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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이 줄줄 흐르고 목이 타들어 갑니다. 노동자들은 오늘 하루도 그늘 한 점 없는 곳에서 버텨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느덧 본격적인 여름에 들어선 지금, <노동자의 여름> 기획은 노동자들의 ‘여름 나기’를 그려냅니다. [편집자말]
경비원 일의 상당 부분이 분리수거 일로 채워진다.
 경비원 일의 상당 부분이 분리수거 일로 채워진다.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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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물러가고 땡볕이 살아나던 지난 11일. 김주은(71)씨의 발걸음은 빨랐다.

"금년은 굉장히 덥네요."

구름이 걷힌 오후 1시. 쓰레기 더미로 간 김씨는 접히지 않은 상자를 들춰낸다. 김씨의 얼굴은 달아올랐다. 더미에선 역한 냄새가 슬금슬금 올라온다. "버릴 때 펼쳐주면 참 좋을 텐데..." 테이프를 일일이 떼어내 상자를 펼친다. 아파트 관리 직원이 다가온다.

"아저씨, 푸는 거 어떻게 됐어요? 2동하고 11동 사이!"
"알았어, 갈게요, 갈게."

격일로 '24시간 근무'... "종일 근무하고 하루 쉬면 다시 출근"

일이 생겼다. 오후 1시 30분. 김씨는 발걸음을 더 빠르게 재촉한다. 시선이 땅과 정면을 오가더니 이 와중에 버려진 빨대를 줍는다. 경비실로 온 김씨. 동료를 인터폰으로 호출한다. "같이 가야 해요. 조형한테 얘기할게요." 문을 걸어 잠근 뒤 관리 직원이 말한 데를 간다.

김씨는 아파트 경비원이다. 여기는 노원구의 한 임대아파트. 방학동에서 오전 5시 15분 첫차 버스를 타고 여길 온다는 김씨는 4시 10분에 일어난다. 6시에 출근하면 다음날 같은 시각에 퇴근. 명절과 휴무와는 관계없이 격일제로 일을 한다.

"종일 근무하고 하루 쉬면 다시 출근하는 거죠."

경비원이 철망을 들어내고 하수구 안을 정리하는 모습.
 경비원이 철망을 들어내고 하수구 안을 정리하는 모습.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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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이 철망을 드러내고 하수구를 정리하는 모습.
 경비원이 철망을 드러내고 하수구를 정리하는 모습.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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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과 동을 지나 단지 안쪽에 왔더니 오후 2시다. 같이 오기로 한 경비원이 안 온다. 몇 분이 지났을까. 멀리 두 경비원이 삽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 온다. 아침에 하수구에서 펐던 흙을 담아야 한다. 김씨가 흙을 퍼내자 동료 둘이 자루를 펴서 담도록 돕는다.

"요즘 밥맛이 없어... 건강해야 하는데, 요양원에 가서 (가족이) 수발들면 경제적으로 힘들 거 아니야."
"그렇지, 건강하게 살아야지."

김씨와 동료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왼쪽의 다른 경비원은 제초기로 풀을 다듬는다. 주차장 아스팔트에는 그늘이 사라지고 햇빛이 강하게 내리쬔다. 한 동료가 웃통을 벗고 메리야스 차림을 한다. 경비원들 목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김씨는 손수레를 인도에 세워두고 하수구 철망을 걷어낸다. 흙더미와 지렁이가 철망에 박혀 나온다. 하수구를 삽으로 휘저으니 커다란 돌덩어리가 잡힌다. 장마가 지나면 화단에서 흙이 씻겨 내려와 하수구를 막는단다. 흙과 돌을 걷어낼 수밖에 없다.

멀리서 동료들이 손짓을 한다. 오후 3시 5분. 관리사무소에서 빵과 음료수를 가져왔다. 김씨는 흩뿌려진 흙을 정리하려고 빗자루를 놓지 않는다. "이왕 시작한 거 빨리 끝내야 해요." 빵을 집고 한 움큼 입에 들이밀던 김씨는 10분도 안 돼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세금 떼고 나면 남는 돈은 '월급 140만 원'

다른 하수구. 물이 먹물이다. 썩은 물을 머금은 흙이 더미로 나오더니 역한 냄새를 풍긴다. 김씨의 신발은 흙에 젖었다. 철망을 들어 힘껏 털고, 자리에 다시 끼우는 것도 일이다. 김씨의 한 달 월급은 얼마일까.

"149만 원 정도 받는데, 소득세 주고 뭐 주고 나면 140만 원이죠."

땡볕의 기세는 강해져만 간다. 김씨의 하늘색 셔츠는 파란 물감이 물든 것처럼 젖었다. 김씨가 흙무더기를 드러내고 있을 때 한 청년이 "아저씨, 죄송한데 택배 좀 봐줄 수 있어요?"라고 물어본다. "여기가 아니고 저기." 김씨가 짤막하게 대답한다. 우리 소관이 아니니 저쪽 경비실로 가란 말이다. 같이 흙을 파내던 동료가 문득 입을 연다.

"관리소 직원은 적은데 세대수는 많으니 이런 일도 경비원이 하는 거예요. 오늘 라면 두 개 먹어야 겠는데. 하나론 간에 기별도 안 되겠어(웃음)."

2시에 시작한 작업은 4시 20분이 되어서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김씨의 발걸음은 1시에 처음 봤을 때와 그대로다. 땀을 훔친 김씨는 바로 분리수거장으로 향한다. 바닥에 팽개쳐진 음식물을 쓸어 담는다. 1시엔 없던 것들이다. "짬 나는대로 봐야 해요." 김씨는 비닐 하나라도 아끼려, 막대로 쓰레기를 쑤셔 부피를 줄인다.

분리수거 종류는 다양하다. 유리병은 소주/맥주와 드링크류, 플라스틱은 페트류와 요구르트로 나뉘고, 스티로폼도 빠질 수 없다. 분리수거장은 동마다 있는데, 각 동에 경비원 혼자서 정리해야 한다.

김씨가 경비실에 앉았다. 오후 4시 34분. 이제야 숨 돌릴 틈이 생겼다. 허기가 차츰 돌 시각, 밥은 어떻게 먹는지 궁금해졌다.

후덥지근한 경비실 "물에 말아 억지로 먹는 거죠"

김씨가 지내는 경비실 내부.
 김씨가 지내는 경비실 내부.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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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집에서 먹고 와요. 점심은 싸 오죠. 싸온 건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꺼내먹죠. 때론 밥에 뜨거운 물 말아 먹고. 더워서 밥맛도 없는 데 억지로 먹는 거죠."

눈에 들어온 경비실 안은 비좁았다. 가장자리엔 화재를 수신해서 알려주는 큼지막한 기계가, 정면엔 승강기 내부를 보여주는 모니터, 거주민의 민원을 받을 전화기가 놓였다. 열이 안에 안 생길 수 없다.

김씨는 셔츠 윗단추를 풀었다. 더위를 식히는 유일한 물건은 벽에 붙은 선풍기. 날개는 돌아가는 데 힘이 없다. 바람 세기가 '중'이다. 쌓인 먼지가 바람을 타고 퍼질까 강으로 틀 수 없단다.

"밤에 문을 열고 자면 먼지가 빠진다지만, 잠그고 자야 해요. 모르는 사람이 경비실 물건을 손댈 수 있잖아요."

김씨가 일하는 아파트 단지.
 김씨가 일하는 아파트 단지.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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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휴식은 점심과 저녁에 한 시간, 취침 시간은 밤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말하던 중에 택배 기사가 물건을 가져왔다. 김씨는 지하로 들어가는 계단에다 남들 손 타지 않게 물건을 따로 챙겨둔다.

이 동에 사는 300세대가 넘는 가구를 김씨가 경비로서 책임진다. 아파트 단지엔 저소득층과 노년,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임대를 받아 거주하고 있다.

"이 아파트가 날 많이 가르쳤지. 처음엔 여기서 일하는 데 거부감을 많이 느꼈어요. 나이가 있으니 직업소개소에 용기있게 다른 데 간다고 말 못 하는 거야. 이젠 사람들하고 얘기하다보니 정이 많이 들었죠."

김씨는 식품기업 대상에서 25년간 일을 하다가 회사가 지겨워 1996년에 그만뒀단다. 1997년에 옷감을 염색하는 사업을 시작했지만 나이는 먹어 가는데 업황은 좋지 않아 경비일에 뛰어들었다. 노년에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경비였다. 김씨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소개소에 갔더니 70세 이하 이런 식으로 딱 잘라버리니... 70이 넘어가면 소개할 자리가 많지 않다는 거예요. 몸은 건강하고 놀기는 그런데, 나이는 들었으니 경비를 한 거죠."

4천 원짜리 냉면으로 더위 해결, 식대는 없다

말이 오가더니 오후 6시가 됐다. 저녁밥을 먹을 법도 한데, 김씨는 주차장을 기웃거린다. 이 시각이 되면 주차된 차를 기록한다. 다른 동네 사람이 차를 주차하진 않는지 살펴보기 위함이다. 이왕 나온 거, 분리수거 동태도 살핀다. 쓰레기가 찬 자루를 빼고,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를 들춰낸 뒤 새 자루를 놓는다. 20분이 금방 지나간다.

30분이 넘은 시각. 바로 앞 상가로 간다. 김씨는 2층의 냉면집을 찾았다. 4천 원짜리 물냉면을 주문했다. 더운 날, 냉면 하나로 더위를 풀어본다. 과거 살아온 나날을 읊던 김씨는 면을 입안으로 넣는다. 면은 금세 동이 난다. 국물을 들이켠 김씨는 "낮에 땀 많이 뺐잖아요. 이걸로 보충해야죠"라며 하회탈 미소를 짓는다.

식대는 경비원에게 제공되지 않았다. 냉면값은 자비로 부담했다. 매번 이리 먹으면 14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에 적잖은 부담이다. 김씨는 돈이 들어도 어쩔 수 없다는 투였다.

경비실로 바로 간 김씨. 오후 7시 25분이다. 이 동 주민이 김씨에게 '도토리묵'을 가져다줬다. 김씨는 "미안해 죽갔네"를 연발했지만 주민의 따뜻한 마음씨에 힘을 얻는다.

해가 지는 오후 7시 41분. 김씨는 분리수거장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경비 업무의 실상은 알고 보니 '분리수거'였다. 스티로폼 넣는 데를 보다가 도시락 용기를 꺼내든다. 김칫국물이 흘러내린다. 이러면 업체에서 쓰레기를 받질 않는단다. 뒤처리는 결국 김씨 몫이다. 8시가 임박했지만 일은 끝나질 않았다. 일하고 쉬는 날엔 뭐 하는지 궁금했다.

경비실에 잠시 앉아있는 김씨.
 경비실에 잠시 앉아있는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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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만 되면 자죠. 한 시쯤 일어나는데, 경비실에서 자는 건 자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오후 3시~4시까지 동네 한 바퀴 돌죠."

어두컴컴해졌다. 오후 8시, 김씨는 경비실의 통로 스위치를 켠다. 순찰 돌 시간이다. 꼭대기 15층에 올라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노년, 환자 주민이 아파트에 많으니 계단에 사람이 쓰러져 있나 살펴봐야 한다. 계단에 물이 고여 있는 걸 가리킨 김씨는 치매 환자가 계단에 종종 오줌을 싸놓기도 하니 주의하라고 했다. 비는 오지 않을까 창문이 닫혔는지도 확인한다.

내려와 보니 초등학교 2학년 꼬마가 쑥떡을 안고 서 있다. 김씨에게 "엄마가 이거 드시래요" 하고 내민다. 이 아파트에서 4개월째 근무 중인 김씨는 경비원들이 정들만 하면 떠나서 나가지말라 주민들이 당부한다고 한다.

"힘들 텐데 꾹 참고 일하는 거 고맙다고. 이 자리가 한 달에 한 번은 사람이 바뀐대요. 오늘 잠이 안 오네. 너무 피곤하면 잠이 또 더 안 와요."

오후 8시 20분. 김씨는 관리비를 내지 않은 주민의 우편함에 경고문을 받아가라고 스티커를 붙인다. 게시판에는 주민에게 알릴 교육 소식 등을 단다. 8시 40분이 되더니 경비실도 평온에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나 더위와 모기에 평온은 뒷걸음을 친다. 김씨는 안에다 모기향을 피웠다.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향이 강하다. 잠을 평안하게 자기 위한 예비 단계다. 한 달에 모기향 한 갑을 관리실에서 지원해주지만 원체 많은 벌레를 감당하려면 스프레이 같은 건 자비로 가져와야한다.

취침 시간, 송판 깔고 쪽잠... "3교대 하면 참 좋을 텐데"

비좁은 경비실. 잠을 자려면 송판을 이용해야 한다.
 비좁은 경비실. 잠을 자려면 송판을 이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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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9시 11분, 쉴 법도 한데 다시 분리수거장을 찾는다. 다른 동은 100~150세대 남짓인데, 김씨가 맡는 동은 300세대가 넘는다. 버려지는 쓰레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앞 동 주민도 나가는 길에 쓰레기를 여기다 버린다. 26분에 일을 마친 김씨는 다시 오후 10시 20분에 분리수거장으로 갔다.

돌아왔더니 관리비를 독촉 받은 주민이 "우린 냈는데 왜 이런 걸 붙여놔요"라고 항의한다. 김씨는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지, 잘 모르잖아요"라고 웃으면서 상황을 넘긴다. 오후 10시 45분, '감정 노동'도 짊어졌다. 취침 시간이 다가온다.

김씨가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다고 당부한다.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 3시부터 10시까지 이런 식으로 3교대를 하면 마음이 편할 텐데... 사용자가 조금 더 쓰고 근로자가 약간 양보하면 한 사람 월급은 나오거든요. 문제가 생기면 대리로 근무하기도 쉽지 않겠어요. (여건 개선을 위해) 좋은 방법이 많을 텐데 왜 않냐 이거예요."

김씨가 숨겨둔 송판을 꺼내 든다.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경비실에 그냥 누울 공간이 없으니 묘수를 마련한 거였다. 앉던 의자의 옆날개를 떼고 밖으로 빼낸다. 날개가 있으면 의자가 경비실 문을 나가질 못한다.

"참, 말하기 뭐한데 맨손으로 이런 일(잠자리 마련) 하고 싶지 않아요. 장갑 끼고 하지."

이내 딱딱한 의자를 모서리에 놓더니 송판을 대각선 방향으로 올린다. 비좁은 경비실에서 잠을 자기 위한 김씨의 고육지책이다. 눕기 전에 김씨가 폰을 꺼내 들더니 만보기를 체크한다. 2만 보에 다다랐다. 나도 다리가 저려왔다. 송판에 몸을 누이고 불을 끈 김씨. 내심 김씨가 잠이라도 편안하게 들기를 바랐지만 잠자리를 보니 그러기는 어려워 보였다.

김씨는 여기서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잠을 잔다.
 김씨는 여기서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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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경비원, #여름, #아파트, #경비실,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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