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더빙판 포스터. 오는 7월 13일 개봉 예정이며 오는 6월 말까지 더빙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한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더빙판 포스터. 오는 7월 13일 개봉 예정이며 오는 6월 말까지 더빙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한다. ⓒ 메가박스㈜플러스엠


350만 관객을 불러들이며 일본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너의 이름은.>이 국내 더빙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성우 발탁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21일 현재까지 애니메이션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해당 작품의 수입사와 관계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는 모양새다.

더빙판 <너의 이름은.>은 이미 6월 초부터 김소현과 지창욱, 이레 등 배우들이 녹음에 참여하고 있으며, 6월 말 작업 종료를 목표로 삼았다. 해당 작품의 개봉일은 오는 7월 13일이다.

논란의 핵심

이미 여러 매체에서 보도한 대로, 이 작품의 한국 수입사 '미디어캐슬' 측이 국내 기성 배우와 더빙 작업을 한다고 알리면서부터 논란이 커졌다. 미디어캐슬이 본래 더빙을 위한 '공개 오디션' 계획을 밝혔다가 돌연 변경한 터라, 논란의 핵심은 '신의'의 문제에 쏠렸다. 성우와 배우, 일반인 가릴 것 없이 진행할 것이라던 '열린 오디션'이 여의치 않자 배우를 기용했고, 이게 결국 노이즈 혹은 스타 마케팅의 일환 아니었냐는 의심의 시선이 강해진 것. 일부 누리꾼과 더빙 전문 성우들은 최근까지 SNS 등에 공개적으로 이번 사태를 강하게 성토하고 나섰다.

 <나루토> <주토피아> 등에 참여한 바 있는 성우 정재헌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번 <너의 이름은.> 더빙 논란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나루토> <주토피아> 등에 참여한 바 있는 성우 정재헌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번 <너의 이름은.> 더빙 논란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 @jaeheony


<나루토> <주토피아> 등 폭넓게 작품에 참여한 성우 정재헌은 "라이브로 공개 오디션을 보겠다고 노이즈 마케팅을 펼치더니 결국 그 유명세와 이름으로 홍보하고 티켓을 팔겠다는 연예인 캐스팅. 그보다 더 충격인 건 전문 더빙 연출이 아닌 영화감독의 연출"이라 비판했다.

<언어의 정원> <원펀맨> 등에 참여한 성우 심규혁 역시 "타인의 연기를 따라 움직이는 그림에 감정과 타이밍을 맞추며 동시에 주도적 연기를 해내는 더빙은 결코 쉬운 분야가 아니다"라며 "타 매체 연기와는 또 다른 훈련과 접근이 필요하다. 무대 연기와 카메라 연기가 다를 거란 생각은 하면서 마이크는 왜 쉽게 무시하는가"라고 글을 쓴 바 있다.

엄밀히 말하면 미디어캐슬은 성우 오디션에 대한 세부 내용을 확정한 바 없다. 지난 1월 중순, 보도 자료로 오디션 예정 사실을 알렸지만, 세부 일정 확정 공지가 나간 일은 없었다. 확정되지 않은 계획에 비해 여파가 상당히 커진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9일, <오마이스타>는 강상욱 미디어캐슬 이사와 어렵지 않게 통화할 수 있었다.

강 이사는 "처음 <너의 이름은.>이 개봉하면서 한국어 더빙판을 만들어 달라는 전문 성우 팬분들의 메일을 엄청 받았다"며 "원작 느낌 훼손 등을 이유로 더빙 반대 여론이 강하다고 판단해 '어렵다'고 답했는데, 또 그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난리가 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우리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보면 더빙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대체로 하지 말라는 의견이 강했다. 개봉 때만 해도 그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는데 성우 팬분들이 더빙판을 만들지 않으면 소비자고발센터 등에 고발하겠다는 등 강하게 의견을 말씀하더라. 작품이 흥행하면서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키와 미츠하의 경우 쉽지 않은 캐릭터라 일반인이든 배우든 가리지 않고 오디션을 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성우 팬분들이 제 개인 메일주소를 공유했고, 여러 매체에서 연락이 오면서 (이런 제 생각이) 알려지게 됐다.

그러다가 오디션을 열 수 없게 됐다. 이 사실 역시 자주 연락하던 기자 분과 통화하면서 (기사로) 알려진 거다. 우리가 대형 수입사도 아니고, 이 일로 기자회견을 열 순 없잖나. 이걸 두고 노이즈 마케팅이라 하시는데 (세부 일정 확정을 위해) 서수민 PD가 계신 전문 제작사와 접촉했고, 일을 진행 중이었다. 일본 제작사 쪽에서 DVD 발매 일자가 변경됐다는 통보를 받았고, 물리적으로 오디션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다."


일임된 권한... "응대 과정이 잘못이라면 잘못"

 <너의 이름은.>의 오픈 오디션이 취소된 데는, 일본 현지 사정에 의해 변경된 '물리적 시간'이 크게 작용했다.

<너의 이름은.>의 오픈 오디션이 취소된 데는, 일본 현지 사정에 의해 변경된 '물리적 시간'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미디어캐슬 측의 설명이다. ⓒ 메가박스㈜플러스엠


정리하면 오디션 계획을 알리긴 했지만, 확정 공지를 하지 않았고, 그러다 일본 현지 사정으로 한국 더빙판 개봉일이 앞당겨지면서 차질이 생긴 것. 하지만 오디션 계획을 이미 공지한 만큼 취소 사실 역시 공식적으로 알렸어야 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 지적에 강 이사는 "오디션 불발을 따로 공지 안 한 게 문제라고 한다면 제 잘못"이라며 "5월 무렵에 나간 인터뷰를 통해 충분히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안이했다"고 답했다.

일본의 경우 보통 영화 개봉 후 6개월 뒤 IPTV와 DVD 발매 등 2차 판권이 풀린다. 2016년 8월 일본 개봉, 2017년 1월 한국 개봉에 이어 일본 내 IPTV 공개는 오는 8월 예정이었다. 그러다 DVD 출시를 7월로 앞당기며 한국어 더빙판도 그에 맞춰야 했던 것.

한국어판 더빙 제작 권한은 <너의 이름은.> 제작사인 코믹스웨이브필름이 애초에 미디어캐슬에 일임했다. 냉정하게 보면 배우를 기용하든 전문 성우를 쓰든 수입사 마음이기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 다만 앞서 언급한 신뢰 문제를 지적할 순 있다. 여기에 더해 "촉박한 일정일수록 더빙 전문 연출가와 전문 성우를 써야 한다"는 주장 역시 일리 있다. 이에 대해 강상욱 이사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물론 성우분들 실력이 뛰어난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바라보는 이들의 온도 차가 있다. 제작사에 상의했을 때 '일본의 경우처럼 배우를 쓰는 건 어떤지'라는 말을 들었다. 그간 여러 애니메이션의 베리어프리(시각장애인을 위한) 버전을 제작했고, <너의 이름은.> 역시 더빙과 함께 그 작업을 진행하기에 관련 업체에 배우 추천 리스트를 받았다. 그중 발음과 발성이 정확한 두 배우와 하게 된 것이다. 또 (지난 2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내한했을 때 배우가 더빙을 맡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 감독님이 신작 준비 중이라 직접 확인을 받진 못했지만 두 배우의 녹음자료를 코믹스웨이브 측에 들려줬는데 만족해했다.

그리고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연기'라고 일본 제작사 측이 발표한 게 전문 성우분들을 욕되게 했다는데 그런 의도가 아니다. 기존 일본 애니메이션도 전문 성우분들 특유의 톤이 있다. <너의 이름은.>의 타키와 미츠하는 자연스러운 대화가 강조됐기에 그런 차원에서 말한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비난하실 순 있지만, 사실관계는 이렇다."

보통은 전문 성우가 더빙에 참여할 경우 편당 적게는 하루, 길게는 사흘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성우가 아닌 배우일 경우 시간이 더 걸리는 건 당연지사. 강 이사는 "그걸 감안해 작업 일정을 보다 길게 잡았다"며 "이번에 연출을 맡은 김성호 감독은 (영화감독이지만) 츠마부키 사토시 주연의 <마이 백 페이지>라는 작품으로 배우들과 더빙 작업을 한 경험이 있다. 애써 알리진 않았지만 사실 더빙 전문 PD 역시 함께 이 작업에 참여 중이다"라고 답했다.

남은 논란들

 10일 오전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너의 이름은.> 앙코르 기자회견에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지난 8일 영화 <너의 이름은.>이 350만 명의 관객수를 기록해 다시 한국에 방문했다.

지난 2월 10일, 오전 서울 논현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너의 이름은.> 앙코르 기자회견에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정말 '배우 더빙'을 원했을까? ⓒ 국외자들


그렇다면 정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배우 기용'을 정확히 언급했을까. 내한 당시 감독은 더빙판의 권한 일임 사실을 알리며 "다만 남자주인공 타키 역을 신경 써 달라. 남성과 여성 목소리 둘 다 내야 하는데 진지한 장면도 있는 만큼 관객이 웃는 일 없이 잘 다른 성별 연기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며 "오디션은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정말 뛰어난 연기자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연기자라는 단어를 곧이곧대로 배우라 해석할 수 있지만, 성우 역시 '작품에 맞게 목소리를 연기하는 전문가'인 만큼 폭넓게 볼 수도 있다. 이 사안에 당시 행사를 진행한 마케팅 담당자는 "뉘앙스로 따지면 배우라고 말씀하신 것"이라 전했다.

그런데도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이런 논란을 예상했든 못했든 최고 인기를 구가한 일본 애니메이션 더빙에 굳이 스타 배우를 기용했어야 했을까. 한 애니메이션 수입 관계자는 "일반 애니메이션이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이미 크게 흥행한 작품이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선 전문 성우로 갔어도 충분히 잘 될 영화라고 본다. 화제성을 높이려는 수입사의 욕심도 작용한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스타 마케팅을 위해서 배우를 쓸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성우분들과 성우 팬분들은 그런 마케팅에 반감이 있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20일 오후, 강상욱 이사가 추가로 생각을 전해왔다. "더빙 연출 전문 PD를 기용했다는 내용을 처음부터 알리지 않은 건 감독님에 대한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해서였다"며 강 이사는 "배리어프리 버전 제작에 동참한다는 선한 취지로 더빙에 임한 배우들 및 감독님이 상처 입는 것이 (관계자로서)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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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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