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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먼동이 트려 할 무렵을 이르는 말이다. 사회적 협동조합 민생네트워크 새벽에게 '새벽'이란 단어는 '새로운 출발', '새로운 경제'를 의미한다. 빚으로 인해 고통받는 저소득·취약계층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과 연대로 새로운 시작을 함께하는 것. 이것이 민생네트워크 새벽의 존재 이유다. 구성원들은 개인파산면책 및 회생 상담, 가정 재무 관리 상담, 자립 및 공동체(협동조합) 창업 지원 등으로 저소득·취약계층을 만난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생각하다

"느닷없이 IMF가 닥쳐서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자영업자들도 망하고 빚이 늘어났어요. 그런 와중에 국가 경제 정책이 서민들 호주머니로 IMF를 극복하는 형태로 진행됐죠. 금모으기 운동을 하고 누구나 길거리에서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했어요. 그 과정 속에서 IMF는 극복됐을지 모르지만 서민들은 빚쟁이가 됐어요. 많은 사람이 빈곤층으로 떨어졌는데 국가가 이들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지 못했어요. 선별복지 정책으로 필요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고요."

민생네트워크 새벽의 김철호 상임이사는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현재의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IMF 전에는 청주에서 도시 일용 노동자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했다. 일감을 같이 만들고 공동 분배 하는 공동체였는데, IMF 때 공동체가 해체됐다. 당시 집수리 등 건축 관련 일을 주로 하던 공동체가 IMF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이후 김철호 상임이사는 대화동 빈들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게 됐다.

"오늘날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자활을 전제로 한 제도예요. 의미는 좋지만, 실제로 빈곤층으로 떨어진 사람은 자활할 수가 없거든요. 빚에 쪼들리고 빚쟁이에게 쫓겨 자활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그 원인이 채무 문제에 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파산면책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우리나라에 개인파산면책을 규정한 파산법이 제정된 때는 1962년이지만, 개인파산면책제도는 법조문으로만 존재했으며 일반 국민에게 알려진 것은 IMF 외환위기 때부터다. 1996년, 개인파산면책을 신청한 최초의 사건이 있었고 1997년에 파산이 선고되고 이어서 면책결정이 난 바 있다.

하지만 개인파산면책이 절실한 이들도 신청 과정이 까다롭고 이에 따른 비용이 발생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을 지켜본 김철호 상임이사는 개인파산면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06년, 새길민생상담소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10년, 민생 네트워크 새벽으로 이름을 변경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목사인 김철호 상임이사와 임태영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전충청지부 부설 무료법률구조센터 상담활동 간사, 이종면 변호사, 유병규 생활경제코칭센터 소장, 김정인 가정재무관리연구소장 등 민생 복지에 관심을 두거나 활동을 이어온 이들이 함께했다. 이후 2014년, 민생네트워크 새벽은 사회적 협동조합이 되었다. 네트워크를 좀 더 지속가능한 구조로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 내담자로 파산면책을 한사람 중 일부가 조합원이 되어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돕겠다고 나섰다.

돈보다 우선인 가치를 바라보다

현재 민생네트워크 새벽은 개인파산면책 및 회생 상담, 가정 재무 관리 상담, 생활법률상담 등을 진행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파산 상황으로 떨어진 사람들을 만나서 상담을 했는데요. 파산에 처하기 전에 어려운 가계에 개입해서 상담을 해 보고 싶었어요. 한계 상황의 가구가 스스로 소득과 지출을 점검하고 균형점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조언하고 안내하고 있어요. 지출 상황에 따른 가정 재무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민생네트워크 새벽에서 상담을 받은 사람들의 수는 수백에 이른다. 주로 대전 지역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충청 지역과 다른 지역 사람들도 새벽을 찾는다.

2015년 9월, 민생네트워크 새벽 김철호 상임이사, 임태영 이사, 김옥연 이사장은 상담하며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 <10 등급 국민>이란 책으로 엮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개인파산면책은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임을 알리고자 했다.

개인파산면책은 사회적 동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이다. '모두가 어렵게 살고 빚을 갚으며 사는데...'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빚으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의 위기가 개인이 책임질 수 있는 영역을 넘어 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철호 상임이사는, 개인파산면책은 권리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출발이라고 말한다.

"상담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기보다는 가슴 아픈 일이 많죠. 파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고통이 전이돼 오니까요. 그래도 보람을 찾는다면, 파산면책 이후 새로운 공동체 경제 영역의 구축 가능성을 보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미래 전망 때문에 힘을 얻어요."

민생네트워크 새벽은 2010년부터 내담자 모임인 새마당을 운영하고 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거나 채무를 면책받은 이들이 어떻게 경제 활동을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 모임이다. 당장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소득을 갑자기 늘릴 수 없어 겪었던 고통을 공유하고 앞으로 어떻게 함께 경제 활동을 할 것인지 대안을 찾는다. 내담자, 조합원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어 협동조합 창업 활동을 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삼는다. 아직 특별한 성과는 없지만, 희망을 보고 있다.

민생네트워크 새벽은 우리가 처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낼 것인지를 모색한다. 이들은 함께하는 가치가 우선인 사회, 인간의 존엄이 우선인 사회를 꿈꾼다.

"사람들이 채무 노예처럼 살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경제가 공정하지 못하고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다시 상호 의존 경제, 삶의 바탕으로 돌아가는 경제를 만드는 게 새벽의 큰 꿈이고요. 실제로는 사람들이 새벽이 하는 사업을 긍정적으로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 후원도 해 주고 조합원 가입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중 웃는 김철호 상임이사. 그는 "상호 의존 경제, 삶의 바탕으로 돌아가는 경제를 만드는 게 새벽의 큰 꿈"이라고 말한다.
▲ 김철호 상임이사 인터뷰 중 웃는 김철호 상임이사. 그는 "상호 의존 경제, 삶의 바탕으로 돌아가는 경제를 만드는 게 새벽의 큰 꿈"이라고 말한다.
ⓒ 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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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위 글은 월간토마토 6월호에 실렸습니다.



태그:#민생네트워크새벽, #개인파산면책, #회생,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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