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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입법을 하는 곳이지 법을 따르는 곳은 아니다." 이 모순적인 말은 국회 인턴을 취재하며 들은 자조 섞인 얘기입니다. 정부 방침에 따라 비정규직을 없애기 위한 법을 만드는 공간인 동시에 비정규직인 인턴을 못 본 척 하던 곳이 바로 국회입니다. 많은 인턴들이 보좌관이 되고 싶어 3년이고 4년이고 국회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내년 1월 1일이면 2년 이상 근무한 인턴은 국회를 강제로 떠나야 합니다. 어떻게 된 사연일까요. <오마이뉴스>는 총 4편의 기사를 통해 ‘국회의 그늘’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편집자말]
국회의사당 건물
 국회의사당 건물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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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잘못해서 내 새끼들을 내쳐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는데, 죽어봐야 죽은 줄 아나? 국민 여론이 안 좋아서 논의를 못한다고 한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일을 저지르고 있다."

주해돈 전 자유한국당 보좌진협의회 회장 언성이 높아졌다. 여기서 '내 새끼'는 국회 인턴이다. 한 달 전 임기가 끝난 주 전 회장은 국회 인턴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하루 빨리 국회 운영위에서 국회 인턴의 정규직화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가 시간이 촉박하다고 말하는 것은 오는 2018년 1월 1일이면 국회 인턴 대량 해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사무처는 지난 1월 "국회 인턴의 총 재직기간은 2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관련 기사 : 해고 날벼락 떨어진 국회인턴 "국회는 법 지키는 곳 아니다"). 이에 따라 11개월 쪼개기 계약 등으로 2년 이상 국회에서 근무했던 100여 명(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 추산)의 인턴이 국회를 떠나야 한다.

국회 보좌직원에 8급 비서 1명을 증원해 인턴 정규직화의 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 여야 보좌진협의회의 공통된 의견이다. 주 전 회장은 "인턴들은 여기서 자리 잡아서 일할 수 있다는 희망을 달라는 것"이라며 "행정부만 정규직화 하지 말고 입법부도 일자리 300개 늘리자"라고 말했다.

윤상은 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 회장은 8급 비서 1명 증원과 함께 인턴 1명 운용(12개월)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윤 회장은 "인턴들도 국정감사를 한 번 치러보면 국회 일이 적성에 맞는지 스스로가 알 수 있고, 보좌진이 되기 위해 트레이닝 할 시간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너네 먹고 노는데...' 국민 감정 어떻게 깨느냐 문제"

토대는 마련돼 있다. 인턴 정규직화를 내건 법안 3개가 국회 계류 중이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국회 인턴 폐지 및 8급 비서 1인, 9급 비서 1인 증원),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인턴 6개월로 축소 및 8급 비서 1인 증원),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인턴 폐지 및 8급 비서 1명 증원)이 낸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그것이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문제의식은 유사하다. 지난 6월 30일 개정안을 낸 채 의원은 법률 제안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현재 근무 중인 대부분의 인턴이 기존 보좌직원과 유사한 업무를 하고 있으며 12개월 이상 근무하고 있음에도 상당수가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 채 11개월 쪼개기 계약으로 계약기간을 연장하여 근무하고 있다. 국회 사무처의 인턴제도 변경안에 따라 현재 총 근로 기간이 2년 이상인 다수의 인턴이 2018년 부로 자동으로 해고되고 재고용되지 못할 예정이므로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

문제의식은 공유돼있다. 문제는 예산이다. 채 의원 안대로 2018년에 보좌진 증원이 이뤄질 경우 291억 3500만 원 가량이 필요하다. 현재 인턴 제도를 운영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123억 6800만 원. 160억 원 가량이 추가로 요구된다.

지난 2월 국회 운영위에서 김해영, 김병관 의원이 낸 개정안을 두고 논의를 했지만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선에서 조금의 진전도 이뤄지지 않았다.

공회전을 거듭하는 상황에 대해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 아무개 인턴은 "이 문제를 앞장서 부담 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라며 "'너네(국회의원) 놀고 먹는 사람인데 (왜 세금을 더 써서 보좌진을 뽑나)'라는 국민감정을 어떻게 깨느냐, 어떻게 설득하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비서 아닌 정책적 조력자인 '보좌관'

이 같은 부정적 여론에 대해 윤 회장은 "국민 입장에서도 훈련돼있는 보좌진들이 일을 해야 국민의 소중한 권익을 더 잘 보호하고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지 않겠나"라며 "현재 있는 인턴에게 정규직화의 기회를 줘서 숙련된 정책보좌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쓰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그냥 버려야 할지 생각해줬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잘 키운 인턴이 비서관이 되고 보좌관이 된다면 국회 사정에 대해 빠삭하게 알아 새어나가는 예산도 더 잘 막는 역할을 할 수 있다"라며 "2년 동안 잘 교육받았는데 국회에서 더 이상 일을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산 낭비다, 애써 키운 고급 인력이 그대로 쓸모없어진다"라고 말했다.

주 전 회장 역시 "인턴들을 2~3년 동안 트레이닝 시켰는데 다른 곳으로 보낸다? 인재 양성이 아니라 인재를 완전히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인턴 생활을 거쳐 현재는 비서로 일하고 있는 박 아무개씨는 "인턴 생활이 현재 보좌진으로 일하는 데 도움이 됐다, 확실한 차이가 있다"라며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게 더 낫다, (국회 일이) 절차가 많고 체력적으로 어려운데 그걸 안 겪은 사람들은 너무 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보좌진의 질이 의원실, 아니 국회의 질이다."

23년차 국회 보좌진 서인석 보좌관은 자신의 책 <국회 보좌관에 도전하라>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보좌진에 대해 "과거는 말 그대로 보스를 위한 '비서'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의원의 의정활동을 보좌하는 '정책적 조력자'"라며 "일차적으로 모든 자료가 보좌진 차원에서 준비되는데 실무 인력 한 사람의 역량에 의해 의원의 의정활동 결과가 달라진다, 쌓아온 노하우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경험 많은 직원 한 명이 아쉬운 곳"이라고 설명했다.

인턴들에게 정규직의 길을 열어주는 게 국회의 질을 높이는 한 걸음이 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가진 유세에서 시민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가진 유세에서 시민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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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청년 10명 중 서너 명이 실업자입니다. 취업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이죠? 정규직 되는 게 청년들의 꿈이 되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세금으로 일자리 만들어 준다고 그렇게 걱정들 하시는데 청년들에게 희망을 만들어주는 것, 지금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통령이 직접 하겠습니다."

불과 3달 전인 4월 30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서울 신촌에서 한 유세 발언이다. 이제 국회가 그 뜻을 받아 가장 가까운 곳부터 '실천'해야 할 때다.

윤 회장은 "국회 인턴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지위와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라며 "정세균 국회의장, 우윤근 사무총장, 각당 대표와 원내대표님이 꼭 신경 써야 할 현안으로 여겨달라"고 당부했다.


태그:#국회인턴, #국회그늘,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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