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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장군 생가터에 자리잡고 있는 명보 아트홀의 출입문 쪽 모습. '생가터 표지석'은 이 문 오른쪽 앞에 있다.
 이순신 장군 생가터에 자리잡고 있는 명보 아트홀의 출입문 쪽 모습. '생가터 표지석'은 이 문 오른쪽 앞에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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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1545년(인종 1) 음력 3월 8일(양력 4월 28일) 서울특별시 중구 초동 18-5 명보 아트홀 일대에서 태어났다. 현재 명보 네거리의 모서리 인도에는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장군이 출생한 곳에 생가가 복원되어 있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지만, 표지석에 '생가지'라 쓰지 않고 '생가터'라고 새겨둔 것이 그나마 마음에 위안을 준다. 표지석의 글을 읽는다.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忠武公李舜臣生家址
Site of Yi Sunsin's Birthplace
이순신(1545∼1598)은 조선 중기의 명장이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당시 옥포, 한산도 등에서 해전을 승리로 이끌어 국가를 위기에서 건져내었다. 선조 31년(1598) 노량에서 전사하였으며, 글에도 능하여 《난중일기》를 비롯하여 시조와 한시 등을 많이 남겼다.'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표지석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표지석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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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순과 류성룡은 이웃사촌

당시 이순신의 집 근처에 류성룡이 살았다. 1597년 1월 27일자 『선조실록』을 보면 이순신보다 세 살 많은 류성룡은 '신의 집은 이순신과 같은 동네였기 때문에 그의 사람됨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라고 선조에게 말한다.

류성룡은 『징비록』에도 '이순신은 어릴 때 영특하고 활달했다. 다른 아이들과 모여 놀면서 나무를 깎아 만든 화살로 전쟁놀이를 했다.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눈을 쏘려고 해 어른들도 이순신을 꺼려 감히 아이들이 노는 앞을 지나가려 하지 않았다. (중략) 말 타고 활쏘기를 잘 했으며 글씨를 잘 썼다.'라는 증언을 남겼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어른의 눈을 쏘려고 했다는 대목은 사실의 묘사라기보다 이순신의 강직한 성품을 나타내는 데 지나치게 매몰된 허술한 과장으로 보인다.

경제적 몰락과 이순신 가족의 아산 이주는 무관

이순신의 가족은 그가 어릴 때에 충남 아산으로 이사를 간다. 아산은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의 고향이다. 이순신 가족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아산으로 내려간 데 대해서는 집안이 경제적으로 몰락한 때문이라는 추정이 많다. 증조할아버지인 이거(李琚)는 병조참의(정3품) 등을 지냈지만 할아버지 이백록(李百祿)과 아버지 이정(李貞)은 관직을 맡은 바가 없다는 사실에 근거를 둔 추론이다.

2대에 걸쳐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고 해서 반드시 그 가문이 경제적으로 몰락한다는 법은 없다. 김대현은 『충무공 이순신』에  그런 추정이 설득력이 없다는 견해를 밝혀두었다. 김대현은 '이순신이 서울에서 태어나 언제 아산으로 왔는지는 아직까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어려서 집안이 몰락하여 외가가 있는 아산으로 갔다는 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한다.

 아산 현충사 경내의 이순신 '옛집' 전경. '옛집'이라는 표현은 현지 안내판의 것이다. 흔히 고택(古宅)이라고 쓰는 데 견주면 순수 우리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데서 모범이라 할 만하다.
 아산 현충사 경내의 이순신 '옛집' 전경. '옛집'이라는 표현은 현지 안내판의 것이다. 흔히 고택(古宅)이라고 쓰는 데 견주면 순수 우리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데서 모범이라 할 만하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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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은 '오히려 어머니인 초계 변씨가 이순신을 비롯한 네 형제에게 재산을 나누어준 문서(「초계 변씨 별급문기」)를 보면 이순신 집안은 전국에 걸쳐 적지 않은 노비와 농토가 있어 상당히 부유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라면서 경제적 몰락설과는 반대되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렇게 볼 때 이순신 가족의 아산 이주는 조선 중기까지 일반적으로 실행되었던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 남자가 결혼 뒤 상당 기간 처가에서 거주하는 풍습)의 한 사례로 여겨진다.

이순신 아산 이주는 남귀여가혼의 일반적 사례

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357 현충사 경내에는 32세(1576년)에 급제하여 함경도 삼수 동구비보(童仇非堡)의 권관(종9품)으로 발령을 받아 떠날 때까지 유년 시절과 20대의 이순신이 살았던 '옛집'이 복원되어 있다.

집 입구에는 이순신 가족이 사용했던 우물 '충무정'이 남아 있고, 집 뒤로 돌아서 들어가면 충무공이 활쏘기 연습을 했던 장소와, 충무공의 셋째아들 이면(李葂)의 묘소가 있다. 이면은 남해안 일대에서 줄곧 근무하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 변씨를 모시고 아산 본집에서 거주하던 중 기습 공격을 해온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충무공의 3남 이면의 묘소. 이순신 '옛집'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충무공이 활 쏘기 연습을 했던 터를 지나 더 안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충무공의 3남 이면의 묘소. 이순신 '옛집'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충무공이 활 쏘기 연습을 했던 터를 지나 더 안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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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 경내 충무공 옛집을 안내하는 해설을 읽어본다.

'옛집(Admiral Yi's Home, 故居, 旧家屋)
이 집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무과에 급제하기 전부터 사시던 집으로 종손이 대대로 살았으며, 일부는 개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집 뒤편에는 충무공의 위패(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적은 작은 나무패)를 모신 가묘(집안 내 사당)가 있어 매년 기일(돌아가신 날 : 음력 11월 19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괄호 안의 작은 글씨도 현지 안내판의 설명임)'

현충사 경내에는 이순신 옛집, 활쏘기 연습 터, 이면 묘소, 우물 충무정 외에도 사당 본전, 구 사당,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등 둘러볼 것이 많다. 특히 기념관 안에는 임진왜란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하고 충실한 게시물과 유물·유품들이 있으므로 꼼꼼하게 살필 일이다. 

 현충사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충무공의 장검
 현충사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충무공의 장검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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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순신이 과거 급제 후 처음으로 근무했던 함경도 삼수의 동구비보는 아무리 충무공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찾아볼 길이 없다. 멀고 험해서가 아니다. 김성일이 「동구비보를 지나며(過童仇非堡)」에서 '골짜기가 갈라져 하늘은 틈이 생겼고, 강이 깊어 땅은 저절로 나뉘었네'라고 그 험난한 지형을 찬탄했고, 김소월 또한 「삼수갑산」에서

'삼수갑산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
오고가니 기험타 아하 물도 많고 산 첩첩이라 아하하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삼수갑산 멀더라 아하 촉도지난이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가네
불귀(不歸)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가네
오다가다 야속타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내 고향을 가고지고 오호 삼수갑산 날 가두었네
불귀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아하하'

하고 노래한 것처럼, 새가 되어야 갈 수 있을 만큼 험악한 산맥 가운데에 숨어 있는 오지이기 때문이 아니다.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어서 그렇다. 류근삼은 「단풍」에서

'개마고원에 단풍 물들면                
노고단에도 함께 물든다.                      
분계선 철조망                         
녹슬거나 말거나                       
삼천리 강산에 가을 물든다'

라고 했지만 '지구상 유일의 분단 국가'를 사는 우리는 충무공이 첫 관직 생활을 했던 유적지 동구비보에 가볼 수가 없다. 소월은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라고 한탄했지만 우리는 '분단이 우리를 가두었네'라고 절규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분단이 가로막는 이순신 유적 답사 여행

충무공은 죽음으로 지킨 강산이 이렇게 허리가 두 동강 난 채 피 흘리는 신세가 될 줄은 차마 짐작도 하지 못했으리라. 『난중일기』의 표현을 빌면 '이미 죽은 영혼이 되었으니 (후대 사람들이) 이렇듯 막심한 불충을 저지른 줄을 충무공이 어찌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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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소설 의열단><소설 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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