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개척자들'은 7~8월 안에 인도네시아(아체, 술라웨시), 말레이시아(쿠알라룸푸르), 일본(이시가키)에서 평화캠프를 진행한다. 외국으로 떠나기 전 사전교육을 통해 평화캠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우리에게 평화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평화항해캠프(7월 31일~8월 20일)를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참가할 예정이다. 아래는 송강호 박사의 세미나를 간추린 내용이다.

항해훈련을 10년간 해오고 있는 '개척자들', 시작하게 된 계기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점령했던 결과로 보르네오 섬은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세 나라의 영토로 나뉘게 되었다. 보르네오 섬 주변은 유전지대로서 작은 섬들도 많다. 풍부한 자원을 가진 그곳에서는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데 2005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에 국경분쟁이 있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군함들과 해군들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 마침 그때 인도네시아 자바 섬의 중부 도시 족자카르타에서는 "말레이시아인들은 시건방지다. 갑자기 졸부가 돼서 우리를 업신여긴다. 우리의 근육을 보여주자"며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사실 두 나라는 말도 비슷하고, 인종도 비슷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말레이시아가 인도네시아보다 수치상으로 높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는 말레이시아에 대한 약간의 질투와 시기심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비슷한 장소에서는 무슬림들이 주축이 되어 "말레이시아와 우리는 같은 무슬림으로서 형제들이다"라고 외치며 시위를 하는 무리가 있었다. 마치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목격했던 촛불시위와 태극기 집회와 같은 상황이라고 할까.

송강호 박사는 "두 나라의 청년들과 함께 배를 타서 군함들이 대치하는 작은 섬들로 달려가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는 데모를 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 있는 많은 배 중에 '개척자들'이 쓸 수 있는 배는 없었다. 하지만 꿈이 생겼다.

만약 배가 있었다면 사람을 살릴 수 있었을까?

티모르 섬은 19세기 후반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에 의해 분할되었다. 2차 대전 이후 서쪽은 인도네시아에 속하게 되었고, 동쪽인 동티모르는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다. 이후 인도네시아 본토의 침공을 받아 다시 식민지를 겪게 되었던 동티모르는 2002년 마침내 독립국이 되었으나 전쟁의 피해는 아직 남아있다.

'개척자들'은 2000년에 처음으로 동티모르에서 평화캠프를 열었다. 송강호 박사는 한해 전인 1999년에 먼저 도착하였는데 그때는 독립 과정에서 학살과 방화가 저질러진 직후인 상황이었다.

동티모르 동쪽 끝에는 콤(Com)이라는 항구가 있는데 대한민국 평화유지군인 상록수부대(1999년 10월~2003년 10월까지 동티모르 국제군의 일원으로서 활약하였다. 동티모르 독립 정부의 수립을 지원하고 선거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함)도 있던 곳이다.

당시 콤(Com)에는 동티모르 독립군(PKF)과 민병대(인도네시아 쪽 동티모르군)가 대치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군이 먼저 철수를 하였고 수세에 몰린 민병대는 인도네시아 본토로 도망가고자 항구로 모였다. 인도네시아군이 배를 보내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두려움에 몰린 민병대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을 죽일까 봐 먼저 학살을 하기 시작한다. 결국 동티모르 독립군에 의해 점차 포위망이 좁혀졌고, 결과적으로 민병대는 다 죽었다.

그때 송강호 박사는 또 생각했다. '만약 배가 있었다면 정부군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고, 그럼 양쪽 사람들을 다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10년간의 항해훈련, 이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

바다 군사 훈련할 때 돛단배를 타고 지나가면서 '평화'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 망치기!
한국, 중국, 일본, 대만에서 온 청년들이 모여서 '평화 항로'를 개척한다면, 몰려오지 않을까?

서태평양 마셜제도의 비키니 환초(Bikini Atoll): 1946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의 핵실험 장소로 쓰였고,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던 비키니 환초(반지형 산호섬)는 순식간에 폐허로 바뀌었다. 2010년 냉전과 핵무기 경쟁을 상징하는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
 서태평양 마셜제도의 비키니 환초(Bikini Atoll): 1946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의 핵실험 장소로 쓰였고,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던 비키니 환초(반지형 산호섬)는 순식간에 폐허로 바뀌었다. 2010년 냉전과 핵무기 경쟁을 상징하는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
ⓒ flickr.com

관련사진보기


1958년, 미국의 핵실험을 반대하는 4명의 퀘이커들(Quaker: 17세기에 창시된 기독교의 교파)은 "인류 범죄행위를 직접 목격하겠다"며 마셜 제도를 향해 항해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한 그들은 하와이에서 미군에 의해 붙잡혔다. 감옥행까지 감수해야 했지만 그들의 활동은 사람들의 기억에 깊이 남게 되었다.

'굉장히 멋지다, 저런 활동도 할 수 있구나'

이후 10여 년이 지난 1971년, 미국은 알래스카 연안(암치카 섬)에서 3차 지하핵실험을 준비했다. 이에 반대하는 캐나다 반전운동가, 기자, 대학생 등 12명이 녹색 깃발을 달고 알래스카로 향했다. 이들이 훗날 '그린피스'가 되었다. 초창기에는 조직이 잘 안되어 자신들끼리 싸우느라 지옥 같은 배를 타고 갔다며 회상하였다. 그렇다면 퀘이커들이 탔던 그 배는 어떻게 됐을까?

어느 날 한 치과의사는 가라앉은 배 한 척을 찾았다. 인양하여 수리하고 발견한 배에 새겨진 이름, 골든 룰(Golden Rule). 이 배는 바로 1958년 퀘이커들이 탔던 배였다. 복원한다는 소문이 돌자 세계 여러 곳에서 배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퀘이커 박물관에서도, 그린피스에서도, 결국 그 치과의사는 반전운동을 활발히 하는 미국평화재향군인회(Veterans for Peace)가 이 배의 정신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하여 기부하였다. 이 배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준비하는 군함들을 상대로 훼방 중이다.

한국 해군은 미국, 캐나다 해군과 함께 3일간 연합해상훈련을 하기로 하였으나 미국 듀이함은 장비 결함으로 훈련 돌연 취소하고 오후에 출항. 한-캐나다 연합훈련으로 변경되었다
▲ 지난 6월 20일 오전, 제주도에 입항하는 미국의 듀이함과 우리나라 해군, 해경에 맞선 카약 한국 해군은 미국, 캐나다 해군과 함께 3일간 연합해상훈련을 하기로 하였으나 미국 듀이함은 장비 결함으로 훈련 돌연 취소하고 오후에 출항. 한-캐나다 연합훈련으로 변경되었다
ⓒ 멸치(강정마을 평화지킴이)

관련사진보기


"배가 주는 영감이 있다. 한 대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정신을 나누는데 배가 사용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우리가 훈련으로 사용하는 배는 비록 아주 작고 연약한 배고, 제주 강정마을에서는 카약으로 해상 시위를 한다. 이번에 미국, 캐나다 배가 들어왔을 때 (개척자들 멤버인) 카레와 멜리사를 비롯한 제주팀들은 카약을 타고 군함을 반대했다. 힘으로는 당할 수 없지만 그런 시위가 가져오는 영감과 깊은 정신이 있다."

송강호 박사는 인도네시아 항해 훈련을 통해 평화 항해팀을 꾸릴 계획이다. 올해나 늦어도 내년까지 배를 구하여 제주, 오키나와, 대만, 중국, 일본, 한반도까지. 1기, 2기…. 이렇게 매년 한 번씩 돌 수 있는 평화 항로를 만들고자 한다. 평화를 위한 배를 타고 동북아시아 바다를 한 바퀴 쭉 도는 것이 우리에게 하나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리고 군사기지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작은 섬들과도 연대하며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도 나누고, 서로 용기를 북돋아주자.

기사를 준비하며 지중해를 넘어오는 난민들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바나나보트와 같은 고무보트에 탄 150여 명의 서부 아프리카 사람들. 금방이라도 기우뚱하여 다 빠져버릴 것만 같다. 그들은 왜 목숨을 걸고 자신의 나라를 떠나와야 하는지, 왜 국제기구들은 힘을 쓰지 못하는지, 왜 주변국들은 손을 놓고 있는 건지, 왜 시민단체들이 구조하며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봐야 하는 건지….

이번 평화캠프 사전교육을 통해 25년간의 '개척자들' 활동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기분이 들었고, 항해훈련에 대해 좀 더 큰 그림을 알 수 있었다. 교육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우리끼리 의견을 나누는 시간도 많았다. 특히 참가자들이 받은 질문들이 신선했는데 그중에 기억 남는 질문을 공유하고 싶다.

'당신이 생각하는 평화란 무엇인가?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평화는 세계평화일 수도, 내가 발 딛고 있는 한국이 될 수도, 내 마음속의 평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평화가 나만의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에 든 작은 섬들이 이어지고 바다를 건너 저 먼 나라의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지길. '개척자들'은 그 섬들을 이어주는 작은 돛단배가 되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평화 항해를 위한 배를 구합니다 dlgidfla2001@naver.com



태그:#개척자들, #동북아시아 평화 항해, #인도네시아 항해 훈련, #그린피스 , #비키니 섬 원자폭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