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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인천시 남구 인하대학교 의예과 건물에 최근 성희롱 사건으로 학내 징계를 받은 남학생들을 고발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8일 인천시 남구 인하대학교 의예과 건물에 최근 성희롱 사건으로 학내 징계를 받은 남학생들을 고발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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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한 명. 인하대 의과대학 집단 언어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숫자다. 해당 학과의 학년 당 정원은 26명이고, 15~16학번 두 학년이 가해에 가담했다. '두 학년에 걸쳤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가히 놀라운 숫자다. 같은 학교 학생들은 이 성폭력 사건을 '참사'와 같은 수준으로 인식할 것이다. 매 수업 인사를 나누던, 시험 자료를 주고 받던, 밤새 도서관을 함께 지키던 친구들은 이제 없다. '가해자'의 면면만 남아 있을 뿐이다.

(두 학년을 합친) 정원의 약 절반이 가담한 성폭력의 모습은 어땠을까. 인하대 의예과 15∼16학번 남학생 21명은 지난해 3∼5월 학교 인근 식당과 주점에서 같은 과 여학생을 성적으로 희롱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들은 여학생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스나마('그나마 성관계를 하고 싶은 사람 말해봐'를 묻는 말)'를 골라봐라", "걔는 얼굴은 별로니까 봉지 씌워놓고 (성관계를) 하면 되겠네", "걔는 지금 당장 불러도 (성관계를) 할 수 있는 사람" 등의 말을 했다(관련 기사 : "스나마 골라봐" 인하대 의대생들 '여학생 집단 성희롱' 파문).

처음엔 이들이 폭력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듯했다. 학교 측이 가해 남학생 21명에 대해 무기정학 5명, 유기정학 6명, 근신 2명, 사회봉사 8명의 징계를 내렸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해 놓으려는 정당한 조치였다. 지금껏 곳곳에서 일어났던 교내 성폭력 사건을 대응하는 과정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정의 구현'이라는 평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기류는 오래 가지 않았다. 가해자 가운데 7명이 징계가 지나치다며 지난달 인천지법에 징계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징계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어 징계를 받은 남학생 12명은 의과대 학생상벌위원회의 징계 의결에 불복, 의과대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지 못한 것일 뿐 여학생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삼거나 평가한 것은 아니고 단순히 농담조로 언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고, 피해자는 가해자를 다시 마주하게 됐다.

벽 없는 '감금', 천장 없는 '구속'

이후 학교의 대처는 모두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수업을 수개월 들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학교가 제시한 대책은 앞선 참사보다 더한 재앙이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성폭력 피해 여학생들을 강의실 창가 쪽에 한 줄로 앉히겠다. 그게 싫다면 모든 여학생을 맨 앞줄에 앉혀 남학생들과 '구분'하겠다." 의과대 관계자는 '의예과 특성  분리 수업은 불가능하며, 화상 수업은 검토 대상이 아니'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육면체의 투명한 감옥을 만들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은 그 감옥 안에 들어가라고 명령을 받은 것과 다름 없는 것 아닌가. 피해 이후 힘겹게 써내린 탄원 내용마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황에서, 2차 가해의 화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유예되는 순간, 피해자를 향한 또 다른 형벌은 시작되었다. 성폭력 발생의 시점과 처벌의 시점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거운 휴식기를 감당해야 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형벌이다. 이 시기, 피해자에게는 수준 높은 용기가 강요된다.

피해자는 꼭 살아남아 증언하고, 피해자성을 입증하고, 가해자를 당당히 마주하고, 그 앞에서 울지 않고 잘못을 꾸짖을 수 있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그 과정은 법정, 학교, 일상을 넘나들며 진행되는데, 사회는 피해자에게 무조건적인 관용을 요구한다.

피해자는 어느 순간에나 당당할 용기를 가질 필요도, 온순한 관용을 베풀 필요도, 그들의 처벌을 기다려줄 필요도 없다. 그러나 왜 피해자들에게 그 역할이 주어지는 걸까. 성폭력 발생과 처벌 사이의 시간을 누군가는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인내의 시간은 무한히 연장된다. 끊임없이 버텨내야 하는 피해자의 삶은 어떻게 될까.

오로지 피해자의 인내와 기다림을 창살 삼아 투명한 감옥을 짓는 것은, 성폭력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책임을 가진 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다. 인하대 사건에서도, 학교 측은 분리 수업/화상 수업 등을 '현실적인 이유'로 시행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의대 커리큘럼 특성상 (교원, 강의실 등 문제) 분리 수업이 불가하다는 건데, 가해자를 저 멀리 떨어트리고 그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일은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할 책임이 있는 이들은 물리적 조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정신을 건드리는 방법을 택한다. 감정을 베푸는 덴 돈이 들지 않고, 피해자의 정신을 건드리는 덴 시간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히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또 다른 가해를 불러올 수 있다.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 세밀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인하대의 조치는 미흡했다.

 성희롱 피해자가 왜 강의실 '투명감옥'에 갇혀야 하나
 성희롱 피해자가 왜 강의실 '투명감옥'에 갇혀야 하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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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안 당하는' 꿀팁은 없다

집단 성폭력 그 후, 가해자들은 유예의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이 시간 동안 가해자들은 그 대화들이 얼마나 장난스러웠는지, '남자들끼리 모여서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냐'라든지, '여자애들이 피해의식에 빠져 있는 것'이라든지, 성폭력 행위의 심각성을 희석할 수 있을 만한 모든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결국 무기정학이라는 징계처분은 사회 통념상 타당성을 잃었다'고, '우리는 여자애들과 같은 공간에서 수업을 들을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가해자들이 남성 문화의 기형적 관습에 기대어 변호를 준비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 피해자들은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위로를 경험하게 될 텐데, 이 위로는 지나치게 타자화된 시각으로 구성되곤 한다.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제시하는 성폭력을 '예방'하는 방법이나, 그 경험을 '이겨내는' 방법을 아우르는 공통의 테마는 '피해자에 대한 통제'다. 그 통제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작용한다. 짧은 치마를 입지 말라고 '규제'하고, 머리채를 잡아 끌고 갈 수 있으니 포니테일 헤어를 하지 말라고 '규제'하고, 으슥한 공간에 가지 말라고 '규제'하고, 밤늦은 시간에 다니지 말라고 '규제'한다.

'~하지 말라'는 식의 네거티브 규제가 피해자에게 가해져선 안 된다. 피해자는 성폭력 경험 전후 언제나 자신의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성폭력 경험 자체가 자기 검열적이고 폐쇄적인 일상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어선 안 된다. 그러나 타자의 시각으로 구성된 성폭력 대응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그 수준에 머문다. 인하대 측의 "피해 여학생들은 맨 앞줄에만 앉아라"는 대응 역시 "피해 여학생들은 가해자가 있는 강의실 뒤쪽으로는 가지 말아라"는 네거티브식 규제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피해자의 외형, 행동거지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성폭력 이후의 시간들 자체가 폭력의 재생산이다. 남성이 저지른 폭력에 대처할 책임을 여성에게 온전히 전가하는 시각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 폭력 문제를 대처하는 패턴은 대개 이랬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부조리하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토니 포터는 자신의 저서 <맨박스>에서 학내에서 강간 범죄가 일어나자, 남성들의 통행을 제약해 캠퍼스에서 셔틀 버스로만 이동하게 한 경험을 언급한다.

"우리의 의도는 이번 강간 사건을 비롯한 교내 성폭력 문제를 남성들의 문제로 인식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초점은 여성들이 아니라 남성들에게 맞춰졌다. 셔틀 차량으로 이동하게 된 남학생들은 더는 피해 여학생이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왜 그녀가 그 시간에 거기 있었는지, 그녀가 강간당했을 때 어떻게 행동했는지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대신 남학생들은 물었다. '어떤 놈이 저지른 짓이야?' 그리고 말했다. '나머지 학기 내내 셔틀에 실려 다니기 싫으니 얼른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어'."


피해자를 가두는 투명 감옥은 필요 없다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집단 성희롱 사건은, 사건 자체의 심각성을 넘어 해결 과정에서 성폭력 대응의 잘못을 그대로 답습해 2차 가해를 발생시켰다는 점에서 문제적인 참상으로 남게 됐다. 피해자들은 매 수업 시간 폭력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가해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고, 그것의 독성이 어느 순간에 발휘되어 더 큰 고통을 자아낼지는 알 수 없다.

'교실 맨 앞줄'이라고 칭해지는 투명한 감옥 속에 앉아, 같은 공간에 있는 가해자들의 시선이 등 뒤로 꽂히는 것을 꼿꼿하게 버텨내며 그렇게 처벌 유예의 시간을 견뎌낼 것이다. 다시 말해, 피해자들은 가해자들보다 먼저 억압의 형벌을 버텨내야 한다. 

피해자를 가두는 투명 감옥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시시각각 성폭력의 징후에 휩싸인 이 시대 공동체에 진짜 필요한 것은, 반성과 후회로 단단히 짜인, 차가운 사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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