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화 이글스는 육성 선수 출신의 신예들이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됐던 우완 투수 강승현은 올 시즌 7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52의 준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아직 승리나 세이브, 홀드를 따내진 못했지만 7.2이닝 동안 14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위력적인 구위를 과시하는 중이다.

지난 21일에는 입단 첫 해부터 육성 선수로 전환되며 아쉬움을 남겼던 내야수 김태연이 사고를 쳤다. 부상으로 1군에서 제외된 송광민 대신 21일 넥센전 8번 3루수로 선발 출전한 김태연은 2회 데뷔 첫 타석에서 신재영의 초구를 공략해 좌측담장을 넘기는 투런 홈런을 터트렸다. KBO리그 역사에서 데뷔 첫 타석에 홈런을 친 신인은 15명이나 있었지만 1군 경험이 전무한 선수가 데뷔 첫 타석에서 초구 홈런을 기록한 것은 김태연이 역대 최초였다.

하지만 빛이 있는 곳엔 언제나 그늘이 있는 법. 한화는 젊고 전도유망한 육성 선수 김태연을 정식 선수로 전환시키기 위해 기존 선수 한 명을 방출했다. 김태연을 등록하기 위해 희생된 선수는 바로 2003년 프로 데뷔 후 한화에서만 15년을 뛰었던 노장 이양기였다. 이양기는 한화에서 웨이버 공시가 된 후 타 구단 이적을 알아보지 않고 현역 은퇴를 결심했다.

주키치의 퍼펙트 기록 깬 이양기, 무릎 부상으로 주전 도약 실패

모내기용 농기계 이앙기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선수 생활 내내 '농기계'라는 별명이 따라다닌 이양기는 199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12라운드(전체90순위)로 한화에 지명됐다. 당시만 해도 대학 진학 여부와 상관없이 지명권이 유효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양기는 탐라대 졸업 후 2003년 한화에 입단했다.

타격 재능은 있지만 수비에서 풀타임을 맡기기엔 부족한 전형적인 반쪽 선수였던 이양기는 프로 입단 후 8년 동안 1군에서 63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사실 성적만 보면 방출 당하지 않고 생존했던 게 신기할 정도. 그런 이양기가 데뷔 후 처음으로 2군 구장이 있는 서산보다 1군 구장이 있는 대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시즌이 바로 2011년이었다.

이양기는 한대화 감독 부임 2년째이던 2011년 1군에서 93경기에 출전해 타율 .279 41안타 17타점을 기록했다. 물론 시즌 대부분을 주전이 아닌 백업 및 대타 요원으로 나왔기 때문에 표본은 그리 많지 않지만 .279의 타율은 그 해 한화에서 이대수(SK 와이번스, .301), 강동우(은퇴, .288) 다음으로 높은 기록이었다.

특히 2011년 8월5일 LG 트윈스전에서는 8회 2사까지 퍼펙트 행진을 이어가던 벤자민 주키치를 상대로 값진 안타를 때려냈다. 8회말에는 정의윤(SK)의 잘 맞은 타구를 잡아내는 호수비를 선보이기도 했다(경기는 한화의 0-8 완패였지만 당시 한화팬들은 이양기의 활약을 '농업혁명'이라며 극찬했다). 다만 좌익수에선 최진행, 우익수에선 카림 가르시아와 강동우에게 밀려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2012년 이양기는 한화가 외국인 타자 가르시아와의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주전 도약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의욕이 지나쳤던 이양기는 캠프 때 무리를 하다가 무릎을 다쳐 조기 귀국했고 그 사이 포지션 경쟁자였던 김경언과 고동진(은퇴)이 치고 올라오면서 자리를 잃고 말았다. 이양기는 선수로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던 2012 시즌 35경기에서 타율 .224 11안타로 부진했다.

2013년 마지막 불꽃 이후 후배 길 터주고 은퇴하는 이양기

이양기의 불운은 2013년에도 계속 이어졌다. 5월 초까지 1군과 2군을 들락거리던 이양기는 5월 중순 1군 엔트리 탈락 후 2군도 아닌 3군으로 밀려났다. 퓨처스리그 경기에는 30대 선수 이양기가 아닌 20대의 젊은 선수를 출전시키면서 경험을 쌓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팀에서 입지가 완전히 좁아진 이양기는 당시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양기의 타격실력을 높게 평가한 이정훈 2군 감독(현 한화 스카우트 팀장)은 구단과 김응용 1군 감독, 그리고 이양기를 설득해 은퇴 번복을 이끌어 냈다. 은퇴 번복을 계기로 마음을 다잡은 이양기는 8월 1군의 호출을 받아 최고의 후반기를 보냈다. 이양기는 8월 이후 46경기에 출전해 타율 .315 52안타 3홈런27타점 16득점을 기록했다. 전반기 성적이 5안타3타점이었음을 생각하면 대단한 반전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13년은 이양기의 마지막 불꽃이 됐다. 이양기는 2014년 다시 대타 요원으로 전락하며 타율 .264 6타점에 그쳤고 2015년엔 손목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하면서 한 번도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다. 작년 시즌에는 보류 선수 명단에서 제외돼 육성 선수 신분이 되기도 했다. 작년 9월에야 비로소 1군 경기에 등장한 이양기는 .288의 괜찮은 타율을 기록했지만 30대 후반을 향해 가는 이양기가 넘볼 수 있는 포지션은 없었다.

올 시즌 대타 요원으로 개막 엔트리에 포함된 이양기는 17경기에서 타율 .227 3타점의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퓨처스리그로 내려갔다. 엔트리 제외 후 퓨처스리그 경기에도 출전하지 않으면서 은퇴 수순을 밟던 이양기는 결국 지난 21일 김태연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한화에서 웨이버 공시됐다. 그리고 한화에서만 15년을 뛰었던 이양기는웨이버 공시가 결정되자 '영원한 한화맨'이 되기 위해 현역은퇴를 선택했다.

2차 지명에서도 전체 90순위로 프로에 지명된 이양기는 통산 성적이180안타6홈런75타점에 불과한 전혀 대단치 않은 선수였다. 선수생활 내내 주전 선수로 뛰어본 적도 없고 포스트시즌에 출전한 적도 없다. 하지만 이양기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3군 추락이나 육성 선수 전환처럼 견디기 힘든 상황에도 경쟁이 심한 프로 무대에서 15년을 버텨 왔다. 그리고 이양기는 마지막까지 만20세의 어린 선수에게 정식 선수 전환이라는 큰 선물을 남겨주고 유니폼을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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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한화 이글스 이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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