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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종류 중에서 원예종으로 가장 키우기 쉬운 난 중의 하나,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접란(나비란, 조란) 난 종류 중에서 원예종으로 가장 키우기 쉬운 난 중의 하나,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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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란의 하얀 꽃이 피었다.
기다란 줄기에 하얀 꽃이 듬성듬성 피어난 것을 보면서 왜 접란의 다른 이름이 '나비란'인줄 알았다. 하얀 나비가 줄지어 나는 듯한 모양이다.

몇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꾸시던 식물들 중에서 남은 것이 많지 않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애써 키워봤지만, 정성껏 키우시던 어머니의 정성에 비하면 부족했는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키울 때에 너무 무성지게 자라나서 처지곤란이었던 접란, 키우는 재미를 볼 생각에 줄기에서 작은 개체 하나를 떼어 물에 담가 뿌리를 내린 후 화분에 심었다.

줄기에 피어난 꽃들은 신비 그 자체다. 그들은 어디에 그들만의 유전자를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 접란 줄기에 피어난 꽃들은 신비 그 자체다. 그들은 어디에 그들만의 유전자를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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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년이라는 긴 시간, 게으른 주인탓에 거의 방치되다시피 옥상화분에 놓여있었다. 가뭄이 지속된 탓에 낮에는 시들거리며 혼미하게 보내다가 겨우 밤이면 다시 정신을 차리곤 했다. 아주 가끔씩 내리는 비에 모진 생명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했다.
한달 전, 자주 볼 수 있는 나의 작은 화원으로 그를 옮겨심었다.
어머니처럼 잘 키우고 싶어 물도 제때 주었고 하루에 한 번은 눈맞춤도 했다. 그렇게 정성을 드렸더니만, 때가 되기도 했겠지만 줄기들이 무성하게 올라오더니만 꽃이 피기 시작했다.

첫번째 꽃이 피던 날, 나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꼈다.
어머니가 키우던 접란에서 피어나던 꽃과 똑같은 꽃이 피어난 것이다. 당연하다는 것이 신비로웠으며, 다르지 않은 꽃을 피워주었다는 것이 고마웠다.

달개비의 보라색 꽃, 잘려진 마디가 하나의 개체가 되어 뿌리를 내리며 풍성해지는 생명력 강한 식물이다.
▲ 줄무늬달개비 달개비의 보라색 꽃, 잘려진 마디가 하나의 개체가 되어 뿌리를 내리며 풍성해지는 생명력 강한 식물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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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란이 피어나자 달개비꽃도 피어났다.
지난 봄 화원에서 볼품없는 달개비 화분을 하나 얻어왔다.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을 정도였기에 덤으로 얻어온 것이다. 이파리는 거의 말랐고 겨우겨울 줄기만 남아있었다. 줄기들을 잘라 몇 개의 화분에 심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줄기마다 이파리를 내고 지금은 화분 20개도 더 만들 정도로 많이 퍼졌다.

화분마다 조금씩 이파리의 색깔이 달랐다.
놓여진 곳과 흙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현상인듯한데, 가장 더디게 퍼지는 화분에서 유독 꽃이 자주 핀다. 이것도 생명력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척박한 땅에서 없어지지 않고 생존하려면 부지런히 후손을 퍼뜨려야 하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호박꽃을 본다. 호박이 열리지 않으면 어떠랴, 이토록 아름다운 꽃을 선물로 피우는데.
▲ 호박 오랜만에 호박꽃을 본다. 호박이 열리지 않으면 어떠랴, 이토록 아름다운 꽃을 선물로 피우는데.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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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나의 작은 화원은 커다란 은행나무와 아카시 나무, 감나무에 둘러쌓여 있으므로 아침나절에 잠시 햇살이 들어오고 종일 그늘이다. 그래서 사실 농사짓기에는 적합한 땅이 아니다. 너무 웃자라고, 그늘때문에 그리 시원시원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래도 나름나름 그늘에서 잘 자랄만한 채소들을 심어 먹는다.

상추나 들깨는 그늘에서 자라 억세지 않고 야들야들한게 일품이며, 알아서 퍼진 질겅이는 한 여름에도 그늘 덕분에 나물로 먹을만큼 부드럽다. 그러니 이런 토양에서 호박에 열릴리 없다.

작년에도 넝쿨만 무성해서 호박잎을 두어번 쪄먹었던 것이 전부다. 아마, 올해도 그렇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최선을 다한다. 아침햇살에 화사하게 피어난 호박꽃을 크로즈업하니 아파트나 다른 도시의 배경들이 날라가고 영락없는 농촌의 한 컷이다.

"그래, 호박꽃이 이렇게 예뻤었지!"

이파리가 널직널직 시원스러운 칸나, 잎줄기가 선명하다.
▲ 칸나이파리 이파리가 널직널직 시원스러운 칸나, 잎줄기가 선명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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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박토다보니 화초는 주로 큰 화분에 심는다.
겨울이 오기전에 카라 뿌리를 캐서 종이박스에 보관했다가 봄에 심었더니 키가 2미터는 족히 넘을 정도로 자랐다. 이번 장맛비에 힘을 얻어 한껏 더 큰 키를 자랑하길래 "넌 꽃은 안피우냐?"고 푸념했더니만, 어제 저녁부터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아직 나는 꽃보다는 이파리가 더 예쁘다.
선이 분명하고, 이파리가 넓어서 궂이 접사렌즈로 찍지 않아도 선명한 잎맥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제법 화초농사를 잘 짓는 편이니, 하늘에 계신 어머니도 "이제 니가 철 좀 들었나 보다" 하실 것 같다.

탈피한 매미의 흔적, 매미소리가 들리는 계절이 돌아왔다.
▲ 매미 탈피한 매미의 흔적, 매미소리가 들리는 계절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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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가 들려오는 계절이 되었다.
매미 소리가 들려오니 당연히 탈피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있을 것인데, 매미 소리를 듣고도 '매미'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는데 눈으로 보는 순간 '매미의 계절'임이 각인된다.

보는 것을 믿는 데 익숙한 군상이라 어쩔 수 없는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한 번 욕심을 부려볼 만도 하겠다. 나의 작은 화원 어딘가에 있을 매미유충이 늦은 밤이면 슬슬 기어올라올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그들이 탈피하는 모습을 담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뭄과 장마로 인해 삼겹살보다도 더 비싸졌다는 상추, 줄기째 꺾어 식탁에 올리니 고기보다 더 맛나다.
▲ 상추 가뭄과 장마로 인해 삼겹살보다도 더 비싸졌다는 상추, 줄기째 꺾어 식탁에 올리니 고기보다 더 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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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호되게 내렸다.
그늘이라 가뜩이나 야실거리며 자란 상추가 며칠 동안 내린 장맛비에 속절없이 녹아내렸다. 나 같이 심심풀이로 농사(?)를 짓는 이들이야 상추가 녹아내려도 큰 문제가 없는데, 뉴스를 보니 업으로 삼아 먹고 사는 분들의 상추도 그리 되어버렸다고 한다.

삼겹살 보다 상추가 더 비사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어쩐지, 어제는 상추가 더 맛있다 했어."

참 이상한 일이다.
맛이 있어서 비싼건지 비싸니까 맛인는 건지 잘 모르겠다.

햇살에 볼품없는 꽃을 피웠다가 지는 중이지만 향기는 다르지 않았다.
▲ 난 햇살에 볼품없는 꽃을 피웠다가 지는 중이지만 향기는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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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의 주제는 다 시들어버린 볼품없는 난꽃이다.
겨우내 실내에서 키웠던 난, 봄에는 서너 촉 꽃도 보았고 난향 덕분에 행복했었다. 심지어는 호럽란도 꽃대를 올렸었으니 올해는 좋은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예감에 행복했다.

봄이 지나자 무성해진 난들이 분이 좁다고 아우성이다.
분갈이를 해서 나의 작은 화원 한 켠에 놓으면 좋을 것이다. 마침, 햇살은 아침에 잠깐 들고 종일 그늘이니 난에게는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그렇게 분갈이를 마친 난들은 잘 자랐는데, 한 달 정도 지나자 꽃대를 올린 난이 있었다.

잔뜩 기대를 했지만, 바깥이라는 환경때문이었는지 생각보다 햇살이 뜨거웠는지 제대로 된 꽃을 피우지 못했다. 조금은 실망했는데 어느날 아침, 난향에 깜짝 놀랐다. 그때서야 알았다.

못생긴 꽃이라고 해서 향기가 없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는 예쁜 꽃보다 향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 꽃은 이제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

난향에 자극을 받았는지 다른 화분에서도 두 촉의 꽃줄기가 올라왔다. 그것은 예쁜 꽃을 보고 싶어 실내로 옮겼다. 이제 며칠 동안은 난향 때문에 행복할 것 같다.

나무에 둘러쌓인 나의 작은 화원, 그리고 그 화원 주변에 즐비한 화분에서 자라주는 나의 소중한 친구들, 그들 덕분에 도심 한 복판에 살면서도 나름 초록생명들로부터 생각의 마중물을 얻는다.

덧붙이는 글 | 필자가 살고있는 '도심 한 복판'은 요즘 뜨고 있는(?) 성동구 끝자락 용산구에 속해있는 듯한 성동구 옥수동이다.



태그:#접란, #상추, #호박꽃, #달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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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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