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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된 시민기자라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어느덧 귀농, 또는 자발적 하방을 결행한 지 15년째다. 서울의 도시난민에서 농촌의 마을시민으로 전향한 지난 15년을 뒤돌아보니 아쉬운 우여곡절과 안타까운 시행착오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도시민으로 살며 마흔에 이르자 제 정신이 들었다. 도시에서는 더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다는 냉정한 자가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스스로에게 명령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마을로 자발적 유배를 떠났다.

도시난민에서 귀농인 또는 마을시민으로 전향을 시도한 것이다. 농업회사 농장관리자, 유령작가, 생태마을 막일꾼, 농촌·귀농 컨설턴트, 마을연구원, 마을선생 행세를 하고 제멋대로 전국을 돌아다녔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능히 먹고 살 수 있는 일터, 일과 삶과 놀이가 하나되는 사람 사는 마을'를 찾아 이사만 열 번 넘게 했을 정도다. 그동안 내 앞가림도 못하는 귀농인에서 내 입장만 생각하는 마을시민으로, 나아가 남의 처지도 걱정하는 마을주의자로 점점 진화한 느낌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착각일 수도 있다.

어쨌든 오늘날 전라도 남녘마을의 <마을연구소(Commune Lab)>에서 '사회적인 힘'으로 지속가능하게 진화하는 마을공동체와 농촌사회의 모델을 연구.개발하려 기를 쓰고 있다. 한마디로 '마을에서 사람 답게 먹고 사는 법'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돈도 되지 않고 폼도 나지 않는 일이다. 다만 최소한 스스로 부끄럽거나 남을 괴롭히거나 세상에 죄를 짓지는 않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게 아니라도 이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15년의 귀농 여정이 9권의 책으로

이제 귀농의 패러다임을 보다 합리적이고 실질적으로, 운동에서 생활 또는 사업으로 대전환해야 하는 적기가 도래한 건 아닌가. <귀농의 대전환>은 그 고민의 결과다.
 이제 귀농의 패러다임을 보다 합리적이고 실질적으로, 운동에서 생활 또는 사업으로 대전환해야 하는 적기가 도래한 건 아닌가. <귀농의 대전환>은 그 고민의 결과다.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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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의 귀농 여정이 9권의 책이 되었다. <오래된 미래마을>, <마을시민으로 사는 법>, <마을을 먹여 살리는 마을기업>, <사람 사는 대안마을>, <농부의 나라>, <농촌마을공동체를 살리는 100가지 방법>, <행복사회 유럽>, <마을주의자>에 이어 9번째로 출간한 <귀농의 대전환>에 그 험한 행적을 기록했다. 앞으로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독일의 농부>, <마을학개론>, <마을공화국-마을과 국가>, <마을사회>를 더 지을 작정이다.

15년 전과 다르게 어느덧 지역으로 하방하려는 귀농인은 급증 추세다. 이른바 베이비부머만 7백만명 넘게 대기 중이다. 다들 도시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에 매달려 인간의 존엄과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 갈수록 힘겨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농촌으로 내려간다고 도시에서 보이지 않던 활로가 열리지는 않는다. 농부로서의 생업도, 지역주민의 생활도 도시민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먹고 사는 일'의 고단한 속성, '일 하는 노동자'의 모진 숙명, 그리고 '자본에 억눌린 인간의 존엄'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생태적 자립형 소농으로 순정하게 살고싶은 기왕의 '귀농운동의 가치'는 비현실적인 목표는 아닐까. 이제 귀농의 패러다임을 보다 합리적이고 실질적으로, 운동에서 생활 또는 사업으로 대전환해야 하는 적기가 도래한 건 아닌가. 그 고민의 크기와 무게가 더 이상 안으로만 쌓아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귀농의 대전환>이라는 책으로 분출되어 나온 셈이다.

생태귀농에서 '생활귀농'으로 전환해야

15년 전과 다르게 어느덧 지역으로 하방하려는 귀농인은 급증 추세다.
 15년 전과 다르게 어느덧 지역으로 하방하려는 귀농인은 급증 추세다.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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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농민생활'의 관점에서, 생태귀농에서 '생활귀농'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 106만 농가의 한해 평균 농업소득은 1천만원에 불과하다. 귀농인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려면 물고기(=농민 기본소득)과 물고기 잡는 법(=먹고 사는 생활기술)을 동시에 지원해야 한다.

농업귀농에서 '농촌귀농'으로 발전해야 한다. 농촌에는 농부 말고 다양한 일터와 일자리에 종사하고 복무하는 이른바 '농사 짓지 않는 마을시민'들이 함께 모여 살아야 한다. 그래야 농촌은 농장이 아니라 마을공동체의 원형을 회복할 수 있다.

그리고 생계귀농에서 '복지귀농'으로 귀농의 철학이 보다 심화되어야 한다. 귀농인의 기초생활․생계는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소수의 '돈 버는 농업'을 위한 농업경제학에서 대다수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농촌사회학, 사회복지학으로 농정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또 '농업경제'의 시각에서는, 마을귀농에서 '지역귀농'으로 확장돼야 한다. 귀농인이 작은 마을 안에만 갇혀서는 적정한 규모의 경제사업도, 유기적인 사회활동도 영위할 수 없다. 지역에서는 도시의 경험과 역량을 보유한 귀농인이 절실하다.

나아가 경제귀농에서 '문화귀농'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진정한 귀농은 '억대농부'가 되려는 경제적, 세속적 욕심이 아니라 상실했던 '사람사는 삶'의 문화적 그리움이 동인일 것이다. 농촌을 상업적 관광지나 놀이터처럼 훼손하는 농촌관광사업부터 재고, 경계해야 한다. 관광농업이 아닌, 휴양과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문화농업으로 정상화되어야 한다.

독일의 농부는 국민의 별장지기, 국토의 정원사 등 공익요원처럼 대접받는다. 이어 단독귀농에서 '공동귀농'으로 협동해야 한다. 개별적 귀농보다는 뜻과 목적을 공감․공유하는 공동․집단귀농이 합리적이고 효과적이다. 마을공동체사업, 지역공동체활동을 벌일 때 서로 협동해서 체계적인 사업조직을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관치귀농에서 '자치귀농'으로 전환해야

전라도 남녘마을의 마을연구소에서 '사회적인 힘'으로 지속가능하게 진화하는 마을공동체와 농촌사회의 모델을 연구.개발하려 기를 쓰고 있다.
 전라도 남녘마을의 마을연구소에서 '사회적인 힘'으로 지속가능하게 진화하는 마을공동체와 농촌사회의 모델을 연구.개발하려 기를 쓰고 있다.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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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농촌사회'에서는 독립귀농보다 '연대귀농'을 더 기대한다. 귀농인이 혼자 '좋은 농사'를 짓기는 어렵다. '사회적 인간'이려면 마을주민, 지역사회는 물론, 도시민, 소비자들과 지속적․유기적으로 교류하고 거래해야 한다. 농촌에서도 개인주의자니 이기주의자는 불편한 존재로 환영받지 못한다. 마을공동체의 이웃, 지역사회의 타인을 이타적으로 배려하는 공익적․공공적 시민의식과 선도적 실천역량부터 갖추어야 한다.

기왕의 귀농운동 주체도 마음가짐과 자세를 전환해야 한다. 관치귀농에서 '자치귀농'으로 자립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정책은 농적 가치와 철학이 부족하다. 귀농인끼리 자조와 자립을 통한 자치와 자생이 최선의 자구책이다.

또 운동귀농에서 '사업귀농'으로 전향해야 한다. 기존의 민간 귀농운동 지원조직은 농업,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등 귀농사업, 농가경영, 교육․문화, 생활복지 등 귀농생활 전담지원 전문기관 수준의 위상과 기능으로 거듭 나야 한다. 농업, 농촌형 사회적경제 등 '귀농사업지원센터', 가계경영, 자녀교육 등 '귀농생활지원센터' 등으로 귀농 패러다임 대전환을 이끄는 공공의 소임, 사회적 책무를 떠맡아야 한다.

이렇게 이른바 '귀농의 대전환을 위한 10대 원칙'을 간절히 호소하고 제안한다. <귀농의 대전환>을 굳이 책으로 세상에 꺼내놓은 이유다. 그리고 앞으로 몇 권 책을 더 지은 다음 언젠가는, 더 이상 아무 짓도 안 하고 싶다. 저 피안의 '무위의 마을'로 마지막 귀농을 감행하고 싶다. 반드시 정신노동은 그만 하고 싶다.

머리 말고 가슴과 손발로만 먹고 살고 싶다. 그냥, 산과 물은 맑고, 하늘과 들은 밝고, 바람과 사람은 드문, 작고 낮고 느린 어느 마을의 마을사람이고 싶다. 그 아무것도 아닌 마을에서, 아무것도 아닌 마을사람으로 겨우 살아가다 깨끗하게 죽고 싶다. 묘비같은 흔적도 추모도 바라지 않는다. 마치 나무나 풀, 돌이나 흙, 비와 바람 같은 자연과 우주가 당연히 그런 것처럼.


귀농의 대전환 - 농사를 넘어 마을살이로

정기석 지음, 들녘(2017)


태그:#귀농의 대전환,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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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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