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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깊어간다.
 여름이 깊어간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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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무르익고 있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기면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될 참이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게 시원한 물인데, 가물어도 너무 가물다. 비가 주룩주룩 신나게 쏟아져 메마를 대로 메마른 땅을 적셔주면 좋으련만, 바람으로 그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주말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다행이다.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해 3주 만에 서울둘레길 걷기에 나섰다. 2주일을 걷지 않았더니 걷고 싶어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길이 나를 부른다, 가자, 걸으러.

지난 21일, 서울둘레길 4코스 대모-우면산 코스를 걸었다. 이날 한낮 예상기온은 32도. 이런 날은 필히 숲으로 가야 한다. 한낮의 숲은 도시보다 최소한 3~4도 이상 낮기 때문이다. 숲이 아닌 땡볕으로 점령당한 길을 걷는 건 피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더위 먹는다.

대모산 숲길, 감탄사 절로 나와

대모산 돌탑
 대모산 돌탑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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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걷기 좋은 길이 바로 대모-우면산 코스다. 대모산에서 구룡산을 지나 우면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나무가 울창해 더위를 피하면서 삼림욕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톤치드가 팍팍 쏟아지는 숲길이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걸으면서 터져 나오는 감탄사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다. 서울에 이렇게 좋은 길이 있다는 것은 걷는 이의 홍복이로다, 뭐 이런 말까지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더란 얘기다.

하지만 이 코스를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수서역에서 출발해 대모산, 구룡산, 우면산을 차례로 지나 사당역까지 이르는 이 코스의 전체 길이는 17.9km, 난이도는 중급이다. 예상 소요시간은 8시간. 출발하기 전에 신발 끈을 조일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풀이가 가능하겠다.

오전 10시 45분에 수서역을 출발했다. 몇 걸음 걷기 전에 대모산 입구가 나타났다. 가파른 계단이 앞을 떡하니 가로막는다. 계단을 오르며 대모산(大母山)의 의미를 생각한다. 예전에는 산 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고 해서 할미산이라 불렸다나. 늙은 할미는 대체 어떤 모양이지? 고부랑 할머니를 뜻하는 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산 입구에 서 있으니 산세를 확인할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로다.

대모산 숲길
 대모산 숲길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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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산은 높이가 고작 293m밖에 되지 않는 산이지만, 수질 좋은 약수터가 여럿 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평일인데도 대모산을 찾은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등산복 차림으로 산길을 오르는 이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장년층이었다. 할미산이라 할아버지들이 많이 오나?

길을 걷다보면 오륙 년 전에 비해 노인인구가 많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걸으면서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가는 길목에 선 우리나라의 현재를 확인하고 있다면 과장이 심한 것일까? 어느 지역에서는 어린이 놀이터에 아이들 대신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전에 보지 못하던 풍경이다.

어느 사이에 녹음이 이렇게 짙어졌을까? 서울둘레길을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뭇잎은 연둣빛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진한 초록빛이 되었다. 계절은 무척이나 더디게 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나 보다.

대모산 불국사 가는 길
 대모산 불국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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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지고, 등나무 꽃이 화사하게 자태를 뽐내더니, 어느 사이엔가 아카시아 꽃이 지고 말았다. 7월이 지나 8월이 되면 숲에서 꽃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한여름은 나뭇잎들이 가장 무성해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나뭇잎이 무성한 계절에 삼림욕을 하면 피톤치드가 왕성하게 쏟아져 나와 더 좋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피톤치드는 활엽수가 아닌 침엽수가 더 많이 쏟아낸단다. 특히 소나무가 그렇다나. 대신 활엽수는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지.

울창한 나무 사이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길은 도시의 존재를 잊게 한다. 서울과 성남시의 경계를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하지만, 전망대에 이르면 도시는 존재를 드러낸다. 멀리 롯데월드타워가 보인다. 서울둘레길을 걸으면서 가장 많이 본 빌딩일 것이다. 어디에서 봐도 눈에 확 들어오는 이 빌딩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 크기가 다른 빌딩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다. 그래서 가끔은 흉물스러워 보인다.

서울의 도심. 멀리 롯데월드타워가 보인다.
 서울의 도심. 멀리 롯데월드타워가 보인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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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처럼 빽빽하게 들어찬 아파트들과 높은 빌딩들을 보고 있노라면 서울은 참으로 운치가 없는 도시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콘크리트 더미로만 채워진 도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숲길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날씨가 덥긴 더운가 보다. 걷는데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힌다. 목에 두른 손수건이 땀으로 푹 젖었다. 그 땀을 숲길 사이로 부는 바람이 식혀준다.

대모산에 불국사가 있다. 그리고 약수터도 있다. 실로암 약수터에서는 물이 졸졸 흘러나온다. 받아서 마시니 더위가 확 가실 정도로 시원하다. 하지만 물이 나오는 약수터는 딱 한 곳이었다. 나머지는 다 말라버렸다. 가뭄 탓이다.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는 걸음을 재촉하면 안 된다. 쉬엄쉬엄 걸으면서 여유를 만끽해야 한다. 대모산을 벗어나 구룡산으로 들어서니 걷는 사람들이 확 줄었다. 대모산을 찾는 이들이 더 많은가 보다.

약수가 마르다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길

서울둘레길
 서울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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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 시민의 숲을 지나 도착한 우면산 역시 숲이 울창하다. 대성사보다 대성사를 소개하는 표지판을 먼저 봤다. 내용을 찬찬히 읽으니 틀린 대목이 보인다. 백제에 불교를 전해준 마라난타 대사는 동진 사람이 아니라 인도 스님인데 '동진의 마라난타'라고 썼다. 마라난타 대사는 인도에서 동진을 거쳐 법성포로 들어와 불교를 전했다. 영광에는 마라난타 대사가 창건했다는 불갑사가 있다.

마라난타 대사는 음식과 기후가 맞지 않아 수토병에 걸렸는데 우면산 생수를 마시고 병을 고쳤다고 한다. 우면산의 약수가 그만큼 좋다는 의미일 텐데, 가뭄에 우면산 약수가 다 말랐으니 안타깝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해갈이 되기를 기원한다.

대성사에서 서울둘레길 4코스 도착점인 사당역까지는 3.9km. 이 구간이 이 코스에서 가장 난도가 높다. 4km가 채 안 되는 거리인데 소요예상시간은 1시간 43분이다. 누구인지 참으로 세밀하게 소요시간을 정했다.

오르고 내리는 길이 계속 이어지는 구간이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만은 사실이다. 평지라면 4km는 한 시간이면 너끈히 걸을 수 있지만 이 구간은 그렇지 않다. 그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서두르지 말고 찬찬히 걷자. 해가 조금씩 기울면서 숲의 온도가 현저하게 낮아졌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둑은 무서워.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둑은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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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서울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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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뒤골 표지석이 보인다. 숲을 걷는 사람들이 어느 사이엔가 사라졌다. 대신 숲길을 가득 채운 건 바람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나무 사이를 타고 흐른다. 잠시 멈춰 표지석에 새겨진 글을 읽는다.

예전에 이곳은 성뒤골이라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성뒤골이란 성 뒤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다. 부자가 많이 살았는데, 도둑들이 활개를 쳤다나. 도둑들이 부자들을 노리고 창궐하니 살 수가 없었을 터. 결국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주해 마을은 텅 비었고, 성뒤골은 도둑골로 불리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사람이 전혀 없어 저절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혹시 도둑님께서 떼로 출몰하시는 건 아니겠지?

어느 순간, 숲길을 빠져나왔다.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그것도 대한민국 수도 서울. 사당역이 저기 보인다. 다 걸었다는 안도감이 마음속에 둥지를 튼다. 갑자기 발바닥이 아프다. 17.9km가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지. 이제 5코스인 관악산 코스만 걸으면 서울둘레길 완주다.


태그:#서울둘레길, #우면산, #대모산, #서울, #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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