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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초등학교 급식 조리실 모습.
 서울 시내의 한 초등학교 급식 조리실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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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는 급식 노동자셨다. 평생 주부로만 살다가 내가 고3이 되었을 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급식일을 하겠다고 하셨다. 당시는 급식이 보편화되지는 않았을 때고, 이제 막 조금씩 시작할 때였다. 우리 학교도 내가 고3이 되었을 때 급식을 시작했다.

아마도 동네 아주머니들과 용돈이나 벌어보자고 우르르 몰려 가셨을 것이다. 어머니가 들어가신 급식회사는 우리 학교로 급식을 하러 오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내가 다니는 학교에는 오지 않으셨다.

아마도 아들이 학생회장으로 있는 학교에 급식노동자로 간다는 게 부끄러웠을 것이다. 막상 나는 일찌감치 운동권 물을 먹고 있을 때여서 어머니가 급식노동자라는 사실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그러나 체면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우리 어머니는 그랬다.

대신 우리 어머니는 옆 여고에 급식을 하러 가셨는데, 거기에는 내가 고3에 올라가자마자 정신을 잃을 정도로 빠져버린 '첫사랑'이 있었다.

"우리 어머니 내일부터 거기 급식하러 가시니까, 보면 꼭 인사드려. 밥 많이 달라고."

철없던 나처럼 철없던 첫사랑은 곧이곧대로 우리 어머니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고, 우리 어머니는 무척 당황하셨던 기억이 있다.

급식일 시작한 어머니의 휜 손가락

그 뒤로도 어머니는 꽤 오랫동안 급식일을 하셨다. 그 사이 함께 일을 시작했던 아주머니들이 모두 힘이 든다며 그만둘 때도 어머니는 버티셨다. 아마도 회사에서는 책임감 하나는 강한 어머니에게 조금 높은 직급을 줬나보다.

그러는 사이 어머니의 손가락은 점점 휘었다. 언젠가는 다리에 기름 화상을 입어 한동안 누워 계시기도 했고, 연골도 다 닳아서 이제 걸음도 제대로 못 걸으신다. 2년 전인가, 큰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척추 4개가 확연히 휘어 있었다.

한동안 '제발 그만두라'고 하소연도 했지만, 어머니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셨다. 새벽 4시면 일어나 가족들 밥을 해놓고 해도 뜨기 전에 일을 나가셨다. 그러고서 받는 돈은 형편없었지만, 아마도 어머니는 돈보다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스스로 직장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놓기 싫었던 것 같다.

남은 것은 다 상해 버린 육체밖에 없었지만, 스스로 '노동자'라는 것을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어떤 당당함이랄까, 그런 게 있었던 것 같다. 제대로 서지도 못할 정도로 아파하면서도 "20대 젊은 애들도 며칠이면 나가떨어진다"고 허허 웃던 모습에는 이 힘든 일을 자기는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다는 자부심도 배어 있었다.

최근 한 국회의원이 급식노동자를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고 부르고 급식일은 '조금만 교육받아도 금방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급식일을 잘 모르는 사람에겐 이 일이 쉬운 일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국회의원이 '누구나 금방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 이 일은 '누구나 오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그 국회의원이 급식노동을 했다면 결코 한 달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대의자 역할 맡은 이가 중요한 일 하는 노동자 무시하는 몰상식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밥하는 동네 아줌마” 발언에 대한 사과기자회견을 마친 뒤 자리를 나서던 도중,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노동자들과 만나 의원직 사퇴를 요구 받고 있다.
▲ 이언주 의원 향해 사퇴 요구하는 학교급식 노동자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밥하는 동네 아줌마” 발언에 대한 사과기자회견을 마친 뒤 자리를 나서던 도중,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노동자들과 만나 의원직 사퇴를 요구 받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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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급식노동은 단 하루 노동의 테크닉이 엄청났던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육체를 갉아 먹으면서도 저임금에 엄청난 끈기, 때로는 힘이 아니라 악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야 겨우 아이들 밥을 책임질 수 있는 일이었다. 젊은 사람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금세 나가떨어지는 일이었다.

난 우리 어머니가 했던 그 일이 고액연봉에 엄청난 특혜를 누리는 국회의원이 하는 일보다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만일 급식노동자와 국회의원의 연봉과 혜택이 같다고 해도, 사람들은 결코 국회의원 대신 급식노동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사회적 대가가 더 높아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사실은 누구나 해야 하는 대의자의 역할을 맡은 이가 아무나 할 수 없으니 너무도 중요한 일을 하는 노동자를 무시하는 몰상식을 보고 있다.

어머니는 몇 년 전, 칠순을 전후해 일을 그만뒀지만, 지금도 그 후유증이 몸에 남아 있다. 휘어진 손가락, 휘어진 척추, 사라진 무릎 연골은 회복되지 않는다. 그 노동의 깊이는 사적인 대화라고 폄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 휜 척추와 닳아버린 연골, 국회의원은 모르는 급식노동



태그:#급식노동자, #이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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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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