 거죠."

객체화된 아픈 몸들은 어떤 소리를 내고 있으며, 그들의 소리를 듣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날 서평회는 우선 세 명의 발제자가 발언하고 이어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순으로 진행되었다. 다소 시일이 지난 서평회지만, 그곳에서 오간 내용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아서 프랭크 '아픈몸을 살다'를 번역한 메이씨
▲ 봄날의책X옥희살롱 공동기획북콘서트 아픈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아픈몸을 살다'를 번역한 메이씨
ⓒ 권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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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번역자인 메이는 30대 무렵, 모든 자극에 예민해지는 증상을 겪으며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모든 삶은 통증과 연관되어지고, 오로지 머릿속은 낫는데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고. 그녀는 아픈 몸을 살며, '의미'를 찾고 싶었다고 한다.

"저를 살게 해준 것은 '의미'였어요. 누구나 처음 병이 들면 '잘 치료 받고, 나아서 원래의 내 삶으로 돌아가야지'라는 생각으로 고통스런 시간을 견뎌내죠. 그러나 병이 길어지고, 영구적인 손상이 생기거나, 치료가 진전되지 않으면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 이유는 몸이 무너지면서 이전의 삶도 무너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나에게 의미 있었던 것, 우리가 늘 말하는 '내일'이 불확실해지는 것입니다. 계획할 수 없는 삶을 경험하게 되면, 아픈 사람에게는 엄청난 과제가 생깁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의미'입니다."

만성질환에 시달리며, 그녀의 삶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고 한다. 아픈 이의 자살을 이해할 수 있다는 그녀는 자살은 내일이 오늘의 무의미와 고통으로 가득찰 것을 확신할 때 일어난다고 했다. 그녀에게 '의미'는 영화 <그래비티>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을 땅으로, 그리고 삶으로 세상으로 당겨주는 힘과 같다고 한다.

"고통은 사람을 살덩이로 만들지만, 의미는 사람을 삶의 에너지로 이끌게 만들어 줍니다. 학교를 다닐 때, 원심력과 구심력을 배워 보셨죠? 원심력이 안으로 가해지는 힘이라면, 구심력은 밖으로 향하는 힘이에요. 고통은 원심력으로 저를 살덩이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의미는 삶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구심력이 되어주었어요."

그녀는 아픈 몸에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는 것이 어떤 좋은 치료나 의사만큼이나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아픈 이를 지켜내는 힘이라고 말한다.

옥희살롱 김영옥 대표
▲ 봄날의책X옥희살롱 공동기획북콘서트 '아픈몸을살다' 옥희살롱 김영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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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인상을 가진 김영옥 옥희살롱 공동대표는 청자 없는 이야기는 팥 빠진 붕어빵 같다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만일 그것을 듣는 이가 없다면 허울 좋은 모양새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야기는 말하기와 듣기의 두 개의 실을 꼬아서 만드는 하나의 텍스트라는 것이다. 그럼 과연 누가 아픈 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가.

그녀는 얼마 전 <침묵과의 조우>라는 짧은 일본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잦아지는 고독사를 다룬 작품이라고. 그녀는 침묵 속에 숨겨져 있는 목소리를 일깨우는 일을 하고자 하려 한다.

"말을 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요. 누구든 말하고 있는데, 그 의미를 찾는 것 역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문화 자본이 부재한 이들이 너무도 이 사회에는 많아요. 아픈 삶의 의미를 찾는 것 이전에 아프다고 말하는 것조차 어색한 이들이 대부분인 거죠. 소리 없는 비명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전희경 옥희살롱 공동대표가 말을 이었다. 여성학자이기 이전에 15년간 암투병을 하는 어머니를 돌보았던 그녀는 '고유성'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고통을 직접 겪는 것이 아니므로, 목격밖에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처음에는 밀려왔어요. 그리고 제 삶은 무질서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사실 아픈 이만이 무질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돌보는 이들도 (아픈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정상'에서 벗어나 자진해서 함께 걸어 들어가야 해요. 하지만 저는 늘 외로웠어요. 저는 아픈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만, 저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곳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외로움도 터놓을 수 없는 거죠. 아무리 외롭고 내가 아파도 아픈 사람만 하겠냐라는 자기 안의 비교 의식이 자기의 고통을 숨기게 만드는 거죠."

"이런 갈등들은 결국에 깊어지고, 돌봄 받는이를 학대하고 방임하는 현상으로 빚어집니다. 하지만 누가 그네들에게 당당히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이 현상은 사실 돌봄 받는 이도,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에게도 비극인 것입니다. 각자 자율성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 이중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는 거죠."

환자들은 돌봄의 역할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러나 보호자 침대처럼, 자리는 있지만 조연으로만 그림자에 머물러야 하는 존재로서의 돌봄자에게 '가족이니깐', '딸이니깐'이라며 기꺼이 무질서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그녀는 비판의 칼날을 던졌다. 과연 돌보는 이들의 자율성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인가. 돌보는 이들의 '외로움과 지침'의 목소리를 들어줄 곳,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줄 곳은 어디인가.

"아픈 이들에게만 의미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돌보는 이들에게도 의미가 그들만의 '이야기'가 필요로 합니다."

세 명의 발제가 끝나고 많은 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환자의 이야기에 공감력이 높은 간호사들의 이직률이 높다고 한다. 환자 한 명의 삶에 공감하고, 삶을 공유하게 되면 무기력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는 갑작스런 질병이 찾아와 돌봄을 받고 싶은 자신과 그것을 함께 하길 거부한 남자친구와의 이별 이야기, 부모님이 아픈 상황 속에서 형제들끼리 서로 눈치 보며 돌봄의 위치에 서기를 두려워했던 경험이었다. 이 공간에 모인 이들은 현재 아픈 이도 있었으며, 돌보는 이도 있었다. 또는 한번쯤 삶 속에서 아플 것을 예견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했다.

과연 아픈 몸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함께 하는 이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들이 겪는 외로움과 무기력은 누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일까.

지난 8월 17일에 있었던 '아픈몸을 살다' 북콘서트 현장
▲ 봄날의책X옥희살롱 공동기획북콘서트 '아픈몸을 살다' 지난 8월 17일에 있었던 '아픈몸을 살다' 북콘서트 현장
ⓒ 권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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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흥행하는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주인공과 기자는 광주의 참상을 목격했고, 괴로웠지만 그 사실을 보도하고, 기록에 남기고자 했다. 그러한 그들 덕분에 광주의 이야기는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었고, 의미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참석자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다.

"왜 '아픈 몸을 살다'인가를 고민했어요. '산다'라는 것은 단순히 장소가 아니라, 장소를 통과하는 삶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거죠. 살아낸다는 것 아닐까요. 아픈 몸이라는 자리에는 모든 소수자의 이름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성, 장애인, 빈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느꼈어요. 왜 의미를 찾을까. 아픈 이들은 여유가 있어서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의미가 있어야 살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던 거죠."

의미와 그것을 만드는 이야기. 그 모든 과정에는 삶에 대한 힘겨운 날갯짓이 숨어 있다.


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봄날의책(2017)


태그:#아픈몸을살다, #옥희살롱, #봄날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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