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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얕은 지식이 대세인 시대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 집요하게 파고들어 답을 찾아내는 이들의 끈기와 노력 없인 넓든 얕든 애초에 지식이란 것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넓고 얕은 지식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지식엔 그것을 연구하고 발굴해낸 지식인의 피와 땀이 서려있고, 지식 소비자인 우리가 적당히 교양있고 먹고 사는 것 말고도 관심있는 분야가 있는 사람이라는 자존을 획득할 정도로만 그것을 취할 뿐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역사 속 술>은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집요한' 책이라 반갑다.

 〈기독교 역사 속 술〉 표지
 〈기독교 역사 속 술〉 표지
ⓒ 시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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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문 교수의 <기독교 역사 속 술>은 기독교와 술의 애매한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든다.누군 '술 담배 하면 지옥간다'는데, 성경책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포도주에 비유된다.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 중 술자리를 피할 수 없는 직장인이나 사업가들은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면서도 '마셔도 되나' 하는 고민을 떨치지 못한다.

넓고 얕은 지식을 추구하는 책이었다면,<기독교 역사 속 술>의 저자는 여기에 대한 답을 미리 정해놓고 그 근거가 될만한 사료 몇 가지를 첨부하는 것으로 원고를 마무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학자인 저자 성기문 교수는 어려운 길을 일부러 간다. 빈 소주잔을 쥐고 어떡하면 좋을지 '빨리 빨리'를 외치는 한국 사람들 앞에서 저자는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고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성경은 술에 취한 상태를 '죄'라고 분명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음주까지 죄로 취급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럼 음주 측정기도 없는 과거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허용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성찬식 때 사용되는 '포도주'가 실은 '포도즙'의 (일종의)오역일 수 있다는 주장도 실려 있다. 기독교는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과 음료를 성찬에 이용하도록 하는데 술엔 누룩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술을 마셔도 된다는 건가,안 된다는 건가'에 대한 예, 아니오를 찾고자 책을 고른 독자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앞서 말했듯, 예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닐 뿐더러 그 복잡한 결 하나하나를 모두 이해해야 음주에 대한 나름의 가치관을 세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면 결국엔 음주 문제에 대한 답은 나온다. 이 리뷰를 쓰는 기자도 기독교인으로서 늘 애매했던 음주 문제에 대해 나름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책 어디에도 '그러하니 술을 마셔도 좋다' 혹은 '안 된다'고는 나와 있지 않다.

단지 성경에 나온 술에 대한 다양한 구절들을 모두 끌어와 재정리한 표와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던 혹은 술이 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집요한 분석과 인용이 있을 뿐이다. 결국 판단은 독자 몫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즉, 이 책을 읽기 전과 후 모두 음주에 대한 판단의 몫이 독자에게 있다고 해서 독자들이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가 같냐고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독자는 '나는 알코올성 음료를 아예 먹지 않겠어'부터 '뭐 이런 이유로 음주가 죄악시됐던 거라면 난 지금처럼 매주 술을 즐길래'까지 다양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하지만 이것은 '알고',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이 책의 가치도 거기에 있다.술을 먹으란 건지 말란 건지 알 수 없는 성경의 모호한 태도 속에서 수많은 신학자와 성직자들은 이 문제를 수백년이나 얼버무렸다. 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문제,하지만 또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기엔 미지근하여 뜨거운 감자라기보다 '미지근한 감자'정도 되는,그래서 다들 그냥 뭉개고 있었던 문제에 대해 누구도 차마 거내들지 못했던 매스를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기독교인이나 술의 역사에 관심이 깊은 이들 외에도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른 한 가지 맛이 진열된 쇼윈도 너머로 고작 한 숟가락씩 맛보는 정도를 독서이자 교양으로 알았던 우리에게 너무나 오래간만에 다가온 '집요한 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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