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캐나다 단독주택(자료사진)
 캐나다 단독주택(자료사진)
ⓒ flickr

관련사진보기


캐나다에 온 지 1년 남짓 된 어느 여름. 우린 지금의 집을 장만해 이사했다. 몇 년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젠 어느 정도 무덤덤해진 부분도 있지만, 알다시피 나의 기준과 예산에 맞는 집을 찾고 고르는 일은 생각처럼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치 오랫동안 제 짝을 못 만난 사람들처럼….

1990년대를 풍미했던 015B의 <신인류의 사랑>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내가 좋아하는 그녀는 너무 콧대가 세고, 내가 관심 없는 그녀는 자꾸 전화"를 한다. 좋은 위치에, 잘 관리돼 있고, 값이 적정하면 참 좋을 텐데, 그 모두를 갖춘 집은 없는 법.

내가 맘에 드는 집은 너무 비싸고, 가격이 싸거나 적정한 집은 그 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요소가 필수적으로 끼어 있다. 너무 오랫동안 수리가 안 돼 있든지, 도로에 가까워 소음이 심하든지, 지하가 마감이 안 돼 있든지 등. 그만한 요소를 이유로 그만큼의 가격이 내려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집값이라는 게 그저 주먹구구로 형성되는 듯해도 그 메커니즘을 유심히 살펴보면 굉장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다. 

하여튼 여러 가지 우려와 망설임 속에서 작은 타운하우스 하나를 계약하게 됐다. 클로징 타임부터 이사 들어갈 날까지 두 달 이상의 기간이 남아 있어서 우리는 그동안 여유롭게 집을 손보기로 마음먹었다.

오래된 집이라 손 볼 곳이 많았지만 빠듯한 예산에 맞게 우선순위를 정하고, 각 공 사항목마다 2~3개 이상의 오퍼를 받아 비교하고, 또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서투르지만 직접 해 보는 것도 여기서 정착하는 데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리 하기로 했다.

매일 같이 자동차로 짐을 몇 상자씩 옮기는 것부터, 페인트칠, 뒷마당 데크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수리하는 것까지 자질구레한 일들이 많았지만, 방학을 한 아이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으니 그럭저럭 해 나갈 수 있었다. 아니, 무엇보다도 캐나다에서 내 집을 마련했다는 성취감(?)과 안도감이 우리 부부가 지금까지 해 본적도 없는 여러 일을 무작정 하겠다고 달려들게 만든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산책 중인 개(자료사진)
 산책 중인 개(자료사진)
ⓒ flickr

관련사진보기


거의 매일 같이 이사할 집에 드나들며 집 수리를 하던 어느 날. 뒷마당에 깔려있는 테라스 데크를 청소하던 아내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작은 뒷마당 끝부분에 서 있는 큰 나무 아래에 어느 집 강아지가 실례한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그날 하루에 쌓인 것이 아니라 몇 번에 걸쳐 누적된 듯했다. 추정컨대, 먼저 주인이 이사 가고 한동안 집이 비어 있으니 개를 데리고 동네를 산책하던 교양 없는 이웃이 빈집임을 알고 자신의 반려견이 실례하는 것을 못 본 척 눈감아 준 게 틀림없었다.

서울에서도 오랫동안 개를 기른 적이 있어 개에 관해 전문가 뺨치는 식견을 가지고 있는 아내 역시 배설물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사료를 먹이는 중간 크기의 개"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내 추정에 더 확신을 갖게 됐다.

새로운 이웃을 향한 인사치곤 참 더럽고도(?) 상쾌하지 못한 인사 아닌가? 긴 호스를 수도꼭지에 끼워 이 지저분한 환영식을 물로 청소를 하면서 '치사한 경범죄의 주인공이 옆집일까? 오른쪽? 왼쪽? 아니면 오솔길 같은 산책로를 사이에 두고 뒷마당을 마주 보는 뒷집? 그도 아니면 완전범행을 위해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부러 빈집 뒷마당을 찾은 어떤 파렴치한?' 하며 아직 아무 단서도 없는 용의자들을 수산선상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 후로 며칠간 확인해 본 데크는 아주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제 새 주인이 나타난 것을 안 '새가슴' 범인이 마음을 잡고 파렴치 행위를 중단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수사 물망에 올랐던 모든 용의자도 자연히 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곤 나는 그 일을 잊어버리고 집안 수리에 몰두해 며칠을 지냈다.

그런데 여름 해가 뜨겁던 어느 오후, 데크 의자에 앉아서 그늘을 즐기다가 뒤돌아보니, 아뿔싸! 같은 색깔의 배설물이 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이런! 그 동물의 배설물을 다시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동네 잘 못 골라 왔네'였다. 

아내랑 현장에서 긴급회의를 했다. 이건 여기가 사람 사는 집인 것을 모르고 한 행위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는 어찌 이런 일이 또 벌어지겠나?

회의 결론은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리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래서 나는 노트 한 장을 뜯은 후 형광펜으로 잘 보이게 경고문을 하나 써서 사건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나무에 붙여 놓았다.

"Please clean up your pet's poo!"(반려견의 배설물을 치워주세요!) 

그러면서 '집 사기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동네인지 아닌지는 도대체 어떻게 체크해야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경고문 붙여도 또 다시, 이대로는 안 된다

"역시 문서의 효과는 대단하다"고 아내와 자화자찬한 지 일주일 지났을까. 다른 일 때문에 며칠을 찾지 않은 집 뒷마당 나무 밑에 또 배설물이 쌓여 있었다. 이번에는 종류가 다른 두 가지였다. 이젠 아주 애완견을 두 마리 씩이나 데리고 다니는 건가. 사람이 비어 있는 집인 걸 알았 건 몰랐 건 남의 집 뒤뜰에 자기 반려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사라져 버리다니. 내가 전해들은 캐나다 사람들의 상식으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이제 새로운 집주인이 이사 오기 위해 수시로 드나들고 있고, 게다가 경고문까지 써 붙여 놓았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버젓이 단서를 남기는 것은 우리를 안하무인으로 보거나(혹시 인종차별주의자?) 아니면 한 번 해보자는 심보 아니고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게다가 큰 나무 아래 쪽 관목 숲에 내동댕이쳐진 경고문에서 앞으로 벌어질 강한 전운이 느껴졌다.

 집 앞에 붙였던 경고문
 집 앞에 붙였던 경고문
ⓒ 김태완

관련사진보기


이사도 오기 전에 이런 일을 당하면 이사 온 다음에는 또 어떤 생각지도 못할 일은 당하게 될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우선 경고문을 더 강한 문구로 새롭게 써서 단단히 붙였다.

"I don't want to clean up your pet's pooany more!" (더는 그쪽 반려견의 똥오줌을 치우고 싶지 않아요!)

잘 뜯어지지 않게 못으로 고정하고 네 귀퉁이에 투명 테이프를 붙였다. 그리곤 좀 큰소리로 "…don't understand! dog's poo! surveillance camera!"(이해할 수 없어!, 개똥! 감시 카메라!) 등의 단어를 무작위로 몇 번씩 내뱉었다. 혹시 이웃 중 누군가가 한 일이라면 이런 단어를 듣고 제발 그만했으면 하는 주의 환기용 멘트였다. 집에 들어와서 밖을 내다 보니 뒷집 할머니가 청소를 하다 말고 못에 박힌 경고문에 관심을 두면서 우리 집 가까이 까지 와서 돋보기를 코에 걸고 경고문을 읽고 있었다.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저 할머니는 아닌가….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우선 옆집 두 주인들이 주로 차를 몰고 나가는 시간에 우연을 가장해 마주쳤다. 간단하게 배설물 이야기를 해주고 표정을 살폈다. 한 집은 "글쎄 거 참 희한한 일이네"라며 남의 일 얘기하듯 듣고 지나쳤고, 또 다른 한 집은 '자기도 얼마 전까지 개를 키웠는데, 지금은 아들이 살고 있는 시골에 갖다 놓았다'며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해명 수준의 답변을 내놨다.

두 번째 경고문을 붙인 후에도 배설행위는 간간히 이어졌고 계속되는 도발행위에 지친 우리는 도저히 우리 힘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공권력을 투입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변테러의 범인과 마주치다

증거물들을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경고문 사진을 찍고, 가장 중요한 증거물은 여러 각도에서 촬영했다. 그리곤 사건 경위를 정리해서 관리 사무소에 제출하고 해결책을 달라고 요청할 심산이었다.

그날, 캐나다에 오래 사신 한국 분이 일 때문에 오셨기에 그간의 자초지종을 어린아이가 부모님에게 형이나 누나의 괴롭힘을 고자질하듯 얘기했다. 공권력 투입계획까지 상세하게 전달받은 그분의 입가에는 안타가운 웃음이 흘렀다. 

"그거 개 아니야! 아마 라쿤(미국너구리)일 거야."

당신이 예전에 살던 집에도 라쿤이 몇 마리 살고 있어서 배설물을 치우느라 애를 먹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캐나다 사람들이 자기 반려견의 배설물을 남의 집에 그렇게 방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설명도 함께 곁들였다.

"그렇죠? 저도 첨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할 말이 궁색해진 나는 끝말을 흐렸다. 그날로 나는 경고문을 떼어 내고 배설물이 쌓이면 아무 불평 없이 물로 씻어 냈다. 마치 근거도 없이 무고한 이웃사람들을 의심한 내 사악했던 마음을 씻어 내기라도 하듯이.

 데크 위 라쿤
 데크 위 라쿤
ⓒ 김태완

관련사진보기


 나무 위 라쿤
 나무 위 라쿤
ⓒ 김태완

관련사진보기


얼마 후 우리는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한 며칠 후 저녁을 먹다가 데크를 지나는 검은 그림자를 보고 나는 흠칫 놀라 창가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라쿤 두 마리가 천천히 데크를 지나 나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무 중턱까지 올라간 그들은 큰 가지 세 개가 겹쳐져 평평한 공간을 만들어 낸 곳이 침대인 양 안한 자세로 몸을 쭉 뻗었다. 

나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가 창문에 기대섰다. 라쿤과 대화가 가능한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나를 보면서도 아무런 경계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리는 그 후에도 늦은 오후부터 해질녘까지 그 보금자리에서 잠을 자거나 뒤뜰을 어슬렁거리는 라쿤 부부를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여름이 끝날 무렵부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마도 그 해 8월 말 경에 우거진 나무 가지를 잘라냈는데, 그것 때문에 자신들의 휴식처가 사라지게 되자 거처를 옮긴 것 같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시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 올해도 뜨거운 여름이 물러가고 있다. 올해는 유난히 도시고속도로인 401진입로 등 큰 길 여기저기에서 라쿤들이 로드 킬 당한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 집을 떠난 라쿤들이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았기를 마음으로 빌어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저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김태완입니다. 이곳에 이민와서 산지 9년이 되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이민자로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그때그때 메모하고 기록으로 남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민자는 새로운 나라에서뿐만이 아니라 자기 모국에서도 이민자입니다. 그래서 풀어놓고 싶은 얘기가 누구보다더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