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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다음 스토리펀딩에도 동시에 연재합니다. 중증장애인 활동가들을 후원할 수 있고, 후원금은 벌금을 대신 내는 데 쓰입니다. 2화는 기자가 세 차례(19·20·24일) 서울구치소를 찾아 접견하며 취재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 기자 말

[노역장 가는 길①] 구치소로 향한 휠체어 한 대, 그는 '노역'을 택했다

장애인 활동가 박옥순, 이형숙씨가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노역을 가기전 기자회견을 마치고 노역을 신청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장애인 활동가 박옥순, 이형숙씨가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노역을 가기전 기자회견을 마치고 노역을 신청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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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프부종은 사람을 퉁퉁 붓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팔다리가 붓는다. 치료 방법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박옥순씨의 경우는 아니다. 5년 전, 재활병원 여러 곳을 다녔지만 약이나 치료법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 의사는 혈액순환을 돕는 마사지를 권했다. 발가락부터 허벅지까지 감싸는 마사지 기계를 산 건 그 때문이다. 옥순씨에게 마사지기는 유일한 의료기기였다.

"혈액순환을 도와주는 의료기기가 필요해요. 반입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서울구치소에서 첫날 밤을 지내고 맞은 18일 아침. 옥순씨는 의무관 면담을 요청했다. 병을 앓고 있다고 설명하며, 늘 사용하던 의료기기 반입을 요청했다. 이미 그를 면회하러 온 친구들이 기계를 챙겨왔을 터였다. '다리를 보여주고 상황을 설명하면 아무리 구치소라도, 조치는 취해주겠지' 친구들과 옥순씨는 생각했다.

"당신은 그런 거 하려고 들어온 게 아닙니다. 차렷 자세로 똑바로 앉으세요. 내 앞에서 이런 자세로 앉아있을 처지가 아닙니다."

의무관이 말했다. 부은 다리를 곧게 펴고 있기 힘들어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에 기대고 있다가 들은 말이다. 의무관은 무릎부터 발목까지 부어 누렇게 된 다리와 발가락 마디마다 난 염증을 고려하지 않았다. 림프부종을 설명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의무관은 옥순씨의 유일한 의료기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건 의료기기가 아닌 마사지기라며 반입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돌아가시죠. 끝났습니다." 

2분도 안 되어 진료가 끝났다. 옥순씨는 진료를 받을 때마다 발을 내보이며 마사지기 반입을 요구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은 이런 옥순의 상황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알리며 조사를 요청했다. 조사관이 구치소를 찾아 상황을 파악했다. 3박 4일 만에 옥순씨는 마사지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의무관의 고압적인 태도는 쉽게 잊히지 않았다. '부당한 태도를 참아야 하는 처지'라는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30여 년,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아내며 이 사회로부터 인이 박이도록 들어온 말. 차별을 지워내기 위해 편견의 딱지를 떼기 위해 소리 내고 행동하며 싸웠던 그 말을 구치소에서 들었다. 옥순씨가 300만 원의 벌금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세상은 장애인을 등급별로 취급했다. 고 송국현씨는 중증장애인임에도 장애등급 3급을 받았다. 국현씨는 활동지원 서비스 신청조차 할 수 없는 등급이 됐다. 그는 제 몸을 가누기 어려워했지만, 국가는 그를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필요 없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2014년 국현씨의 집에 불이 났다. 그는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국현씨는 뒤늦게 발견됐고, 3일 만에 숨을 거뒀다. 옥순씨는 국현씨를 죽음으로 내몬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라고 외치다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부당한 제도에 부당하다 말 하다 받은 벌금을 낼 수는 없었다. 구치소에서 하루 10만 원 씩 꼬박 30일을 있어야할 터였다 옥순씨는 노역을 택했다.

"욕창은 무슨... 살이 문제입니다"

장애인 활동가 이형숙씨가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노역을 가기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장애인 활동가 이형숙씨가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노역을 가기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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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활동가 박옥순씨가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노역을 가기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장애인 활동가 박옥순씨가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노역을 가기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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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구치소에 '사람의 권리'는 없었다. 수치심도 모욕감도 느낄 수 없는 존재처럼 대했다.

"엉덩이 좀 보여줘봐요."

의료과장은 참 쉽게 말했다. 이형숙씨가 에어매트가 필요하다고 하니 돌아온 답이다. 형숙씨는 지체장애 1급, 소아마비 장애인이다. 잠을 잘 때 빼고는 방석이 깔린 휠체어에 몸을 기댄다. 하지만 구치소의 생활은 그와 휠체어를 떼어놓았다. 이동할 때만 겨우 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딱딱하고 열이 오를 대로 오른 구치소 바닥은 그의 엉덩이를 짓무르게 할 게 뻔했다.

"내가 의사라 압니다. 욕창 생길 장애가 아니에요. 살이 쪄서 엉덩이가 집히는 겁니다."

그는 엉덩이를 봐야만 장애를 인정하겠다는 태도였다. 휠체어에서 침대로 간신히 끌어올려지다시피 올라갔다. 욕창이 아니라 살이 문제라는 질타를 받았다. '됐다, 그만하자, 버티자' 형숙씨는 애원하고 싶지 않았다. 엉덩이를 까이고 장애를 재단하는 의사의 앞에서는 어떤 설명도 빈약할 게 뻔했다.

구치소라면 당연히 참아내야 하는 수치일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일이 생겼다. 서울구치소는 하루에 단 30분만 운동을 허락했다. 볕도 공기도 마음껏 쏘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다만 휠체어로 운동장에 나가려면 족히 30cm는 돼 보이는 턱을 넘어야했다. 옥순씨가 형숙씨의 휠체어를 끌고 밀며 운동장에 나가다 결국 사달이 났다. 옥순씨와 형숙씨 그리고 휠체어가 함께 고꾸라졌다.

맞은편에 휠체어가 지나기 좋은 경사로가 있었다. 안전바가 설치된 경사로였다. 지면에서 경사로 비율이 12도인 경우 휠체어 이동이 안전하며 수월하다. 이 경우 흔히 "경사로가 예쁘다"고 말한다. 그렇게 예쁜 경사로가 서울구치소 운동장에 설치돼 있었다. 다만 형숙씨에게 맞은편 경사로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 앞은 지나다닐 수 없게 폐쇄됐다.

두꺼운 철문 건너편, '그녀'가 있다고 했다

장애인 활동가 박옥순, 이형숙씨가 옥중에서 쓴 일지.
 장애인 활동가 박옥순, 이형숙씨가 옥중에서 쓴 일지.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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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들은 형숙씨와 옥순씨가 수감된 옆방의 주인 때문일 거라고 수군거렸다. 그 방은 철제로 된 현관문이 따로 있었다. 완전히 폐쇄된 공간, 교도관만 지나다닐 수 있는 곳이다. 교도관들은 창고라고 말했지만, 이상했다. 오전 6시 40분이면 그 방에도 배식이 들어갔다. 9시 50분에는 마실 물도 들어갔다. 사람은 있지만 접근은 불가능하고 교도관들은 입을 닫고 재소자들은 수군거리는 그 방의 주인.

두꺼운 철문 건너편 방에 박근혜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검찰이 18개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해 일주일에 4번 재판이 열리는 전 대통령. 서울구치소를 향하는 길목마다 내 걸린 '박근혜 대통령님은 죄가 없습니다', '박 대통령님 영원히 사랑합니다' 플래카드의 주인공.

교도관들에게 옆방 주인이 박근혜가 맞는지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맞다고도 틀리다고도 안 했다. 슬쩍 웃을 뿐이었다. 사실 옆방의 주인이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노약자와 장애인을 위해 만들었을 경사로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형숙씨는 교도관에게 따져 물었다. 박근혜가 옆방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래서 경사로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거냐고. 휠체어가 이용하지 못하는 경사로가 무슨 소용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형숙씨의 휠체어를 가로막던 30cm의 문턱이 그 날로 낮춰졌다. 교도관은 기존의 경사로를 사용하는 대신 새 경사로를 만들었다. 

사람은 없고 죄만 있는 구치소를 나오며

장애인 활동가 박옥순, 이형숙씨가 24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출소 직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장애인 활동가 박옥순, 이형숙씨가 24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출소 직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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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활동가 박옥순, 이형숙씨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가인권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동료 활동가들이 준비한 축하 케익에 촛불을 끄고 있다.
 장애인 활동가 박옥순, 이형숙씨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가인권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동료 활동가들이 준비한 축하 케익에 촛불을 끄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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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활동가 이형숙씨가 24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출소 직후 지인들과 인사를 하기 위해 차량리프트에서 내리며 웃고 있다.
 장애인 활동가 이형숙씨가 24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출소 직후 지인들과 인사를 하기 위해 차량리프트에서 내리며 웃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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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활동가 박옥순씨가 24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출소 직후 남편을 만나 입맞춤을 하고 있다.
 장애인 활동가 박옥순씨가 24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출소 직후 남편을 만나 입맞춤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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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순씨와 형숙씨는 꼬박 7박 8일을 버텼다. 발의 염증을 견뎌내며 부은 몸을 참아내며 멍이 뒤덮인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그 곳을 버텼다. 함께 노역에 나선 경호씨는 2박 3일을 견뎠다. 그 사이에 방을 두 번이나 옮겨야 했다. 교도관 한 명이 15개 방을 감시하고 있었다. 한 뼘을 움직여도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경호씨는 교도관에 기댈 수 없었다. 같은 방 재소자들은 "우리도 더운 날씨에 어렵게 때우는 데 웬만하면 빨리 나가쇼"라는 말을 던졌다.

물도 밥도 줄여 2박3일 동안 대변을 안 보며 버텼지만 한계는 왔다. 결국 경호씨는 119구급차에 실려 서울구치소 문을 나섰다.

"판사님, 우리가 법을 어겼다면, 나라는 왜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까?"

재판 중 형숙씨가 판사에게 호소했던 말이다. 휠체어로 이동할 자유를 달라고, 장애가 있지만 자립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부양의무가 아닌 내 몫의 삶을 오롯이 살아낼 수 있게 해달라고. 대선후보가 약속하고 지자체가 다짐해도 금세 입을 닫고 예산이 없다고 뒷짐 진 이들 앞에서 형숙씨는 물었다. 판사는 "그래도 법은 지키라"고 답했다.

약하고 가난하고 낮은 자에게만 가혹한 법을 따르고 싶지 않았던 형숙씨와 옥순씨 그리고 경호씨는 노역을 택했다. 그리고 다시, 구치소의 차별을 경험했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움츠린 채 눈은 아래를 향하는 사람이 가득한 공간을 겪어냈다. 사람은 없고 죄만 있는 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옥순씨와 형숙씨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았다. 구치소에 있는 사람도 사람이라는 외침을 시작했다.


태그:#노역, #장애인, #노역장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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