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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에서 파주 적성 쪽으로 371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영국군참전기념비 못 미친 곳에 국내 최장의 감악산 출렁다리가 나온다.
▲ 감악산 출렁다리 양주에서 파주 적성 쪽으로 371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영국군참전기념비 못 미친 곳에 국내 최장의 감악산 출렁다리가 나온다.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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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서 371번 도로를 따라 파주 적성 쪽으로 가다보면 영국군참전기념비 못 미친 곳에 범륜사 입구 표지판이 보인다. 이 범륜사는 본래 운계사라는 절이었는데 바로 앞에 운계폭포가 있어 예로부터 감악산의 명승으로 이름이 높았다. 미수 허목을 비롯하여 우계 성혼, 추강 남효온 등이 이곳을 찾아 그 소회를 시와 문장으로 남겼는데, 예전에는 교통의 불편과 군사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 절경을 감상하기 어려웠으나 지금은 민간인의 출입이 자유로워진데다가 운계폭포 바로 앞까지 국내 최장의 감악산 출렁다리가 설치되어 주말에는 인파가 차고 넘친다.

미수 허목은 현종 7년(1666) 9월, 윤휴 등과 함께 이곳 운계사를 방문하고 나서 그 소회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날 저녁에 운계에 들어서니, 눈이 온 뒤라서 바위와 벼랑, 돌길과 폭포 등에 기이한 풍경이 많았다. 나는 4월에 삼부 폭포(三釜瀑布)를 보았고 9월에 심원사(深源寺)에 들어가서 산수기(山水記)를 지었는데, 이 두 산은 모두 운계의 수석만 못했다. 그 석동(石洞)을 청학동(靑鶴洞)이라 하고 그 가장 위층의 바위를 무학대(舞鶴臺)라 하는데, 무학대에 올라가 운계비(雲溪碑)를 읽어 보고 운계사에서 잤다.  - 『기언(記言)』 별집 제9권 「유운계기(遊雲溪記)」-

미수의 글을 통해서 지금의 범륜사가 자리하고 있는 골짜기 일대를 청학동이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청학동은 예로부터 속세를 벗어난 은둔지를 일컬음이니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운계폭포 상류에 다다르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그야말로 소나무와 학, 달과 구름을 벗 삼으며 유유자적할 수 있는 피안의 세계가 펼쳐져 있으니 그곳에 있던 절 이름이 곧 운계사요, 그 안에 학들이 노닌다는 무학대와 운계비가 있었던 것이다.    

청학동을 사랑했던 시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으니 곧 추강 남효온이다. 남효온은 세조의 왕위 찬탈로 인한 단종 복위 운동에 실패한 이후 관직에 나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절개를 지킨 생육신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추강선생문집(秋江先生文集)』 「잡저(雜著)」 <냉화(冷話)> 조에 청학동에 관한 언급이 있다.

적성(積城)의 청학동(靑鶴洞)은 감악산(紺岳山)에 있는데, 동구(洞口)에 꼬불꼬불 굽이도는 시내 하나가 있다. 내가 일찍이 운계사(雲溪寺)로 시승(詩僧)을 방문하느라 필마를 타고 시낭(詩囊) 하나 차고서 물길을 거슬러 오르고 그윽한 곳을 찾아 바야흐로 하나의 시내를 열두 번 건넌 연후에 그 기슭에 이르렀다.

뒷날 두보(杜甫) 시를 읽을 때에 "산길 가다 만난 한 줄기 시냇물, 굽이돌아 바야흐로 여러 번 건넜네.〔山行一溪水 曲折方屢渡〕"라는 구절이 정히 지난번에 보았던 것과 다름이 없어, 바람 부는 처마 아래에서 책을 펼치고 푸른 학을 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유수계(劉須溪)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거니와 시 구절의 '일(一)' 자를 가소롭게 여긴 것은 어째서인가. 내가 가만히 의심하건대, 반드시 '일' 자를 사용한 뒤라야 아래 구절 '누도(屢渡)'라는 글자에 더욱 맛이 있게 된다.

운계사 앞을 흐르는 시내가 운계폭포를 이루고, 그 폭포의 물줄기가 굽이굽이 돌아 청학동 동구로 이어지니 예전 운계사에 오르는 길에는 같은 시내를 열두 번이나 건너는 운치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운계폭포 바로 앞까지 출렁다리가 설치되었으니 비록 접근성은 좋아졌을지 몰라도 굽이도는 시내를 이리저리 건너며 시심(詩心)에 젖어볼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운계폭포는 평소에는 수량이 많지 않으나 비가 내린 후에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광폭의 물줄기가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그 우렁찬 소리도 소리이지만 흰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지는 물줄기는 가슴 속에 쌓인 속세의 묵은 때를 씻어내기에 충분하다. 어느 비 그친 날 오후, 잠시 짬을 내어 운계폭포에 올라보는 걸 어떨까?

우계 성혼의 시 「친구와 함께 운계사(雲溪寺)에 노닐다」이다.

야외의 좋은 경치 함께하려고 
청학동 그윽한 골짜기 찾아왔네 
양 언덕 사이로 길게 이어진 골짜기 
한 물줄기가 그 사이로 흘러 내리네
돌길을 오르나니 발아래 구름이 일고 
소나무 숲길이라 이슬이 옷자락 적시네 
언제 다시 만나 좋은 모임 가질까
높은 흥취 이루기엔 가을이 마땅하겠네

與友人遊雲溪寺。
野外同淸賞。來尋鶴洞幽。
雙崖開遠峽。一水瀉中流。
石磴雲生屐。松廊露濕裘。
更期蓮社會。高興又宜秋。

*본문의 「유운계기」와 「냉화」 번역문은  한국고전번역원의 것을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2017. 7. 13. 현해당


태그:#현해당, #감악산,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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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기행 작가. 콩나물신문 발행인. 저서에 <그리운 청산도>, <3인의 선비 청담동을 유람하다>, <느티나무와 미륵불>, <이별이 길면 그리움도 깊다> <주부토의 예술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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