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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 이후 지역 맘카페를 자주 드나든다. 엄마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넘치고, 맛집 정보, 육아 뉴스, 육아용품 벼룩 등이 활발하게 공유되는 곳인데, 요즘 들어 부쩍 '맘충' 관련 게시물이 많이 보인다. 유형을 나눠보자면 맘충을 욕하는 글, 개념맘이 되기 위해 질문하는 글, 맘충 현상에 분노하는 글이다.

맘충 욕하기

맘충이라는 말에서 온전히 벗어나 당당하고 행복한 엄마가 있을 수 있기는 한 건가.
 맘충이라는 말에서 온전히 벗어나 당당하고 행복한 엄마가 있을 수 있기는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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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경험한 진상 엄마 목격담이나 각종 맘충 사건들을 다른 엄마들에게 알린다. A엄마가 식당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며 몰상식한 맘충이라고 욕하면, 다음날 그 게시글이 그대로 언론에 나오기도 한다.

개념이 없다. 극혐이다. 같은 엄마로서 부끄럽다. 맘충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같은 엄마지만 이런 맘충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맘충들이 개념있는 엄마들까지 도매급으로 넘긴다. 부들부들... 엄마들 스스로 힘모아 맘충을 고발하고, 함께 맘충을 욕하며 우리는 저런 무개념 맘충이 되지 말자 다짐한다.

개념맘 되기

맘충이 마녀사냥되는 현상을 목도한 엄마들은 자기검열을 시작한다. 맘충의 막연한 정의에 혼란스러워하며 개념맘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카페나 식당에서 어떤 행동을 하면 맘충이 되나요?" "맘충소리 들을까봐 겁나는데 이런 건 괜찮은 건가요?" "요즘 맘충맘충 난리라서 비행기 태우는 것도 겁이 나는데 몇 개월쯤 되어야 비행기 탈 수 있을까요?"

맘충이 안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이 정도는 허용범위인가? 저 엄마의 행동은 맘충 같은데, 맘충까지는 아닌가? 맘충을 정의하여 최대한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누군가 날 찍어 올릴까, 누군가 내 이야기를 쓰면 어쩌나. 눈치보며 맘충과 개념맘의 경계선을 탐색한다.

성격도 잘 맞고, 관심사도 비슷하고, 함께 있으면 재밌는 친구인데 맘충짓을 해서 깜짝 놀랐다고, 실망이라고, 지인이 맘충일 때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질문에는 그런 엄마랑 다니면 맘충 소리 같이 듣게 된다며 거리를 두라고 조언한다.

"그쵸? 제가 사람을 잘못 봤었나봐요. 개념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완전 극혐이였어요."

여러모로 잘 맞았던 인연마저도 몰상식한 맘충으로 정의하며 쉽게 안녕을 고한다. 맘충짓은 그동안 쌓아온 신뢰와 우정을 과감히 버려야할 만큼 중대한 결함이다.

"맘충소리 듣기 싫어서 카페나 식당에 갈 때는 일회용 봉지와 물티슈를 꼭 챙겨 다녀요. 나올 때는 깨끗하게 치우고 쓰레기는 되가져 오고요. 공공장소는 되도록 안 가는 편인데 어쩌다 가게 되면 스마트폰 보게 해요. 동영상 볼 때는 떠들거나 돌아다니지 않으니까요."

개념맘이 되어 손가락질 받지 않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 엄마들은 맘충과 격이 다른 나를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질문하고 개념을 채워간다. 맘충과 나는 엄연히 다르다! 아니, 달라야만 한다.

그런데 어쩌나. 개념맘이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애들 떠드는 거 싫고, 부산하게 식사하는 모습도 싫다기에 아이들에게 안 좋은 걸 알면서도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조용히 떠 먹여주는데 그걸 본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니까.

"요즘 엄마들은 진짜 이기적이야. 동영상이 얼마나 안 좋은데. 자기 좀 편하자고 애들한테 스마트폰을 저렇게 쉽게 줘? 저런 엄마 밑에서 크는 애가 불쌍하다. 맘충맘충."

이 불쾌하고 짜증나고 슬프고 아픈 맘충이라는 말에서 온전히 벗어나 당당하고 행복한 엄마가 있을 수 있기는 한 건가. 소수의 무개념 진상을 뜻할 뿐인 이 두 글자는 왜 이리도 많은 엄마들을 불행하게 하는가.

맘충 의심하기

맘충이라는 낙인은 엄마들을 작은 프레임에 가둬버렸다. 창살 없는 감옥. 엄마들은 숨이 막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무기를 갖게 되어 속이 후련하다. 맘충이라는 현미경으로 아이들의 행동과 엄마의 대응방식을 관찰하며 언제든 낙인찍을 준비가 돼있다. 아이와 함께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일거수일투족 감시의 대상이 된 엄마들은 반문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맘카페에 올라온 엄마들의 목소리.

"아이와 엄마는 대화도 하면 안 되나요? 7살 아이와 식당에서 메뉴 나올 때까지 이야기 하며 기다리는데 아이 뒤에 젊은 여자가 아이를 째려보더라고요. 다른 손님들 대부분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심지어 자기 일행은 사람도 많고 더 시끄러웠죠. 왜 노려보냐고 한 마디 하고 싶었는데 아이 앞이라 참았어요. 모르죠. 한 마디 했다면 오늘 식당에서 '맘충' 만났다고 글을 썼을지도요."

"아이 울음소리가 그렇게 싫은가요? 아이가 구내염이라 병원에 갔는데 대기시간이 2시간쯤 되니 애가 투정을 부리며 울기 시작했어요. 입이 아프니 먹을 것으로 달래지지도 않고... 제가 일부러 울리는 것도 아닌데 어떤 아저씨가 "거참 시끄러워 죽겠네! 애 좀 달래 봐요!" 하며 화를 내시더라고요. 애가 아파서 우는 걸 좀 이해해 줄 수 있지 않나? 라고 생각하면 제가 이기적이고 맘충인 건가요?"

"백화점으로 애들 공연 보러 갔어요. 엘리베이터에 아이 데리고 오신 부모님들 많았고요. 문이 열려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애들이 많다 보니 좀 내리는 게 늦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뒤쪽에 젊은 남녀가 짜증스럽게 빨리 좀 내리라고 하는 거예요. 다 내리고 둘이 걸어가면서 일부러 들으라는 식으로. 하여튼 맘충들이 문제라며. 애들 너무 싫다고 하더라고요. 사람이 많이 타서 뒤에 있는 사람이 늦게 내리는 게 왜 애들 잘못인가요? 애들은 엘리베이터도 타면 안 되나요? 그게 그렇게 이해 못할 일인가요? 맘충소리 직접 들으니 황당하고 화가 나네요."
(댓글) "저는 유모차 가지고 엘리베이터 탔더니 정말 벌레 보듯 싫어해서 상처받은 적 있어요. 애 데리고 다니는 엄마가 죄인이죠."

"아기띠 하고 버스 탔는데 핑크의자, 노약자석 모두 젊은 사람들이 타고 있더라고요. 제가 애랑 흔들흔들 하는데도 아무도 양보를 안 해주네요. 오히려 왜 자기 앞에 서 있냐는 듯이 짜증스럽게 쳐다봤어요. 이런 젊은 사람들은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는 엄마들이 늘어간다. 우리 사회는 이대로 괜찮은가?

여성혐오와 약자혐오의 결정판 '맘충'

엄마들을 엄격하게 평가하고 손가락질 하는 우리 사회는 얼마나 상식적이고, 배려하는 사회인가를 돌아보자.
 엄마들을 엄격하게 평가하고 손가락질 하는 우리 사회는 얼마나 상식적이고, 배려하는 사회인가를 돌아보자.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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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충이라는 용어를 문제 삼으며 사용하지 말자고 하면, 도저히 상식으로 이해 못할 사례를 나열하며 맘충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고 한다. 심지어 엄마들 중 상당수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맘충 혐오에 앞장선다.

"같은 엄마가 봐도 맘충 소리 나올 만큼 개념없는 진상들 많아요."
"누가 아이 있는 엄마들을 다 맘충이라고 합니까? 맘충짓을 안 하면 맘충이 아닙니다! 예의만 잘 지키면 맘충소리 안 들어요! 몰상식하고 이기적인 엄마들을 맘충이라고 하는 것뿐입니다! "

맘충이라는 호칭 사용을 멈추자는 말을 "그 엄마는 진상이 아닙니다!"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맘충 사용을 멈춰달라는 말은 무개념을 옹호하는 말이 아니라 엄마와 아이들을 향한 차별과 폭력을 멈추라는 말이다.

즉, 여성혐오와 약자혐오를 멈추라는 말. 엄마라는 특정 집단을 적대시하는 문화를 멈추자고, 아이와 다니는 엄마들을 배척하는 차별을 멈추자고, 가볍게 던지는 말 한마디에 엄마들은 상처받고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항변하는 것이다.

엄마들만 유별나게 더 몰상식한가

엄마들을 엄격하게 평가하고 손가락질 하는 우리 사회는 얼마나 상식적이고, 배려하는 사회인가를 돌아보자. 우리 사회는 엄마들만 몰상식한가?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훌륭하고 상식적인데 엄마들이 유별나게 '더' 이기적이고 '더' 몰상식한가? 그래서 엄마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각별히 개념을 챙길 필요가 있는 문제적 집단인가?

애 놀이터 근처에서 담배 피우고 꽁초를 그냥 버리고 가고, 걸어다니면서 남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말거나 연기 피우는 흡연자들은 상식적인가? 길거리에 수시로 침 뱉는 고딩과 아저씨들은 봐줄 만한가? 그 더럽고 짜증나는 행위는 별거 아닌가?

여행지 포토존에서 사람들 줄 서서 기다리는데도 기다리는 사람 생각도 안 하고 사진 백장 찍는 아가씨들, 카페에 앉아 본인은 친구들과 하하 호호 즐겁게 수다 떨면서 애가 몇 마디 하면 눈살 찌푸리며 눈치 주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기적인 게 아닌가?

밥집에서 낮부터 반주하며 목소리 완전 크게 이야기하는 아저씨들, 어디서나 당당히 노상방뇨하는 아저씨들, 공공장소에서 누가 보거나 말거나 민망한 애정행각 일삼는 젊은 연인들, 사람 많은 곳에서 스피커로 뽕짝 들으시는 할아버지들... 이기적인 엄마들만큼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전반적으로 이기적이다. 공동체 의식이라고는 멸종위기인가 싶고, 가족 이기주의, 개인주의로 똘똘 뭉쳐 돌아가니 이런 사회에서 산다는 게 부끄럽고 무서울 때도 있다.

매너, 교양, 배려, 존중, 공감. 이런 개념은 엄마들에게만 부족한 게 결코 아니다. 요즘 '엄마들이' 이기적인 게 아니라 요즘 '사람들이' 이기적이다. 개인의 문제고, 부족한 시민의식이 문제다. '흡연자들'이 문제가 아니라 놀이터에서 담배 피는 그 흡연자가 무개념이듯 '엄마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 엄마가 무개념인 거고, 몰상식한 사람들 중에 엄마도 있는 것뿐이다. 엄마여서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이 엄마가 된 거란 말이다.

맘충찾기에 혈안된 품위없는 사회

'김치녀' '된장녀' '김여사'로 여성들을 대상화하고 옭아매더니 이제는 엄마와 아이를 함께 대상화하는 맘충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왜 늘 여성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집단의 문제로 싸잡아 욕을 먹어야 하는가? 왜 늘 사회적 약자들은 더 엄격하게 통제의 대상이 되어 소외 당해야 하는가?

엄마도 사람이고, 사람들은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다. 아이가 마트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엉엉 울며 떼쓰는 경우, 엄마들의 대응방식은 다양하다. 대화로 타이르는 민주적인 엄마, 때리며 훈육하는 폭력적인 엄마, 어쩔 줄 몰라 하는 서툰 엄마, 스스로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하는 엄마, 사달라는 대로 사주는 허용적인 엄마, 울거나 말거나 무시하는 엄마 등.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심지어 같은 엄마여도 어제는 우는 모습에 당황하며 장난감을 사줬지만, 오늘은 버릇을 잡겠다며 스스로 포기할 때까지 아이와 기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엄마들 성격에 따라 육아관이 다 다르고, 그날 그날 상황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다르다. 그런데 맘충이라는 말이 생기니 수천 명의 엄마들이 맘충 아니면 개념맘 두 부류로 나뉘었다.

우는 애를 얼른 달래며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는 모양새를 갖추면 개념맘, 애 훈육 중이라며 그냥 울게 두는 엄마는 맘충. 평소 아무리 착하고, 예의바르고, 교양 있는 엄마였다 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를 통제하지 않는 순간 상종 못할 맘충으로 낙인찍힌다.

누군가를 맘충이라 욕하는 것이야 말로 차별과 편견으로 무장한 채 몰상식하고 비인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재미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엄마들은 자기비하의식을 내면화하며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서로를 감시하고 있다. 엄마들은 맘충이라는 말에 상처받으며 엄마가 된 존재 자체를 후회하고 사회적 박탈감과 상실감을 느낀다.

사회에 만연한 이기심, 바뀌어야 할 진상문화는 엄마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맘충이라는 말로 해결할 수 없다. 혹자는 맘충이라는 말이 생긴 덕분에 공공장소는 더 조용해지고 더 깨끗해지고 더 좋아졌다며 맘충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말한다. 수많은 여성들을 억압하고 숨 죽이며 얻은 여성비하 효과라니...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긍정적인 측면만을 생각하지 말고 '여성혐오','약자혐오'가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하여간 답 없는 맘충들... 지들한테나 이해할 만한 예쁜 애지 남한테는 시끄러운 애새끼일 뿐이라는 걸 몰라요." "엄마들이 눈치 보는 게 왜 문제죠? 당연히 눈치를 봐야죠. 통제 못할 거면 나오지를 말던가!" "애 울음소리 싫어하는 게 잘못인가요? 애들한테 방해받기 싫은데요." "애들이 어려서 공공질서를 못 지킬 때는 여기저기 민폐 끼치지 말고 집에 좀 있어!"

아이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고 '맘충 찾기'에 혈안이 되어 어디 한번 개념 있나, 없나 보자는 자세로 엄마들을 숨 죽이게 하는 이 사회야 말로 얼마나 관대하고, 품위있고, 상식적인가.

맘충같은 여성혐오 발언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나라도 있는 시대에 무개념을 바로 잡겠다며 맘충맘충하는 모습은 얼마나 구시대적이고 개념 없는가.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만들고 결국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병들 뿐이다.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이 문제적 멸칭, 맘충 사용을 멈추는 것부터 시작하자. 맘충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우리 사회, 해도 해도 너무 무식하고 몰상식하지 않은가.


태그:#맘충, #여성혐오, #아동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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