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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6월10일 김대중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 남쪽 잔디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1998년 6월10일 김대중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 남쪽 잔디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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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문제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핸들을 잡아 운전하고 나는 옆자리로 옮겨 보조적 역할을 하겠다."

지난 1998년 6월, 취임 후 처음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의 햇볕정책을 설명하자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운전석'을 내놓았다. 김 대통령은 미국이 유럽 동구권과 경제협력을 시작하면서 결국 소련이 무너졌다는 점, 또 전쟁까지 치렀지만 국교 수립과 경제 원조를 실시한 이후 베트남이 우호국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근거로 설득했다.

당시에도 북한은 미사일 실험과 핵 무장을 계속 시도했다. 심지어 한미정상회담 2개월 후인 1998년 8월에는 현재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의 모체가 되는 광명성 1호를 발사했다. 그럼에도 김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자신이 잡은 운전석을 놓지 않았다. 그 결과 사상 첫 번째 남북정상회담과 6.15남북공동성명이라는 1차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취임 후 3박 5일 일정으로 첫 미국 순방 길에 나섰다. 29일과 30일 이틀에 걸쳐 트럼프 대통령과 만남이 예정돼 있다. '한미동맹 강화', '북핵 공동대응 확인' 등 양국 정상회담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는 이번에도 어김없을 것이다. 최대 관심사는 문 대통령이 19년 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클린턴에게 이끌어 냈던 그 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을지 여부다.

북한과 대화 의지 피력, '미국 동의' 이끌어 낼까?

문 대통령은 이번 미국 방문에 앞서 여러 차례 한미관계와 대북정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구상을 밝혔다. '미국·국제사회와의 철저한 공조', '제재와 압박만이 아닌 대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현재의 강도 높은 대북제재에 동참하면서도 보수정권 9년 동안 철저히 후퇴한 남북관계에 변화의 단초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것이다.

먼저 문 대통령은 최근 6.15남북공동선언 17주년 기념사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라고 말했다. 앞선 보수정권은 '비핵화'를 대화의 전제로 내세우면서 사실상 북한의 수용이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었다. 문 대통령은 '도발 중단'만으로도 일단 대화가 가능하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당면한 남북 문제와 한반도 문제 해결의 방법을 그간의 합의에서부터 찾아나갈 것"이라며 "무릎을 마주하고,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기존의 남북 간의 합의를 이행해 나갈지 협의할 의사가 있다"라고 북한과 대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미국 언론과의 연속적인 인터뷰에서도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 CBS, <워싱턴포스트>, <로이터> 등과 연속 인터뷰에서 "한국이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때 남북관계도 훨씬 평화로웠고 미국과 북한관계도 훨씬 부담이 적었다"라며 "오바마 정부가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 기조 하에 북한과 아무런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듯이, 우리 정부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 결과 북한 핵과 미사일이 해결되지 못하고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라며 "지금까지 국제 사회가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해왔던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한국 모두 그동안 제재와 압박이라는 일방적인 대북정책만 펼치면서 결국 북핵 위기를 높였다는 비판이다.

문 대통령은 또 올해 안에 평양 방문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도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그렇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김정은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북한 체제와 정권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일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북미 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다면 김정은도 그 길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구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국의 '지지'가 필요하다.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과거와 같지 않다고 하더라도 동아시아 정세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대북제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동의 없이 한국이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펼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곤란한 트럼프, 문 대통령의 설득 포인트는?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10일 밤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 1월 29일 사우디 국왕과 통화하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10일 밤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 1월 29일 사우디 국왕과 통화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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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조수석에 태울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여기에는 호재와 악재가 모두 있다. 양 정상의 대화 내용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청와대와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에서 철저한 사전 준비와 더불어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개인기'가 발휘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공화당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이 이전 민주당 출신의 오바마 대통령과 차별화 된 대북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호재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략적 인내'라는 기조 아래 북한 문제를 사실상 방치했다.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북한이 계속된 제재와 압박으로 한계 상황에 도달했고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최고 수준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라는 대북정책 기조를 발표했다. 취임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보여준 행보로, 북핵 문제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의제로 부상했다는 것을 알렸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과 달리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라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최고 수준의 압박과 관여'는 더 강력한 제재와 더 극적인 대화(협상)를 뜻한다. 그동안 압박도 대화도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강력한 제재'는 현재 북한이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중국을 움직이겠다는 의미한다. '더 극적인 대화'는 그런 더 강력한 제재를 바탕으로 북핵 폐기라는 협상을 이끌어 내겠다는 전략이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적절한 여건 하에서라면 김정은과 만날 것", "김정은은 꽤 똑똑한 사람"이라며 대화 가능성을 내보였다. 북한을 최대한으로 압박해서 북한이 비핵화의 의지를 보이면 대화도 화끈하게 한번에 결론을 내겠다는 기업가적 마인드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성향은 북한과 대화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북한 여행 중에 억류됐다가 혼수 상태로 송환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사망한 '웜비어 사건'은 미국의 태도를 바꾸는 데 가장 큰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웜비어 사건에 대해 북한의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미 의회와 여론 역시 북한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사실상 최악의 북미관계가 펼쳐지는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리 북한과 대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쉽게 움직일 수가 없다. 미국 내 상황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타계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을 거꾸로 활용해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와야 한다. 

한 외교안보 분야의 전문가는 "문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겠다'는 것"이라며 "양국 정상의 공동성명이나 언론발표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주도적으로 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된다면 한국이 독자적으로 남북대화에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웜비어 사건과 북한의 계속된 미사일 실험으로 어떤 움직임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미국이 당분간 북한에 강경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지만, 문 대통령은 이를 뒤집어서 '각자 역할 분담을 하자, 강경책만 펼쳐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대화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식으로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3박5일 꽉 채운 미국 순방 일정

한편, 문 대통령은 미국 동부 현지 시간으로 28일 오후(한국시간 29일 오전 4시) 워싱턴D.C.에 도착한 뒤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를 시작으로 미국 순방 공식 일정을 시작한다. 장진호 전투는 6·25 당시 한미 양국군을 포함 많은 유엔군이 희생당해 가장 치열했던 전투의 하나로 평가된다.

특히 장진호 전투는 중공군의 남하를 지연시킴으로써 피난민 9만여 명이 흥남부두를 통해 철수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으며, 문 대통령의 부모도 이들 피난민에 포함돼 있었다고 청와대 측은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과 만찬에 참석해 한미 경제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할 예정이다.

29일에는 폴 라이언 하원의장을 비롯한 상·하원 지도부와 미국 정계 핵심인사들과 간담회를 갖고 한미 동맹 발전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눌 계획이다. 오후에는 트럼프 대통령 내외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해 정상간 첫 상견례를 겸한 환영만찬을 할 예정이다. 청와대는 이번 만찬으로 미국이 한미동맹에 부여하는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30일 오전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함께 워싱턴 D.C. 내 한국전 기념비에 헌화할 예정이다. 한국전 참전용사를 선친으로 둔 펜스 부통령은 문 대통령과 함께 헌화하고 싶다는 강력한 뜻을 표명했고, 헌화 행사에는 한국전 참전국 대표들과 미국 참전용사들이 대거 참석한다.

문 대통령은 이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이번 방미 일정 가운데 핵심인 한미 단독 정상회담과 확대 정상회담을 잇달아 가질 예정이다. 특히 양국의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인 북핵과 미사일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큰 틀에서 공동의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허심탄회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두 정상은 회담이 끝난 뒤 공동 언론발표를 통해 기자들에게 정상회담의 결과와 의미를 직접 발표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이어 펜스 부통령과 별도 오찬을 갖고 백악관 공식일정을 마무리한 뒤 당일 저녁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미국 여론주도층을 대상으로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한 연설을 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다음날인 7월1일 동포 간담회에 참석한 뒤 워싱턴D.C를 출발해 2일 오후 늦게 귀국하게 된다.


태그:#문재인, #트럼프, #북핵, #김정은, #한미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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