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소속으로 은퇴를 결정한 '적토마' 이병규

'적토마' 이병규 ⓒ LG 트윈스


KBO리그에는 작년까지 총 12명의 영구결번 선수가 나왔다. 구단별로 2명이 채 넘지 않은 적은 숫자다. 팀의 역사가 짧은 넥센 히어로즈, NC다이노스, kt 위즈에는 아직 영구 결번 선수가 나오지 않았다(대신 NC는 세월호 사고를 추모하는 의미로 4번과 16번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영구결번은 KBO리그 역사를 빛내는 뛰어난 성적은 물론이고 팀에서 상징적인 존재감을 가진 선수만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지난 1986년 성적 부진을 비관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추모의 의미로 영구 결번이 된 고 김영신(OB베어스,54번)을 제외하면 각 구단 영구결번 선수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끈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는 삼성 라이온즈의 영구결번 선수 이만수는 1985년 타율 .322 22홈런87타점으로 삼성의 통합 우승을 이끈 바 있다.

하지만 9일 LG 트윈스에서 영구 결번 행사를 가진 이 선수는 일본 시리즈 우승에 아시안게임 금메달, 그리고 올림픽 메달까지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은 없다. 그럼에도 이 선수가 LG의 야수 최초 영구결번 선수가 된다는 사실에 불만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로 1997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20년에 걸쳐 LG팬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적토마' 이병규가 그 주인공이다.

3년 연속 최다 안타왕, 골든글러브 6회 수상 후 일본 진출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5살 때부터 서울에서 생활한 이병규는 단국대 시절부터 '한국의 이치로'라 불리며 대학 야구 최고의 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1994년 춘계리그 경남대전에서는 한 경기 11타점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병규는 199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LG의 선택을 받았다. 당시 이병규가 받은 계약금은 역대 야수 최고액인 4억4000만원이었다.

이병규는 입단 첫 해부터 타율 .305 7홈런 69타점을 기록하며 LG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시리즈 준우승과 신인왕,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로 화려한 프로 인생의 시작을 알린 이병규는 1999년 자신의 첫 번째 전성기를 만들었다. 이병규는 그 해 타율 .349 192안타30홈런99타점31도루를 기록하며 30-30클럽 가입과 최다안타왕, 골든글러브 수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30홈런,30도루를 달성한 선수는 현재까지도 이병규가 유일하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 연속 최다 안타왕을 차지하며 KBO리그를 대표하는 안타 제조기로 이름을 날린 이병규는 2002년 프로 데뷔 후 3번째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당시 이병규는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6경기에서 타율 3할(20타수6안타)2타점5득점으로 명성에 비해 그리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당시만 해도 그 시리즈가 이병규 야구 인생의 마지막 한국시리즈가 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2003년 십자인대파열 부상을 당하며 44경기 출전에 그쳤던 이병규는 2004년과 2005년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2006년에는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출전해 이종범과 테이블세터로 활약하며 한국의 '퍼펙트 4강'에 큰 기여를 했다. 2006 시즌이 끝나고 FA자격을 얻은 이병규는 선동열과 이종범이 활약했던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와 계약하며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보낸 3년은 이병규에게 그리 좋은 기억으로 남지 못했다. 일본 진출 첫 해였던 2007년 포스트시즌에서 3홈런11타점을 기록하며 주니치의 우승에 기여했지만 이병규는 3년 동안 265경기에 출전해 타율 .254 28홈런119타점에 그치며 외국인 선수다운 활약을 하지 못했다. 결국 이병규는 주니치와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 친정팀 LG로 복귀했다.

최고령 타격왕 차지하며 LG의 10년 암흑기 끝낸 일등공신

이병규는 컴백 2년째이던 2011년 타율 .338 16홈런75타점을 기록하며 '적토마'의 건재를 알렸지만 이병규의 활약과는 별개로 LG의 현실은 암울했다. LG는 2002년 마지막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2012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하는 굴욕을 겪었다. 이병규 입단 후 6년 동안 3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강 팀의 면모는 온데 간데 없었다.

하지만 이병규는 한국 나이로 40세에 접어든 2013년 햄스트링 부상으로 30경기에 결장하면서도 98경기에서 타율 .348 5홈런74타점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령 타격왕에 올랐다. 7월5일 넥센전에서는 최고령 사이클링히트 기록을 세웠고 곧바로 10연타석 안타라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LG팬들은 그 해 가을 장롱 속 먼지 쌓인 유광 점퍼를 꺼내 적토마가 질주하던 90년대 후반의 황금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2013년 최고령 타격왕 타이틀을 얻은 이병규는 LG와 3년25억 원의 FA계약을 맺으며 영원한 LG맨을 선언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과 그에 따른 잦은 부상은 이병규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이병규는 2014년 62경기에서 타율 .251, 2015년 54경기에서 타율 .219에 그치며 연봉 8억 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다운 활약을 전혀 해주지 못했다. 급기야 작년 시즌에는 양상문 감독의 시즌 구상에서 배제되며 시즌 후반까지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병규는 자신이 1군에 호출될 일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43세의 나이에 퓨처스리그에서 후배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401의 고타율을 기록했다. 이병규는 10월8일 두산과의 정규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1군에 등록돼 자신의 생애 마지막 타석에서 대타로 출전해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안타를 터트렸다. LG팬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은 이병규는 10할 타자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병규는 9일 한화 이글스전을 앞두고 열린 은퇴 및 영구결번 행사에서 후배들에게 우승의 짐을 남기고 떠나게 돼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병규는 지난 20년 동안 야구 선수가 우승 말고도 팬들에게 줄 수 있는 기쁨과 감동이 얼마나 크고 많은지 몸소 보여주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리고 야구팬들은 많은 시간이 흘러도 KBO리그 역대 최고의 배드볼 히터이자 안정된 중견수 수비의 교본이었던 이병규를 '영원한 적토마'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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