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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일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일러스트.
ⓒ pe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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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드 문제로 '격노'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 시각으로 지난 8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국무부·국방부 장관과 논의하던 중에 사드의 한국 배치가 지연되는 것에 대해 불 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심지어 심한 욕설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일본은 쌀 미(米)자를 써서 베이코쿠(米國, 미국)라 부르고, 한국과 중국은 아름다울 미(美)자를 써서 각각 미국 및 메이궈(美國)라 부른다. 미국 대통령 입에서 아름다운 말이 아니라 쌀쌀하다 못해 추한 말까지 나왔다 하니, 한국·중국에 비해 미국과의 거리가 좀 더 가까운 일본이 아무래도 상대방을 보다 정확히 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트럼프는 화내고 욕설까지 하다가 "차라리 빼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차라리 사드 배치를 철회하라는 말까지 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격노를 한국인들의 귀에 넣어주는 것은 한국을 겁주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미국의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황태자 앞에서 화를 낸 기황후... "왜 복수하지 않느냐"

드라마 <기황후>.
 드라마 <기황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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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몽골(원나라)의 운명이 황혼처럼 저물어 가던 1360년대였다. 순제 황제의 제2황후인 고려 출신 기황후가 실권을 잡고 있을 때였다. 기황후는 황태자의 어머니인 점을 이용해 군사권 등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태자파와 반대파의 정쟁이 심했기 때문에, 자칫하면 황태자가 탄핵당할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기황후가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황태자한테 모아져야 할 기황후의 집중력을 분산시킨 존재가 있었다. 바로 고려 공민왕이었다. 공민왕은 1356년 적폐 청산 차원에서 수구파인 기철 일파를 숙청했다. 기철은 기황후의 오빠였다.

이 때문에 안 그래도 공민왕한테 앙금을 품은 기황후를 더욱 더 화나게 하는 일이 있었다. 황태자를 포함한 자기편 사람들이 고려에 대한 복수를 신속히 추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참다 참다 못한 기황후는 1363년에 황태자에게 화를 냈다. 중국어로 기록된 몽골 역사서 <원사>의 기황후 열전에 따르면, 기황후는 "너는 어째서 나를 대신해 복수하지 않는 것이냐?"라며 따졌다. 대국 실권자가 외국 문제로 생긴 분노를 아들 앞에서 표출한 것이다.

정도전의 말 한 마디가 주원장의 귀에 들어가다

만리장성 동쪽 끝 관문이자 만리장성과 서해의 관문인 산해관. 서해가 산해관의 오른쪽에 있어야 하지만, 이 사진은 산해관 북쪽에서 찍은 것이라서 서해가 왼쪽에 나온다.
 만리장성 동쪽 끝 관문이자 만리장성과 서해의 관문인 산해관. 서해가 산해관의 오른쪽에 있어야 하지만, 이 사진은 산해관 북쪽에서 찍은 것이라서 서해가 왼쪽에 나온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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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은 1368년 중국 땅을 잃고 북방 초원으로 쫓겨났다. 그 뒤 중국의 주인이 된 명나라가 동아시아 질서를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애를 쓸 때인 1390년대. 이때 주원장의 심기를 살살 자극하는 이가 있었다. 신생국 조선의 실권자 정도전이었다.

당시 명나라 수도는 북경(베이징)이 아닌 남경(난징)에 있었다. 남경은 상해(상하이) 인근이다. 그래서 남경의 명나라 정부는 여진족이 할거하는 만주 땅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 거기다가 황제 주원장의 넷째 아들이자 황태손 주윤문의 삼촌인 주체(훗날의 영락제)가 북경을 근거지로 주윤문을 압박하며 황위를 노리고 있었다. 주체는 명나라판 수양대군이었다. 이런 내분 때문에 명나라는 만주 땅을 더욱 더 신경 쓸 수 없었다.

그 같은 상황에서 신생국 조선이 만주에 욕심을 냈다. 조선이 여진족과 모종의 소통을 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래서 주원장은 조선 주상인 이성계는 물론이고 실권자인 정도전에 대해서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도전이 명나라 수도 남경을 방문했다. 일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그는 만리장성의 동쪽 끝 관문이자 만리장성과 서해의 접점인 산해문을 지나게 됐다. 이때가 1392년이었다. 훗날 이 일을 기록한 태조 6년 4월 17일자(양력 1397년 5월 14일자) <태조실록>에 따르면, 산해관을 지나던 정도전은 의도적으로 "좋은 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게 좋은 건지 알 수 없네"라는 말을 흘렸다.

명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된다는 뜻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판 붙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의 귀를 통해, 그리고 입을 통해 주원장의 귀에 들어가도록 하려고 일부러 말을 흘렸던 것이다. 결국 그 말은 주원장 귀에 쏙 들어갔다. 

명 황제의 '집요한' 분노

대만(타이완)의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주원장 초상화. 위키백과 중국어판은 이 사진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대만(타이완)의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주원장 초상화. 위키백과 중국어판은 이 사진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 위키백과 중국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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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세우기 전에 주원장은 머리를 깎고 탁발승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이런 경험 때문에, 그는 신하의 글에 빛 광(光)자나 민머리 독(禿)자만 있어도 버럭 화를 냈다. 그러고는 신하를 처벌했다. 자기를 조롱하려고 의도적으로 그런 문구를 집어넣었을 거라는 게 이유였다.

그렇게 사소한 것에도 격분을 터뜨리는 주원장이 정도전의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격노하는 게 당연했다. 그는 보복의 기회를 엿봤다. 그러다가 조선이 보낸 외교문서를 핑계 삼아 1395년부터 본격적으로 정도전을 괴롭혔다. 문서에 불경한 내용이 있으니 정도전을 자기한테 보내라는 것이었다. 어떤 내용이 불경한지는 밝히지 않았다. 무조건 정도전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정도전은 가지 않았다. 무시해버렸다. 그러자 주원장은 이성계에게 노골적인 분노를 표출했다. 음력으로 태조 6년 4월 17일자(1397년 5월 14일자) <태조실록>에 따르면, 그는 조선 사신을 통해 보낸 메시지에서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주원장은 "이아무개는 분별력이 없다"며 이성계의 판단력을 깎아내리더니 "정도전 같은 자를 써서 무엇을 할 것이냐?"며 이성계와 정도전을 이간시키려 했다. 또 정도전이 1392년에 산해관에서 했던 말도 거론하며 불쾌감을 표했다. 주원장도 기황후처럼 대국 지도자답지 않게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버럭'의 결과... 패배하거나 속 끓거나

중국 춘추시대 정치가인 관중의 사상을 정리한 <관자> 주합편은 "싫어하고 미워하는 게 있어도 성을 내서는 안 된다"며 "이는 분노를 억제해야 일을 빨리 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성을 내서 일을 빨리 이루려 하면 …(중략)… 재앙이 반드시 몸에 미친다"라고 설파했다.

지도자도 때로는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 하지만, 적절하지 않은 때에 적합하지 않은 방법으로 표출되는 분노는 <관자>의 표현대로 일을 그르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기황후도 그랬다. 반대파가 자기 아들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기황후는 공민왕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래서 엉뚱한 아들한테 화를 낸 뒤 1364년에 1만 군대를 고려에 파견했다. 공민왕 정권을 전복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반대파와의 투쟁에 총력을 기울여도 시원찮을 판국에 고려를 상대로 불필요한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결국 기황후가 보낸 군대는 고려군에 패배했다. 지도자의 분노로 일을 그르쳤던 것이다. 4년 뒤인 1368년, 기황후는 중국 본토를 잃고 아들과 함께 몽골초원으로 도주했다. 이로써 몽골은 2류 국가로 추락하고 말았다. 

주원장의 경우에도, 일이 잘됐다고 볼 수 없다. 지속적으로 정도전의 신병을 요구한 일로 인해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는 극도로 험악해졌다. 양국은 무역분쟁을 겪었고, 정도전은 만주 정벌 즉 요동 정벌까지 추진했다.

북경에 근거지를 둔 황자 주체 때문에 남경에 있는 황제와 황태손의 힘이 만주까지 미치지 않는 상황에서 정도전의 군대가 만주로 진출했다면, 명나라는 존망의 위기에 빠질 수도 있었다. 주원장의 격노가 하마터면 명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뻔했던 것이다.

1398년에 정도전이 친(親)명나라파 이방원에게 살해되는 바람에, 조선군이 만주를 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명나라의 위기가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원장은 정도전의 부고를 들을 수 없었다. 정도전에 대한 분노로 속을 끓이다가, 정도전이 죽기 3개월 보름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기황후나 주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처럼 대국의 지도자였다. 대국 지도자는 가급적 감정을 감춰야 한다. 화를 내더라도 중용의 미덕을 갖춰야 한다. 분노를 드러내는 것을 대단한 용기로 알고 그것을 통해 뭔가를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된다. <관자> 법금편은 "원망과 분노를 드러내는 것을 용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왕(聖王)들이 금지하는 바였다"라고 짚는다.

중용을 갖추지 못하고 욕설까지 수반되는 무분별한 분노의 표출은, 기황후나 주원장의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대국 지도자 개인이나 대국 전체에 결코 이롭지 않다. 대국의 무분별한 격노는 다른 나라들의 불안과 경계심을 조성하고, 그 나라들의 필사적인 저항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대국의 분노는 대국 자신에 이롭지 않다. 그런 분노의 말을 상대방 나라 국민들의 귀에 일부러 넣어줄 필요는 없다.  


태그:#트럼프, #사드 배치, #기황후, #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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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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