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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로 온전하게 삶터를 옮긴지 올해 말이면 만 9년이다."
 "시골로 온전하게 삶터를 옮긴지 올해 말이면 만 9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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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여보 이리 와봐요, 이거 어떻게 하지. 큰일 났데" 6월 30일 이른 아침, 밭을 갈다가 못 볼 꼴을 보고야 말았다. 관리기 바퀴에 커다란 뱀이 말려 있던 것이었다. 밭을 간지 거의 2시간 가까이 돼서야 이 같은 사실을 알아챘다.

밭을 갈기 시작한 시간은 이날 오전 6시 30분쯤이었다. 밭갈이를 시작한 지 30분도 못 돼서였을 게다. 아주 작은 달걀만 한 흰 알들이 서너 개 밭에서 튀어나왔다. 속으로 "풀 속에 누에고치 같은 게 있었나" 무심하게 생각하고 그 뒤로도 한 시간 넘게 계속해 밭을 갈았다.

헌데 관리기 톱날 바퀴 사이에 풀 가지들과 폐비닐 등이 너무 많이 엉켜서 작업 효율이 다소 떨어지는 듯했다. 그래서 그걸 빼내려고 관리기 스위치를 끄고 보니, 뱀이 바퀴에 3겹쯤으로 말려져 있었다.

한편으로 징그럽고, 또 한편으로 참혹하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소스라치게 놀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집에서 뛰어나온 아이 엄마도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결국 옆 밭에서 김을 매던 이웃 아주머니가 달려와 고추 지지대로 죽은 뱀을 들어내 골짜기에 버렸다.

'자연 닮은 생활 하겠다'고 했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뱀에게 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뱀은 알을 배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뱀에게 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뱀은 알을 배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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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뱀은 알을 배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대충 밭 가는 일을 끝내고 아침을 먹는데 토할 것만 같았다. 여간해서 살생을 하지 않는 아이 엄마가 위로했다. "살의를 갖고 한 일은 아니니, 잊으세요."

시골로 온전하게 삶터를 옮긴 지 올해 말이면 만 9년이다. 언젠가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지만, 내 경우 귀농도 귀촌도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물으면, "귀농했어요" 혹은 "귀촌이요" 하고 대답하고 했지만, 속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귀연'하겠다는 생각을 확고히 한 것이 1993년 무렵이었고, 지금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귀농 귀촌 인구가 50만 명을 넘어섰다는 정부 통계자료 발표를 어제인가 뉴스를 통해 접했다. 귀농과 귀촌에 대한 정의는 없었지만, 말 그대로 귀농은 농사지으러 도시에서 시골로 이동한 것이고, 귀촌은 촌으로 삶의 기반을 옮긴 것일 게다.

반면 귀연은 귀농·귀촌과는 달리 물리적인 측면보다 생활방식, 사고 등의 관점에서 '이도향농'을 의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자연의 일부가 돼서 사는 것, 자연을 닮은 삶을 사는 것 등을 말한다. 귀농 귀촌 인구 중에도 당연히 귀연이 목표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또 귀연이더라도, 삶의 방식은 귀농일 수도 있고, 귀촌일 수도 있겠다.

알을 품은 뱀을 죽인 게 이중삼중으로 괴로운 건, 전혀 귀연스럽지 않은 행위인 탓이다. 농약이나 비료는 물론 가능하면 비닐 같은 것도 덜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풀과 전쟁'을 벌이면서 지난해부터 어쩔 수 없이 비닐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기계나 기계 작동에 불가피한 휘발유도 최소한으로만 쓰려 했다. 풀을 제어하기가 유달리 힘든 건, 무엇보다 제초제나 기계 사용을 꺼려온 탓이었다. 헌데 굉음을 내는 관리기를 써서, 그것도 생명을 품은 뱀을 죽였다? 입으로는 자연을 닮은 생활을 하겠다고 떠들면서, 기계를 이용해 무자비하게 목숨을 해한 꼴이니 자책하고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농 귀촌이 이 시대의 한 흐름을 형성하면서 이런저런 논란 또한 적지 않다. 귀농 귀촌 인구 50만 돌파라는 뉴스를 전하는 인터넷 기사에 달린 엄청난 댓글도 그런 마찰음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댓글의 대부분은 귀농 귀촌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우려를 표하는 내용들이었다.

부정적 시각이나 우려 자체가 틀렸다고 매도할 수는 없다. 맞는 말도 있고 틀린 말도 있으며, 상황에 따라 또 개개인 처지에 따라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는 얘기들이기 때문이다.

귀농 귀촌에 대해서는 따로 할 말이 없다. 오리지널 귀농 귀촌인 시각에서 나는 무늬만 귀농 귀촌인인 탓이다. 하지만 귀연은 쉽지 않다고 털어놔야 할 듯하다. 아파트 숲과 오피스 빌딩에서 귀연을 실천에 옮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농촌 산촌 어촌이 보다 '귀연스런' 삶을 살아가기 좋은 환경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농촌에서도 귀연스럽게 살아가려면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살아 있다면 '해충'이라도 죽이지 않는 아이 엄마 때문에 우리 집은 곤충 농장과 비슷하다. 방 구석구석을 누비는 거미만도 한두 종류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여름철이면, 모기 쫓아내기는 더욱 어렵다.

오늘 아침처럼 애먼 생명을 끔찍하게 뺏는 일이 생기면 그 후유증이 적어도 사나흘은 간다. 귀연이고 뭐고 그냥 확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들어온 시골인데, 차마 그럴 수는 없고, 내 경우 이럴 때 위안으로 삼는 말이 있다. '세상 사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그래도 평화를 원한다면, 귀연하라

귀농 귀촌이 인생에 어떤 답을 가져다주는 지는 모르겠다. 세상 어디 살아도 만만치 않다. 귀연했답시고 시골에 살면서도 똑같이 느낀다. 다만 나이 탓인지, 주변 환경이 변했는지는 몰라도, 시골로 귀연을 결행한 뒤 전에 없던 변화를 느끼고는 있다. 평화! 바로 평화로운 시간을 자주 갖는다는 점이다.

서울과 중소도시는 물론 미국의 대도시에서 살았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평화 말이다. 개인적으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도시에 살 때 가끔씩 행복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행복이라는 게 신기루 같은 거, 있다 사라지는 거였다는 말이다.

행복이라는 것과는 달리 평화는 그 자체로 마음을 목욕시키는 듯한 느낌을 주곤 한다. 행복감이라는 건 대체로 있다가 사라질 때 뒤끝이 좋지 않았다. 뭐랄까 신나게 기분 내면서 놀이기구를 탔다가 내려왔을 때 느낌이랄까. 잘 표현하기 힘들지만, 올라갈 때는 좋았는데, 꼭 내려오더라는 것이다. 평화는 그러나 잔잔하게 제 자리에 있으면서도 뭔가를 고양시키는 기분, 그런 느낌을 남긴다.

약 10년 시골서 살아본 정도로 어줍잖게 귀농 귀촌에 대해 왈가왈부할 형편은 못 된다. 다만 평화를 꿈꾼다면 귀연들 하시라. 벌레와 새와 갖은 동물, 하늘과 물과 바람이 어느 순간인가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 아침 내 경우처럼 뜻하지 않은 좌절과 낙심 또한 동반될 수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 마이공주 닷컴(mygongju.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귀연, #귀촌, #귀농,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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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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