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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이 강원도 교육 현장을 찾아가 직접 취재해서 작성한 것입니다. 민 교육감은 틈나는 대로 기사를 작성해 올릴 계획입니다. 민 교육감은 기사쓰기를 시작하면서, 독자들에게 자신이 현장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더 많은 교육 구성원들과 나눴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편집자말]
춘천시 칠전동에 자리 잡은 신남초등학교. 3년 전 '아이들을 살리는 마을'을 주제로 학부모 연수를 하고, 뜻 맞는 교사와 학부모 8명이 손을 잡았다. 드름산 아래 모여 살며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는 뜻으로 '드름지기'라는 이름도 지었다. 모임의 첫 목표가 '친해지기'일 정도로 서로 얼굴도 모른 채 살아온 이들이 모여 마을교육공동체를 꾸린 지도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드름지기를 둘러싼 마을 곳곳, 학교 곳곳의 따뜻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무엇보다 도교육청 소식지에 실린 "아파트 가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는 신남초의 한 학부모의 이야기를 읽고 결심했다. 이번 취재는 여기다! (물론 이번에도 도교육청 홍보팀이 간다는 얘기만 했지, 교육감이 간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수다로 가득한 드름지기 동아리방. 학교와 구성원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느껴진다.
▲ 드름지기 동아리방 수다로 가득한 드름지기 동아리방. 학교와 구성원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느껴진다.
ⓒ 최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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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없으시죠? 저희 항상 이래요"

"교육감님 오는 줄 알았으면 화장이라도 하고 올 걸. 설거지하다 슬리퍼 신고 왔어요."
"식사하셨어요? 저희 텃밭에서 수확한 토마토예요. 맛있죠?"
"얘들아~ 이 분 누구인지 아는 사람?"
"정신 없으시죠? 저희 항상 이래요.(웃음)"

갑작스런 방문에 다들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반가운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드름지기 부모들은 모임에 모두 아이들을 데려오고 구성원 중 한 명이 당번이 되어 아이들을 돌본다. 방 한 켠에서 '조몰락조몰락 만들기'를 하고 '누가누가 멀리 뛰나' 뛰노는 아이들까지 어우러져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이런 모습이 전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드름지기 모임을 할 땐 모두 아이들을 데려와서 같이 뛰어놀게 한다. 이게 자연스러운 모습 아니겠는가.
▲ 누가누가 멀리 뛰나 드름지기 모임을 할 땐 모두 아이들을 데려와서 같이 뛰어놀게 한다. 이게 자연스러운 모습 아니겠는가.
ⓒ 최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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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욕심 내면 오히려 아이를 망칠 수도...

드름지기가 처음 시작한 활동은 주말에 운동장에 모여 간식을 나눠먹고 아이들과 노는 것. 그렇게 시작한 놀이는 2주에 한 번, 저녁 시간에 모여 함께 노는 '반디 놀이터'가 되었다. 교장선생님은 기꺼이 운동장 조명을 켜주었고, 동네 아이들과 어른은 고무줄, 줄넘기, 모래놀이, 강강술래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방학이면 '가정도서관'도 열었다. 매주 돌아가면서 한 집에 모인 아이들은 그 집에 있는 책과 장난감을 즐기고 이모, 삼촌으로 불리는 친구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활동은 근처 노인정의 어르신들에게 책 읽어주는 봉사로 확대됐다. 학교 도서관 앞 공터에서 시작한 텃밭은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소중한 배움을 주는 살아 있는 교실이 되었다.

으슥한 밤이 되면 운동장에 모여 함께 노는 신남초 아이들과 부모들. 교장선생님은 이들을 위해 기꺼이 운동장 야간 조명을 켜주었다.
▲ 반디놀이터 으슥한 밤이 되면 운동장에 모여 함께 노는 신남초 아이들과 부모들. 교장선생님은 이들을 위해 기꺼이 운동장 야간 조명을 켜주었다.
ⓒ 신남초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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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에는 이모, 삼촌 집에 모여 함께 책을 읽고 노는 아이들.
▲ 가정도서관 방학에는 이모, 삼촌 집에 모여 함께 책을 읽고 노는 아이들.
ⓒ 신남초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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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를 심었는데, 빨리빨리 잘 키우고 싶은 욕심에 대 밑에 비료를 뿌리고 덮어주었어요. 그런데 다 죽어버린 것 있죠. 교장선생님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그때 깨달았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겠구나. 부모가 욕심을 내면 오히려 망칠 수 있겠구나."

나 역시 아직까지도 농사를 지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언제 씨를 뿌릴지 언제 거두어야 하는지, 그 '때'를 아는 것이 '철드는 것'이라고 한다. 초등학교에서 한글교육을 적기에 가르치기 위해 우리 교육청이 추진하는 '한글교육 책임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1학년 아이들 받아쓰기 안 하니까 너무 좋아요. 뒤돌아 보면 큰 아이 때는 받아쓰기 하나 때문에 아이를 너무 힘들게 했어요. 좀 기다려주면 다 하는 것을 그때는 왜 그리 다그쳤는지... 오히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싫어하게 만든 것 같아요."


텃밭을 가꾸는 학교는 참 많지만 자칫 잘못 하면 부모와 선생님의 노역이 되기 쉽다. 배움과 잘 연결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도 배워야 한다.
▲ 신남초 텃밭 텃밭을 가꾸는 학교는 참 많지만 자칫 잘못 하면 부모와 선생님의 노역이 되기 쉽다. 배움과 잘 연결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도 배워야 한다.
ⓒ 신남초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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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학원에 다니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을에 사느냐가 중요하죠

드름지기는 올해 우리 교육청이 지원하는 '온마을학교'에 선정되면서 더욱 바빠졌다. 학교와 교사, 학부모와 아이들의 마음을 나누는 활동이 마을과 지역주민까지 아우르는 모임으로 성장한 것이다.

"사실, 지난해에도 온마을학교 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모임을 키우기보다는 우리들끼리 재미있고 의미 있게 지내는 것이 더욱 좋았죠. 그런데 올해는 자연스럽게 마을로 이야기가 커져갔어요.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우려면 이웃과 함께 가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아요."

온마을 학교란 학생, 학교, 학부모, 주민이 함께 지역 교육문제를 논의하고 방과후, 주말, 방학 중에 다양한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모임으로, 현재 도교육청은 도내 23개 단체를 지원 중이다.

드름지기는 온마을학교 사업으로 '내 고장 알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우리 동네 관공서와 지역 상가를 탐방하고, 마을에 자리잡은 광산김씨 사당도 방문했다. 마을 경로당에서 장기자랑을 하고, 나눔 장터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것이 도시의 아파트 생활이라지만, 드름지기 부모들은 동네 문방구 주인 아저씨, 분식집 주인 아주머니, 경로당의 이웃 어르신들과도 친하게 인사하며 지낸다.

사교육 부담도 없고 서로 경쟁하는 분위기도 없다. 서로 돕고 배우며 '마을이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명제를 실천하는 신남초 드름지기 학부모들.
▲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 사교육 부담도 없고 서로 경쟁하는 분위기도 없다. 서로 돕고 배우며 '마을이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명제를 실천하는 신남초 드름지기 학부모들.
ⓒ 최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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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근처에 위험한 불법주차, 불량식품 판매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아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을과 이웃 이야기로 연결될 수밖에 없어요. 결국, 우리의 삶을 함께 돌봐야 하는 거지요."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어느 학원에 보낼지'로 쉽게 귀결되는 현실에서 '마을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드름지기 구성원들. 이렇게 한 방향을 보며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얼마나 든든하고 기쁜지 모른다.

학교는 든든한 보금자리, 이제 온몸으로 느끼고 있어요!

"학교가 구심점이 되어줘서 정말 좋아요. 동아리방도 제공해주고 우리의 성장을 도와주시는 선생님들이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죠. 우리 드름지기의 두 선생님께는 정말 표창을 주셔야 해요."

드름지기에 함께 참여하는 한정혜, 황현정 선생님에 대한 부모들의 신뢰는 각별해 보였다. 올해 다른 학교로 옮긴 후에도 여전히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황현정 선생님은 오히려 자신이 부모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저도 처음에는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를 잘 몰랐어요. 한참을 모이고 얼굴을 마주하고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왜 공동체가 필요한지 저절로 느끼게 되더라고요. 이런 공동체라면 우리 사회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맞아요. 예전에는 책으로 배웠다면 지금은 온몸으로 느끼며 배우고 있어요." 

드름지기 구성원들은 말한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게 아니라, 같이 어울리다 보니 '이게 바로 공동체구나' 하고 느끼고 있다고.
▲ 공동체 드름지기 구성원들은 말한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게 아니라, 같이 어울리다 보니 '이게 바로 공동체구나' 하고 느끼고 있다고.
ⓒ 최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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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맞장구를 치며 말을 잇느라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인터뷰는 오랫동안 계속됐다. '우리 아이들의 오늘이 더 행복할 수 없을까?'를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 그래서 아이들도, 부모들도 매일매일 행복하게 사는 공동체. 드름지기는 그렇게 오늘도 성장하고 있었다.

추신1 : 함께 하는 한정혜 선생님과 황현정 선생님, 그리고 올해 8월 퇴임하시는 박영준 교장 선생님에게 꼭 표창을 주라는 간청이 있었다. 이미 학부모의 신뢰라는 '큰 상'을 받고 계시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지면을 빌어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추신2 : 후임으로 지금처럼 좋은 분을 보내 달라는 청탁(?)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으로 대신 답하겠다.

신남초 드름지기가 계속 좋은 미담을 들려주길. 깜짝 방문에도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준 써니, 어부바, 그사랑, 하늘, 검은새, 봄의여왕, 안동때기, 방실방실, 코난, 토끼, 감자꽃, 태양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 기념사진 신남초 드름지기가 계속 좋은 미담을 들려주길. 깜짝 방문에도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준 써니, 어부바, 그사랑, 하늘, 검은새, 봄의여왕, 안동때기, 방실방실, 코난, 토끼, 감자꽃, 태양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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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희가 만난 사람 1] 시골 근무 기피? 행복하려면 이들 부부처럼

덧붙이는 글 | 올 한해 틈틈이 펜과 수첩 들고, 사진기 메고, 강원도 교육 현장을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글을 쓴 민병희 시민기자는 강원도 교육감입니다.



태그:#신남초, #드름지기, #민병희, #강원도교육청, #강원도행복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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