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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회사는 어차피 아무것도 못해."

이제는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가는 일이 무슨 당연한 수순처럼 고착화됐다. 이렇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교섭 결렬도 어느새 익숙해져 갔다. 뭐, 올해도 이럴 줄 알았다는 서경지부 교섭위원들의 추측은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교섭에 참석한 지 1~2년째 되는 신입 교섭위원들은 이 광경마저 신기해했다.

노조가 정부기관인 지노위의 조정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조건 조정 절차를 밟아야 노동쟁의도 가능하다. 교섭이 결렬됐다고, 무작정 노동쟁의를 하는 건 법적으로 불법이다. 이것을 '조정전치주의'라 하더라.

그렇다고 노조가 노동쟁의권만 확보하려고, 조정을 받는 건 아니다. 조정 기간에는 지노위 위원들(공익위원,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의 중재를 받으면서 더 좋은 안을 만들려고 분주히 노력한다. 노조도 조정기간에 모든 걸 끝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조정안도 마땅치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야 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시작된 1차 조정2회의는 노사 교섭 위원들의 참석 여부를 확인하려고, 이름을 부르는 데만 해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조정회의실이 가득 찼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렇게 1차부터 3차까지의 조정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거의 매 차수마다 오랜 시간 조정에 온힘을 쏟았지만, 사측은 어떤 조정안도 내세우지 않았다. 거의 10~11시간 동안의 조정을 받았는데도, 전혀 성과가 없었다. 원청의 "오더"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사측 집단은 계속 묵묵부답이었다.

한창 조정이 이뤄지던 시기, 광운대분회는 투쟁 준비가 한창이었다. 혹시 모를 조정 중지에 대비해야 했다.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이 투쟁 현수막을 만들고 있다.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이 투쟁 현수막을 만들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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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지부 투쟁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이유

우선, 6월 14일 새로 만든 현수막을 교정 곳곳에 설치하는 것으로 투쟁 열기를 북돋웠다. 축제 때 만든 투쟁 현수막이었다. 학생들이 펼쳐놓은 주점 주변에서 운영위원들 몇이 쭈그려 앉은 채 천을 자르고, 나머지 위원들이 그것에 페인트로 글씨를 써서 제작한 것이었다. 조합원들은 그 현수막을 "플랑"이라고 불렀다. 가뜩이나 강한 어감의 투쟁 단어가 만연한 곳에서 "플랑"이란 단어는 친근한 느낌을 줬다.

"용역 뒤에 숨지 말고, 원청이 우리 문제 해결하라!"

"플랑"은 주로 대학본부가 있는 화도관 쪽을 향해 걸었다. 총장님이 보고, 통 큰 결정을 내려 달라 요구하고 싶어서였다. 우리 청소노동자들의 목소리 좀 들어달라고. 혹시 누군가가 현수막을 뗄까 봐서 경고성 메시지로 "1장 떼면 2장 추가!!!"라는 문구도 A4 용지에 써서 현수막에 붙여 놓았다.

그런데 광운대에 걸린 "플랑"은 옆 동네인 인덕대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인덕대(서경지부 인덕대분회)에는 "플랑"이 마치 도배된 듯 교내 여기저기서 펄럭였다. 노조가 설치한 현수막을 누군가가 아무 말 없이 떼버린 이후부터였다. 그 순간, 노조는 현수막을 계속 만들어서 달았다. 1장 떼면, 그 이상으로 무한 증식했다. 처음 5장에서 지금은 거의 60장에 육박한다. 인덕대 교내를 보는 족족 "플랑"이 다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현수막이 훼손될까봐 조를 짜서 교내 순찰까지 돌았다.

사실, 인덕대 청소노동자들은 현재 시급으로 6700원을 받고, 한 달 동안 191시간을 일한다. 서경지부 내의 다른 대학사업장에 비하면, 열악한 편이다. 하루 8시간 근무도 아니라서 한 달 임금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게 받는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인덕대분회의 분회장님은 올해만큼은 꼭 시급과 근무시간을 다른 서경지부 내 대학사업장과 맞추고 싶어 했다. 서경지부 내에서 투쟁 열기가 가장 뜨거운 이유였다.

 지난 6월 16일,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이화여대에서 조합원 결의대회를 했다.
 지난 6월 16일,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이화여대에서 조합원 결의대회를 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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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광운대분회를 포함한 각 분회는 본관 앞 야외총회부터 교내 행진까지 나름의 방식으로 투쟁 기운을 서서히 불태워 갔다. 6월 16일 서경지부의 전 조합원은 이화여대에 모여서 파업결의대회까지 했다. 조합원들의 투쟁 의지는 나날이 상승했다.

4차 조정을 앞둔 며칠 전, 광운대 각 건물 게시판에는 노동쟁의 찬반투표 공고문을 붙여 놓았다. 그런데 몇 곳은 처참하게 떼어져 있었다. 누구의 짓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추측건대, 청소노동자들이 권리 주장하는 걸 눈꼴사납게 보는 사람 같았다. 원래는 조합원이 봐야 하는 공고문이라서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휴게실'에 걸어놔도 됐다. 하지만 알리고 싶었다. 교섭이 지지부진해서 노동쟁의의 문턱까지 다가왔다고. 그럼에도 그것마저 못마땅하다고 떼어낸 것이었다. 그곳을 제외한 다른 곳들은 제자리에 붙어 있었다.

드디어 광운대분회의 노동쟁의 찬반투표 당일이 다가왔다. 다른 분회들도 총회를 열어서 파업찬반 투표를 했다. 며칠에 걸쳐서 진행됐는데, 광운대분회는 압도적으로 찬성표가 나왔다. 다른 곳들도 비슷했다. 그렇게 투표 참여인 대비 96.7%로 서경지부 17개 분회의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가결됐다. 4차 조정을 앞두고, 노동쟁의권을 확보하기 위한 모든 절차는 완료됐다.

6월 21일 오후 3시부터 4차 조정회의가 시작됐다. 사실상 마지막 조정이었다. 그런데도 사측은 끝까지 조정안을 내놓지 않았다. 그나마 얻은 수확이라면, 카이스트 경비노동자의 시급이 조정에서 결정됐다는 점이다. 기존 시급보다 830원 인상한 조정안을 노사 간에 합의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다른 곳은 여전히 아무 진전이 없었다. 20일간의 조정은 결국 '빈손'으로 끝이 났다.

 지난 6월 23일,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파업 선포 기자회견을 광화문1번가에서 했다.
 지난 6월 23일,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파업 선포 기자회견을 광화문1번가에서 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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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노위의 조정중지 결정이 내려진 서경지부는 조정전치주의에 따라서, 노동쟁의권을 얻었다. 이제 노동자들한테 남은 건 투쟁뿐이었다. 조정 중지 이틀 후, 서경지부는 광화문1번가에서 "파업 선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곧장 각 분회 현장에서 본관 투쟁을 시작했다.

"대학과 용역업체들은 이런 정당하고도 절박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노동자들이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노동과 경비노동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이라면 그에 걸맞게 생활임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탄생 이후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대학 역시 교육부의 지원과 관리감독을 받는 준공공기관으로서 시대적 요구와 사회적 흐름에 따라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이 아닌 생활임금! 책임회피가 아닌 '진짜 사장'으로서의 책임! 이것이 바로 각 대학의 역할이다."(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파업 선포 기자회견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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