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진출에 빨간불이 켜진 축구국가대표팀의 새 사령탑으로 선임된 신태용 감독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향후 대표팀 운영에 대한 계획을 말하고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진출에 빨간불이 켜진 축구국가대표팀의 새 사령탑으로 선임된 신태용 감독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향후 대표팀 운영에 대한 계획을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나이를 불문하고 최고의 선수를 선발하겠다. 이동국도 경기력이 좋다면 뽑을 수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지난 16일 신태용 신임축구대표팀 감독이 선수 발탁과 베테랑 기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 발언이다.

이란-우즈벡과의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2연전을 앞두고 있는 신태용 감독은 최근 K리그 경기장을 순회하며 '신태용호 1기'에 승선할 옥석가리기에 한창이다. 신 감독은 이란-우즈벡전에 맞춰 무한경쟁을 예고했는데, 한동안 대표팀에서 배제되었던 K리거와 베테랑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놓겠다고 강조하며 변화를 선언한 바 있다.

전임자였던 울리 슈틸리케나 홍명보 전 감독은 국내파와 베테랑들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슈틸리케호와 홍명보호에서 30대 이상 선수로서 꾸준히 중용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이로 인하여 경기운영의 다양성이 경직되고 위기상황에서 활로를 열어줄 노련미와 리더십의 부재가 두드러졌다는 평가다.

신태용 감독이 굳이 최고령 필드 플레이어인 이동국을 직접 언급한 것은 직접적으로 해당 선수에 대한 선발 의지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현재 소속팀에서 잘하고 있는 선수, 전술에 필요한 선수는 나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누구든 뽑을 수 있다는 의미다. K리거이거나 30대를 넘겼다는 이유로 대표팀에서 소외받던 선수들, 저평가받던 이들에게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염기훈·이근호·이동국... 다시 대표팀에서 볼 수 있을까

물론 베테랑이라고 해서 아무나 발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당연히 현재의 실력이다. 소속팀에서의 꾸준한 활약이나, 신태용 축구에 어울리는 성향을 지녀야 한다는 것은 모든 대표 선수들에게 동일한 조건이다. 다만 베테랑이기에 어쩌면 더욱 엄격한 기준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베테랑은 팀내에서 젊은 후배들을 이끌고 모범을 보여야 하는 입장이다.  베테랑을 잘못 뽑았다가 오히려 팀분위기에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팀의 기존 선수나 해외파와 비교해도 충분히 함께 경쟁할 수 있다는 신뢰를 줄만한 선수가 발탁되어야 원활한 융화가 가능하다.

대표팀 경험 유무도 중요한 변수다. 기존 선수들과의 조화와 연속성을 고려할 때 똑같은 베테랑이라도 중요한 빅매치나 국제대회 경험의 차이는 크다. 특히 이란이나 우즈벡전은 월드컵 본선행이 결정되는 단두대 매치로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경기다. 실험이나 모험을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좁기에 더 확실한 카드가 필요하고, 기왕이면 대표팀에서 기량이 검증된 선수가 더 눈길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수원 삼성과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 수원 염기훈(왼쪽)과 제주 정운이 헤딩 다툼을 하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수원 삼성과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 수원 염기훈(왼쪽)과 제주 정운이 헤딩 다툼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런 기준에서 봤을 때 신태용호 1기에 승선할만한 베테랑은 누가 있을까. 1순위는 역시 '왼발의 달인' 염기훈(수원)이다. K리그 최고의 '공격포인트 제조기'로 평가받는 염기훈은 34세가 된 올시즌도 3골 7도움을 기록하며 수원의 기둥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염기훈은 탁월한 크로스 능력을 바탕으로 3년 연속 도움왕에 도전하고 있으며 통산 100도움에는 이제 5개만을 남겨두고 있다. 측면이 주 포지션이지만 올시즌에는 소속팀에서 투톱의 공격수 역할까지 소화하고 있다. 대표팀에서는 지난 몇 년간 인연이 없었지만 허정무호 시절 2010 남아공월드컵 원정 16강의 핵심 멤버였을 만큼 국제 경험도 풍부하다.

이근호(강원) 역시 신태용호에 승선할만한 선수다. 이근호는 올시즌 5골 3도움을 기록하며 강원의 선전을 이끌고 있다. 공격포인트를 떠나 기복없이 늘 꾸준히 공격찬스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는 데다 폭넓은 활동량과 침투능력은, 이타적인 플레이는 나이를 들어서도 녹슬지 않았다.

이근호는 지난 브라질월드컵 멤버였고 두 번의 아시아 최종예선을 경험하며 한국축구를 여러 번 위기에서 구해낸 바 있다. 슈틸리케의 마지막 A매치였던 지난 카타르전에서도 발탁되어 부상당한 손흥민(토트넘)의 교체선수로 투입되며 비록 팀은 패했지만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친바 있다. 염기훈과 마찬가지로, 2선의 전 포지션은 물론 최전방 공격수까지 소화할 수 있는 멀티능력도 강점이다.

이동국(전북)이나 박주영(서울)의 이름도 오랜만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때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 겸 국민 '욕받이'로도 불렸던 두 선수는 여전히 이름만으로도 팬들의 갑론을박을 일으키는 논쟁적 인물들이다. 대표팀은 수년째 확실한 최전방 공격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공격축구를 표방하는 신태용호도 예외는 아니다.

손흥민이 부상으로 이란-우즈벡전까지 회복이 불투명하고 김신욱(전북), 황희찬(잘츠부르크), 지동원(아우크스), 석현준(포르투) 등은 대표팀에서 아직 확실한 대안이 되지는 못했다. 30대 이상 베테랑 전문 공격수 중에 그나마 골결정력과 국제경험을 모두 충족하는 선수가 사실상 이동국-박주영 외에는 찾기 어렵다 보니 자연히 이 둘이 다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이동국은 신태용 감독이 선수의 이름을 직접 거론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신감독과 이동국의 인연은 조금 복잡하다. 이동국이 2008년 성남에서 한창 슬럼프를 겪던 시절 신임 사령탑으로 부임한 신태용 감독 체제에서 이동국은 전력 외로 분류되어 전북으로 이적해야했다. 신감독은 훗날 이동국의 방출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한 구단의 결정이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후 신태용 감독이 2014년 A대표팀 임시 감독대행 시절에는 이동국이 대표팀에 발탁되어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에서 센츄리클럽(100경기)에 가입하기도 했다. 당시 이동국은 이날 홀로 2골을 성공시키는 활약을 펼쳤다. 이동국은 올시즌 어느덧 38세의 노장이 되었지만 3골 2도움을 기록하며 건재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베테랑 기용, '비중' 생각하지 않는 '백의종군'일 때 가능

하지만 정작 이동국이 대표팀에 뽑힐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불혹을 바라보는 이동국은 체력과 활동량이 떨어지며 소속팀에서도 관리를 받는 로테이션 멤버에 머무르고 있다. 지금보다 더 젊었던 4년전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이동국을 가장 잘 활용한다는 최강희 감독 체제에서 주전 공격수로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도 7경기 1골에 그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소속팀에 비하여 부담이 큰 대표팀에서 실력발휘가 되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일부 K리그 팬들조차 노장인 이동국이 말년에 대표팀에 불려가서 상처를 받는 것보다 소속팀에 전념해주기를 바라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박주영은 브라질월드컵에서 홍명보호의 '의리축구' 논란과 병역 기피 의혹 등으로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올시즌에는 K리그 20경기에서 7골을 기록 중이다. K리그 복귀 이후에는 사실상 원톱보다는 처진 공격수나 미드필더에 가까운 역할을 자주 맡고 있다. 전성기에 비하면 기량이 확연히 떨어진 데다 시즌 중반까지 고질적인 무릎부상에 시달리며 출전시간도 들쭉날쭉했다. 하지만 지난 2일 전북전 결승골, 16일 제주전 선제골등 잠잠하다가도 한방씩 터뜨리는 능력은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근호와 동갑인 30대 초반으로 아직 노장이라고 할만한 나이도 아니다.

박주영의 발탁은 경기외적인 부분에서 더 큰 논란을 불러올수 있다. 불과 몇 년 전 홍명보호 시절 각종 특혜 의혹과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대표팀을 망친 주범'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로 합법적인 병역혜택을 얻은 이후의 행보에서 보여준 불성실하고 표리부동한 태도 역시 많은 축구팬들의 뇌리에 아직 남아있다. 슈틸리케 전 감독도 초창기 박주영을 대표팀에서 불러 점검했으나 정작 호주 아시안컵 본선에서는 공격수들이 모두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 끝내 데려가지 않았고 이후로는 아예 부르지 않았다. K리그 복귀 이후로도 그리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박주영의 발탁 논의 자체만으로 형평성 차원에서 또다시 대표팀에 소모적인 논란을 불러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다만 신태용 감독이 베테랑들의 발탁 전제로 철저히 이란-우즈벡전을 대비한 맞춤형 선발을 강조한 것은 변수가 될만하다. 말 그대로 지면 끝나는 단두대 매치나 다름없기에 선수선발 역시 단판승부에 초점을 맞춘 '원포인트' 선발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동국이나 박주영은 모두 전성기가 지난 선수들이지만 짧은 시간 투입되어 경기흐름을 바꿀 수 있는 '조커'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고려해볼만 하다. 물론 베테랑들이 크지 않은 비중이라도 대표팀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백의종군의 마음가짐이 있을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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