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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지난 탄핵이나 대선 과정에서 보니 신문과 방송을 (문재인 정권에) 갖다 바치고 조카 구속시키고, 청와대 특보 자리 겨우 얻는 그런 언론도 있더라" -18일 홍준표 전 경남지사

[장면 2]

홍준표의 무책임한 막말정치 어디까지 가는가 - <중앙일보> 19일 사설
홍준표, 막말에 발뺌 말고 떳떳하게 책임져라 - <중앙일보> 20일 사설
홍, 또 남탓 "당 추락할 때 난 촌에 있었다" 등 - <중앙일보> 21일 특집기사

마치 권투나 레슬링을 보는 듯하다. 한쪽은 치고 빠지고, 한쪽은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끈질긴 공격과 방어를 보여주는 행태가 게임이나 스포츠를 연상케 한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정치권에서 아슬아슬한 싸움을 먼저 걸고 언론은 이를 되받아치는 양상이 자주 눈에 띈다.

전형적인 '노이즈마케팅'(Noise marketing : 각종 이슈를 요란스럽게 치장해 구설에 오르도록 하거나, 화젯거리를 만들어 유권자들의 이목을 현혹해 인지도를 늘리는 기법)을 정치에 그대로 옮겨 놓은 형국이다. 이에 언론이 딱 걸려든 모습이다.

홍준표 입 vs. <중앙일보> 지면, 누가 이길까?

자유한국당의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지난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당내 초재선 의원들이 초청한 자리에 나와 정견을 발표하고 있다.
▲ 초재선 의원이 초청한 홍준표 자유한국당의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지난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당내 초재선 의원들이 초청한 자리에 나와 정견을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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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발단은 자유한국당 소속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입에서 시작됐다. 홍 전 지사가 지난 18일 당 대표 경선 출마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이 '부메랑'이 됐다. 그는 "지금 언론이 정상이 아니다"고 운을 뗀 뒤 특정 언론사를 겨냥해 거침없이 쓴 소리를 쏟아냈다. 홍 전 지사는 "지난 탄핵이나 대선 과정에서 보니 신문과 방송을 (문재인 정권에) 갖다 바치고 조카 구속시키고, 청와대 특보 자리 겨우 얻는 그런 언론도 있더라"고 작심한 듯 내뱉었다.

<중앙일보>와 JTBC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것쯤은 참석한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다. '신문과 방송', '조카 구속', '청와대 특보'라는 키워드 속엔 특정 언론사를 지칭하는 것 외에도 다분히 감정까지 섞여 있음이 읽힌다.

곧바로 <중앙일보>가 포문을 열었다. 연이틀 사설에서 특정 정치인을 거론하며 거센 비판을 가한 것은 이례적이다. 일반기사와 특집을 합하면 연 사흘째 공격을 퍼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막말 정치인'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정치인 '홍준표' 이름을 제목과 본문에서 연거푸 거론하며 따가운 비판과 함께 도의적·법적 책임을 따져 물었다.

신문은 홍 전 지사 기자간담회 다음 날인 19일부터 반격을 시작했다. 2면과 10면 그리고 사설에서 관련 내용을 큼직한 의제로 다뤘다. 다음날인 20일에도 8면과 사설에서 같은 의제를 보도했다. 21일에는 한판(8면)을 할애해 홍 전 지사를 비판했다.

법적 대응을 불사할 뜻도 내비쳤다. <중앙일보>는 19일 자 사설 '홍준표의 무책임한 막말정치 어디까지 가는가'를 통해 홍 전 지사의 발언을 '극단적 발언',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극언'이라고 꼬집으며 "홍 전 지사는 교묘하게 주어를 생략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땅에서 신문, 방송, 조카 구속, 특보라는 표현의 공통분모는 딱 하나밖에 없다. 바로 <중앙일보>와 JTBC, 그리고 홍석현 전 회장"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홍 전 지사는 근거 없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중앙일보>와 홍 전 회장의 명예를 명백히 난도질했다"며 "어떤 정치인이라도 타인의 명예를 난도질할 면죄부를 갖고 있지 않다"고 정곡을 찔렀다. 그러면서 "홍 전 지사는 자신의 망언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검찰 출신의 정치인답게 자신의 발언에 법적 책임도 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사흘 걸쳐 홍준표 비판한 <중앙>

지난 19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홍준표 전 지사의 발언에 대한 중앙미디어네트워크의 입장'
 지난 19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홍준표 전 지사의 발언에 대한 중앙미디어네트워크의 입장'
ⓒ <중앙일보> 지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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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는 같은 날 2면에 실은 '홍준표 전 지사 발언에 대한 중앙미디어네트워크의 입장'이란 제목의 '입장문'에서도 "홍석현 전 회장은 2017년 3월 18일 <중앙일보>·JTBC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이후 양사의 경영에도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며 "발언 철회와 공개 사과가 없을 경우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20일 자 '홍준표, 막말에 발뺌 말고 떳떳하게 책임져라'란 제목의 사설에서도 재차 책임을 물었다. 이들은 "그의(홍 전 지사) 막말이 <중앙일보>, JTBC, 홍석현 전 회장을 겨냥했음은 초등학생 정도의 독해력만 갖춰도 다 안다"면서 "그런데도 '<중앙일보>나 JTBC에 대한 내용은 한마디도 없었다'고 우기니 기가 막힐 따름"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주어와 목적어를 감추거나 비겁하게 발뺌하기보다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막말을 취소하고 사과하는 게 도리"라고 일침을 가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홍 전 지사의 막말 파문을 특집으로 다뤘다. 홍 전 지사가 기자회견에서 '반말'을 일삼는가 하면, '놈'이라는 말까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 대선과정의 전력을 문제 삼으며 "대선 패배 후 한 달 조금 더 지나 중앙정치 무대로 돌아온 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일갈했다. 다음날인 21일에도 8면 전면을 할애해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중앙일보>의 이러한 심각성과는 달리 홍 전 지사는 한국당 전당대회가 열린 제주에서 보란 듯이 할 말을 다했다. 기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또는 SNS상에서 당사자가 어떻게 대응하건 간에 자신의 이미지와 의사를 열심히 관리하며 전달했다. 최후의 승부는 과연 어떻게 될까?

홍준표 "대선 때도 누리지 못했던 기사 독점 누리고 있어"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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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상외다. 온갖 여유는 홍 전 지사가 다 부리고 있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다음날 부메랑이 되어 날아오자 "<중앙일보>나 JTBC에 대한 내용은 한 마디도 없다"면서 "사주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얘기한 것"이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오히려 즐기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20일에는 더욱 논란을 확대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홍 전 지사는 "요즘 대선 때도 누리지 못했던 기사 독점을 누리고 있다"며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쥔 분의 잘못된 처신에 대해 지적했더니 그 분을 모시고 있는 분들이 집단적으로 나서서 저를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한국당이 살아있다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효과가 있어서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일단 자신이 뜻한 바대로 목적은 달성했다는 투로 읽힌다.

홍 전 지사가 대선 기간인 지난 4월 4일 JTBC에 출연해 손석희 앵커에게 보였던 무성의한 인터뷰 태도가 문득 떠오른다. 그는 당시 손 앵커의 질문에 엉뚱하게 답변하면서 '작가가 써 준 것을 그대로 읽지 말라', '손 박사' 등의 표현을 썼고, "답변을 안 하겠다"는 등의 반말투를 보이기도 했다.

홍 전 지사는 손가락에 꼽히는 대선 후보자였으며 야당의 유력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아무런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언론사를 겨냥해 막말했을 리 없다. <중앙일보>와 JTBC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있었거나, 누군가를 대신해 한층 더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작심한 듯한 최근 발언과 대선 후보 시절의 어처구니없는 인터뷰 응대는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홍 전 지사는 논란이 퍼지자 자신이 언급한 내용은 특정 언론사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며 얼버무렸지만, 행간을 살펴보면 특정 언론사에 대한 고의적 감정표현임이 명약관화하게 녹아있다.

왜 하필 <중앙일보>·JTBC를 걸고 가려는 걸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지난 4월 4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하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지난 4월 4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하고 있다.
ⓒ JTBC <뉴스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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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을 지지하는 보수세력, 그중에서도 특히 친박세력과 주요 당원들은 아직도 JTBC가 국정농단의 핵심인 최순실 게이트의 시발점이나 다름없는 태블릿PC 문제를 보도함으로써 정권을 야당에 바쳤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당의 지지를 받아 대선 후보로 출마한 홍 전 지사가 JTBC 보도부문사장인 손 앵커를 대놓고 생방송 도중 비아냥거리고, 홍석현 전 회장을 빗대어 '언론을 정권에 바친' 인물처럼 묘사해 주장한 것은 충분히 전략적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지만 멀쩡한 신문과 방송을 두고 '정권에 바쳤다'는 표현을 쓴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더구나 손 앵커가 이끄는 JTBC <뉴스룸>은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게 평가받아 시청률이 타 방송사에 비해 높은 상태를 유지해 왔다. 권력의 편파성 시비가 끊이질 않는 공영방송들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정권에 갖다 바쳤다'고 표현했으니 해당 언론사 입장에서는 얼마나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 일이겠는가. 오죽했으면 법적인 대응까지 들고 나섰을까.

홍 전 지사의 '막말' 전략은 그의 '전력' 때문에 부메랑이 돼 오히려 역효과가 날 공산이 클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본인은 '한국당이 살아있다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효과'로 분석하고 있으니 얼마나 시각차가 큰지 알 수 있다.

한국당의 노이즈마케팅 정치는 홍 전 지사뿐만이 아니다. 이철우 의원 또한 그에 버금가는 막말로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홍 전 지사에 이어 선수로 자청한 듯하다.

노이즈마케팅 전략, '가차저널리즘'에 쉽게 빠져들 수도

이철우 자유한국당 의원
 이철우 자유한국당 의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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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원은 19일 제주 퍼시픽 호텔에서 진행된 전당대회 일정 중 "대통령 선거까지는 안 갈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래 못 갈 것 같다"고 작심한 듯 발언했다. '문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거나 중도 사퇴할 가능성'을 뜻하는 것이니 언론에는 얼마나 따끈따끈한 의제 거리인가. 그는 한 단계 높은 문 대통령을 걸고 갔다.

정권 출범 후 높은 지지율로 적폐청산에 탄력을 받고 있는 정권에 비수를 들이대기로 작정한 태세다. 지난 박근혜 정권 재임 기간 중 사상 초유의 탄핵을 당한 수권정당이었음에도, 반성은커녕 촛불시민혁명으로 출범한 정권이 이제 막 첫발을 떼고 있는 순간 탄핵을 운운하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그러나 이 또한 전형적인 노이즈마케팅 정치로 볼 수 있다. 정치인이 막말로 '노이즈'를 조성해 지지층의 결집과 호기심을 부추기는 기법이다. 이는 주로 언론을 통해 여론전으로 활용하는 정치기법인데, 탄핵정국 이후 우리나라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특히 한국당이 주로 이 정치기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앞의 두 정치인(홍준표·이철우) 사례는 그 본보기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점을 노리고 파고드는 전략이 자칫 언론을 가차저널리즘(Gotcha journalism, 정치인의 실수나 해프닝을 꼬투리 삼아 집중적으로 반복해 기사화하는 보도행태)으로 쉽게 몰고 갈 수 있는 함정이다.

정치권의 노이즈마케팅 전략이 언론을 가차저널리즘의 형국으로 휘말리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일명 '꼬투리저널리즘'이라고도 부르는 가차저널리즘이 '딱 걸렸어'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특정 정치인이나 저명인사의 사소한 말실수나 당황해하는 행동 등을 사안의 맥락과 관계없이 흥미 위주로 집중 보도하는 나쁜 형태의 저널리즘을 일컫는다.

최근 막말로 자신의 이미지와 당의 정체성을 자주 언론에 부각하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노이즈마케팅 기법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언론이 정치인들의 노이즈마케팅 전략에 쉽게 흥분할 경우 영락없이 가차저널리즘에 휘말릴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태그:#노이즈마케팅 정치, #막말 정치, #가차저널리즘, #홍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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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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