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청소년 소설 <파라나> (작가 이옥수) 라는 책에는 효행대상을 받기 싫어하는 정호라는 소년이 나옵니다. 학교에서는 플래카드까지 걸어주고, 주변사람들은 역시 정호라며 치켜세웁니다. 하지만 자신이 장애인 부모와 산다는 것만으로 '효자'라는 틀에 가둬버리는 것을 느낀 정호는 그런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며 결국에는 몰래 플래카드를 찢고, 받은 상금도 길거리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누군가는 아깝게 왜 그런 행동을 하냐고 하겠지만, 한 부모 가정 지원 대상자로 살아오면서 저는 이 책의 주인공인 정호의 마음이 이해되고 공감되었습니다.

우유 급식을 신청하면 내 이름의 칸만 회색으로 명암 표시가 되어있고, (우유급식 무료 대상자) 방학식 날 저를 포함한 몇 명의 이름을 방송으로 부르며 방학 우유급식을 줄테니 (방학동안 특별히 마시라고 주는 팩 우유) 급식실로 오라는 그 방송이 정말 싫었습니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은 왜 너희만 받느냐고 물어봤고, 고등학생이 되자 이미 친구들은 제가 왜 우유를 받는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주는 사람이 "난 배려였어!" 라고 말하지만, 받는 사람이 "그건 배려처럼 느껴지지 않았어"라고 말 한다면 그것은 배려가 아닙니다. 어쩌면 또 다른 차별의 시작이고, 지원을 받는 사람들에게 수치심만을 안겨줄 수 있죠.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학기 초에는 '가정환경조사'라며 반장을 시켜 부모님 성함, 전화번호, 집주소 등을 써오게 합니다. 1번부터 마지막 번호까지 모두 돌려야 하는 그 시간에 저는 제 차례가 되면 일부러 화장실을 가서 피하거나 맨 마지막에 쓰겠다며 넘겼고, 그 시간이 싫어 학기 초에 일부러 반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남들은 꽉 차는 두 개의 칸인데, 혼자 한 칸을 채우면 저를 다르게 바라볼 아이들의 시선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물질적인 도움도 좋지만, 생활 속에서 사소한 것에 대한 배려를 해주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와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친구들이 있을 수 있고, 더 큰 상처를 받은 친구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그런 것에 부끄러움, 혹은 수치심을 느껴 학교를 다닐 때 당당하지 못한다면? 집이 남들보다 조금 가난하거나 특별한 구조, 혹은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을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남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그것때문에 2차적인 피해를 겪게 된다면?

배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을 도와주면서 나의 입장으로 행동한다면 과연 그것이 진정한 배려일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나의 입장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배려'가 아닌 '또 다른 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그:#배려, #차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