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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나가려니 부산에도 많은 비가 오기 시작한다. 지난 10일 부산에서 수십 년간 민주화 운동을 하며 살아온 부산 민주화의 상징 '민주할매' 정정수 할머님을 만나 뵙고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서면의 한 카페에서 '민주할매' 정정수 할머님과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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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기간 부산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했던 했던 정정수 할머님 .
ⓒ 김성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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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인터뷰에 앞서 간단하게 할머님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정정수라고 합니다. 제가 1935년생 돼지띠 올해 제 나이가 83세가 되었네요. 나이 든 사람 인터뷰한다고 멀리서 이렇게 와줘 감사합니다."

-정정수 할머님께서는 '부산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할머님을 부를 때 '부산 민주할매'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할머님께서는 언제부터 민주화운동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근현대사의 참 슬픈 역사이기도 하죠. 제가 15살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큰오빠가 보도연맹가입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을 가게 되었죠. 그때가 1949년 음력 12월 20일쯤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큰오빠뿐만 아니라 작은 오빠와 어머님은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한테 밥을 줬다고 잡혀갔어요. 졸지에 저는 가장이 되었고요.

그때 큰오빠와 작은 오빠, 어머니가 없는 상태에서 이후 두 동생을 제가 키웠어요. 6.25 전쟁이 일어나 전에 큰오빠와 작은 오빠, 어머님이 다시 돌아왔죠. 근데 온몸에 멍투성이가 되었더라고요. 가족이 그런 아픔을 겪으니 너무나도 분노했고 슬펐어요. 하지만, 또 다시 아픔이 찾아왔어요. 6.25 전쟁이 일어난 후 큰오빠와 작은 오빠는 행방불명되었죠. 단지 살아있기만을 바랐는데, 지금까지 행방에 대해서 모릅니다. 그 이후부터 제가 민주화운동을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4.19 혁명 때도 앞장서서 민주화 운동을 했으니까요.

1987년 6월 항쟁이 있기 전 부산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이 시작되어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게 되었죠. 평생을 민주화 운동을 위해 살다 보니 벌써 제 나이가 83세가 되었군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전면 중단되기도 하였고요. 얼마 전 6.29 선언 30주년 기념식 때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어요. 문재인 대통령에게 당부를 했어요. 꼭 과거사 진상규명을 해달라고. 저와 같이 가족을 잃은 분들이 아직도 많이 살아계십니다. 제가 그렇기 때문에 민주화 운동을 평생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

- 1987년 6월 항쟁 전후로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을 말씀하셨습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캠프 '노사모'에서 최고령 노사모 회원으로 큰 활약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궁금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과도 인권변호사 시절 때부터 인연이 시작되었죠. 그 당시가 1987년 6월 항쟁 전후였고요. 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출마하고, 부산시장 출마하고, 대통령 출마할 때도 항상 곁에서 노 전 대통령을 뒷바라지했어요. 너무나도 좋은 분이었기에 함께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죠.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 명계남씨와 함께 전국을 다 누볐어요.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함께 움직였죠.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 되고 힘들어할 때 곁에 있어 주지 못 해 너무 속상하기도 했죠. 노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로는 한동안 너무 슬펐어요.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비극도 없었을 텐데요. 너무나도 슬퍼서 일이 손에 안 잡혔죠.

얼마 전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보았는데 저도 나오더라고요. 보는 내내 너무 가슴이 아파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그렇게 지켜주지 못하고 떠나보냈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가 그리고 많은 지지자들이 함께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할머님께서는 매주 촛불 집회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촛불 집회를 참석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았는데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매주가 아니라 일요일 빼고 매일 촛불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들은 한국 정치를 그리고 한국 사회를 망친 주범이라고 생각했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 민주주의를 파괴한 세력이라고 생각했기에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어요. 자유발언을 하기도 했고요. 한평생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왔던 저로서는 젊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이전의 집회에 비해 물대포와 최루탄이 없는 평화로운 집회가 되어서 무엇보다 좋았어요. 11월 12일 '민중총궐기' 때는 '부산 민주할매'로서 광화문 촛불 집회에 참석하여 자유발언을 하기도 하였죠.  무엇보다 촛불의 힘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다시 살렸다는 마음에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정말 기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촛불 혁명'으로 대통령이 된 문재인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요즘은 양심수 석방을 위해 활동을 하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에 의해 투옥된 양심수들의 석방을 위해 서울·부산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촛불 혁명의 마지막은 양심수들의 석방이겠죠? 부디 좋은 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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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민주화의 상징 '민주할매' 정정수 할머님 .
ⓒ 김성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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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대선 기간 동안은 부산 문재인 캠프에서 두 달간 최고령 '민주할매'로서 큰 활약을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두 달간을 되돌아보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이듬해 문재인 변호사의 양산 자택에 찾아가 4일간 설득을 하기도 했죠. 정치하라고, 정치하라고. 문 변호사는 그 당시 정치를 할 마음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저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설득하였죠. 보궐선거가 있으니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라고 설득했어요. 결국, 2년 뒤 2012년 총선 때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의 성원에 못 이겨 출마하게 됐고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죠.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당선되기 전까지는 미안한 마음이 컸어요.

이번 대선 기간에는 제가 선거캠프에서 많은 분들에게 쓴소리를 많이 해서 미안하기도 했어요.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한 사람이라도 더 찍게 하자고 쓴소리를 많이 했어요.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다고 봐요. 선거운동하면서 제 또래 분들에게 '빨갱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기도 했어요. 지하철에서는 언성을 높이며 싸운 적도 많고요. 무엇보다 늙은 저보다 젊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캠프 내에서 또 밖에서 열심히 활동했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고 봐요. 모두 욕봤죠. 정말 욕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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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과 정정수 할머님 .
ⓒ 김성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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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의 힘'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습니다. 정정수 할머님께서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문재인 정부에게 바라는 점이 있나요?
"문재인 대통령을 잘 알기에 지금 현재도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고 봐요. 무엇보다 마음 변하지 말고 국민을 위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어줬으면 좋겠어요. 몇십 년 동안 곁에서 지켜봐 왔기에 더욱더 믿음이 가기도 하죠. 인권변호사 시절 우리 사회에서 많은 아픔을 겪은 분들 곁에 지켜줬던 것처럼. 그렇게만 하면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봐요. 무엇보다 퇴임할 때 국민들한테 호응받는 그러한 대통령이 되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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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청년들에게 힘내라며 격려를 하는 정정수 할머님 .
ⓒ 김성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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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다시는 우리 세대와 같은 아픈 역사를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겨 청년들이 행복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세대가 행복해야 든든하고 튼튼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렇게 절 찾아와 인터뷰해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젊은 청년들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저도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시간이 넘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정정수 할머님께서는 또 다른 일정이 있어 급하게 떠나셨다. 우리는 정정수할머님을 어르신으로 보았지만, 할머님께서 아직도 '이팔청춘'이라며 보다 더 좋은 세상 그리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며 끝까지 활동을 한다고 하였다. 인터뷰를 끝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렵고 힘든 시절이 있었음에도 이러한 분들이 많았기에 우리는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정정수 할머님과 같은 분들과 함께 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행동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덧붙이는 글 |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태그:#부산, #민주할매, #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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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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