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없는 눈과 생기 없는 표정의 사내가 포클레인으로 한참 야산의 땅을 판다. 그리고 발견되는 정체모를 유골들에 사내는 과거의 괴로운 기억이 떠오른듯 괴로워 한다.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의 진압군이었던 강일(엄태웅)은 그 뼈를 뒤로 하고 돌연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영화 <포크레인>의 시작이다.

김기덕 감독이 각본과 제작을 맡고, 이주형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포크레인>은 폭력의 가해자 시점에서 광주 항쟁을 다룬 작품이다. 이미 두 외지인의 시선으로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택시운전사>가 개봉을 앞둔 시점에서 여러 모로 비교가 가능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포크레인> 관련 사진.

영화 <포크레인>의 한 장면. ⓒ 김기덕 필름


책임자는 누구인가

영화는 시종일관 사람을 찾아나서는 강일을 중심에 내세운다. 잃어버린 가족 혹은 친구를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980년 5월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함께 학살한 부대원들을 찾고 있다. 처음엔 후임, 그리고 동기, 이후엔 상사를 찾아 나서며 그는 말없이 상대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말을 들어준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부대원들의 신분과 처지는 다양하다. 알코올중독자로 사는 이부터 평범한 은행원, 조폭 등. 하지만 어딘가 행동과 사고방식이 이상하다. 강일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과거의 기억에 괴로워하며 자책하거나 뜬금없이 찾아온 강일을 원망한다. 안타까운 눈 혹은 담담한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던 강일은 점차 계급이 높은 자들을 찾아다니며 일관된 질문을 던진다.

"충성! 왜 그곳에 우리를 보냈습니까?" 몸이 기억하는 군대식 예법을 차린 채 강일은 소대장, 중대장, 사단장, 나아가 당시 정부 요직에 있던 현직 국회의원과 대통령이었던 자의 사택 앞까지 찾아간다.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어쩔 수 없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자와 "역사적 현장 앞에 있었던 걸 자랑스러워하라"며 오히려 책망하는 자들. <포크레인>은 이 두 반응을 통해 사람들의 뻔뻔함과 반성 없는 태도를 제시한다.

영화적으로 세련된 구성은 아니다. 대사는 단순하고 양도 적으며, 등장인물에 따라 감정선이 들쭉날쭉하기도 한다. 다만 강일이 진행하는 여정의 힘이 커서 그 약점이 다소 가려질 뿐이다. 김기덕에게 시나리오를 받고 연출을 맡은 이주형 감독은 "로드무비까진 아니지만 독특한 구성이라 생각했다"며 "끝없이 주인공은 자신에게 물어봤을 그 질문을 상사들에게 던지며 답을 구하고자 했던 것"이라 언론 시사 직후 간담회에서 설명했다.

최종 명령권자 혹은 그렇게 추정되는 전 대통령은 말이 없다. 영화에서 실명이 나오진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당시 최고 통수권자는 결국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의 사저 앞에서 힘 없이 진압당하는 강일의 모습만 묘사될 뿐이다.

설득의 과정

 영화 <포크레인> 관련 사진.

영화 <포크레인>을 연출한 이주형 감독. 지난 20일 언론시사회 당시 모습. ⓒ 김기덕 필름


강일이 계엄군 관련자들을 찾아 나설 때 사용하는 교통수단은 포클레인이다. 거대한 몸집에 느린 속도로 이동하는 포클레인은 그 자체로 괴이하고 생경한 느낌을 전달한다.

이에 대해 이주형 감독은 "도로에서 포클레인으로 전국을 다니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기에 영화는 일종의 판타지"라며 "(시민들을 학살하는 데 쓰인) 탱크의 궤도와 닮았고 겉면에 많은 흠집이 나 있는 건 우리나라의 상처들을 의미한다. 숨기고자 하는 진실을 퍼낸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도로를 달리던 포클레인을 추월하는 여러 승용차의 모습을 통해 감독은 빠르게 변하는 우리 사회와 점점 잊혀 가는 역사적 진실을 대비시키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추측할 수 있었다.

<포크레인>은 본래 5년 전부터 김기덕 감독이 완성해놓은 이야기였다. 제작비 조달 등 여러 제반 사정으로 쉽게 만들어지진 못했지만 이주형 감독은 "지난 정권(박근혜)에 개봉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광주 항쟁 관련자들의 아픔을 제가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김기덕 감독님이 말하며 시나리오를 주셨다"고 연출 계기를 전했다. 엄태웅 역시 지난한 설득과정을 거쳤다. 불미스러운 일로 활동을 중단한 그였지만 이주형 감독은 "다른 배우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고 반드시 엄태웅 배우여야 했다. 매우 오랜 시간 설득했다"고 덧붙였다.

 영화 <포크레인>의 한 장면

영화 <포크레인>의 한 장면 ⓒ 김기덕 필름


표정이 풍부하지 않은 엄태웅이 묵직하게 감정을 끌고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여러 모로 활동에 부담을 느꼈을 그가 출연을 결정한 후 말없이 매일 상당한 시간을 포클레인 운전에 쏟았다는 후문. 영화 속 포클레인 신은 대역 없이 전부 그가 도맡았다.

책임자들에게 계속 질문하는 강일의 모습과 함께 이 영화에서 오래 남는 또 다른 대사가 있으니 바로 국회의원과 담당 형사의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것, 묻어두고 잘 살면 된다"는 이 대사는 오늘날 기득권과 반성 없이 사는 일부 시민들의 유행어처럼 남아있다. 그렇다면 <포크레인>은 가해자의 입장에 선 영화인가? "계엄군이든 학살당한 시민이든 모두가 피해자"라는 이주형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여전히 진상 규명이 필요한 당시 사건에 대한 또 하나의 의미있는 텍스트로 남을 것이다.

한 줄 평 : 끝나지 않은 과거 청산, <포크레인>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평점 : ★★★(3/5)

영화 <포크레인> 관련 정보
각본 : 김기덕
연출 : 이주형
출연 : 엄태웅
제작 및 배급 : 김기덕필름
러닝타임 : 92분
관람등급 : 15세 관람가
개봉 : 2017년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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