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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을 방문한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대통령특보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우드로윌슨센터에서 열린 제5차 한미대화 행사에서 오찬 연설을 하고 있다.
 미국을 방문한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대통령특보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우드로윌슨센터에서 열린 제5차 한미대화 행사에서 오찬 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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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도 그렇고 패널들도 그렇고 때를 만난 것 같다. 눌려왔던 보수 세력이 이번 일을 빌미로 총공세로 나서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지상파와 종편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한 언론인은 최근 방미 중인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의 발언에 대한 방송사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이는 지나친 판단이 아니다.

문 특보의 발언이 전해진 지난 17일부터 맹공을 가한 주류 언론들은 20일 현재까지도 "상습 사고 안보팀 이대로 괜찮나", "美 불편했던 盧정부 시절로 가려 하나"(조선일보) "청와대 특보의 가벼운 입에 흔들리는 한·미 동맹"(중앙일보), "적·전·균·열"(동아일보) 등의 사설과 기사로 '조지고' 있다.

"문정인은 외교안보 폭탄과 다름 없다"(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한미동맹 훼손 매우 부적절한 발언...치고 빠지기를 해서도 안된다"(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외교 협상의 전략 ABC도 찾을 수 없었다"(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김정은의 외교안보 특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김영우 바른정당 의원-국회 국방위원장), "北에 인공호흡기 달아주는 형국"(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등 정의당을 제외한 야당들도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한다면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에 대해 미국과 논의할 수 있다"는 문 특보의 발언이 이처럼 문제를 삼을 만한 내용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27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북한 입장은, 평화협정이 종이쪽지 하나에 불과한데 이것을 믿고 어떻게 핵을 포기하느냐는 것이다. 북한을 설득할 복안이 있느냐"는 질문에 "시행동마다 취해지는 조치들이 있다"며 "만약에 북한이 우선 핵 동결을 하고 핵 동결이 충분히 검증된다면 거기에 상응해서 우리가 한·미 간 군사훈련을 조정하고 축소한다든가 상응하는 조치들을 취할 수 있다"고 답했다.

문 특보가 지난 16일(현지시각) 한국 동아시아재단과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워싱턴에서 주최한 '한·미 신행정부 출범과 한·미 동맹' 주제 세미나에서 한 발제는 이를 '해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특보는 "원래 (한반도에) 전략무기 전진 배치는 안 됐었는데,  2010년부터 항공모함, 핵잠수함, (B-52, B-1B 같은) 전략폭격기 등이 동원됐다"면서 "한국으로서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이 있었으니까 그럴 수 있지만, 긴장을 증폭시키고 북한 대응을 강화시키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2010년 이전처럼 한미연합 군사훈련에 핵 능력을 가진 '미국의 전략자산'들이 한반도에 출동하지 않도록 '축소'하는 방안을 말한 것이다.

이같은 아이디어는 북한이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기하고, 핵·경제개발 병진노선을 국가 전략노선으로 채택하는 등 핵보유 의사가 분명해지면서 문 특보뿐 아니라 적지 않은 한반도 전문가들이 제기해온 내용이었다.

미 국무장관, 유엔 미국대사도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 중단하면, 대화 가능"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지난 3월 1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부 브리핑룸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지난 3월 1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부 브리핑룸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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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도 유사한 흐름이 있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지난 4월 9일 ABC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은 북한이 모든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도록 요구해 왔으며, 그래야 북한과의 대화를 고려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해 큰 주목을 받았다.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 문턱을 낮춘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 캐티나 애덤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이 "(북한의 안보와 경제발전은) 비핵화와 대량살상무기 포기로만 이룰 수 있다"며 "그후에야만 미국은 북한과 대화에 나설 준비를 하게 될 것"이라고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지난 5월 16일에는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다시 "우리는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북한이 모든 핵 프로세스와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때까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미국의 정책 담당자들도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북한과의 대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판단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는 이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즉, 북한의 비핵화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이 비논리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북한 요구는 '훈련 중단'...문  특보 '훈련 축소'와는 달라

비판론자들 중에는 문 특보가 북한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리수용 외무상 등 북한측이 '핵실험 중단'의 반대급부로 '한미군사 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반면, 문 특보는 '훈련 축소'를 말하고 있어 차이가 크다.

문 특보의 발언에 대해 국내 언론은 미국의 몇몇 연구소의 전문가들의 발언을 전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미국 정부의 공식 발언은 질문에 대해 답하는 수동적인 수준이다. 에드워즈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이 "우린 이런 시각이 문 특보의 개인적 견해로, 한국 정부의 공식적 정책을 반영한 게 아닐 것"이라고 말한 정도다.

미국이 불쾌감을 절제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으나, 주한미대사관이 그리고 미국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4월 방송기자클럽 발언이나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한 '6.15선언 17주년 기념식'발언을 모르고 있을리는 만무하다.

문 특보의 발언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두 가지다. 다수는 그의 발언 내용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들이다. 소수는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처럼 "한미정상회담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미국에서 중대 발언을 한 것은 시기와 장소에 있어서 부적절했지만, 내용은 옳다"는 쪽이다.

미국에 이익이면 그대로 한국에게도 이익인가

둘 다 적절치 않다. 미국에 이익이면 그대로 우리에게도 이익인가, 우리는 미국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되는 것이고, 미국과는 불협화음이 나면 안 되는 것인가. 미국과의 갈등 자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이같은 시각은 '종미'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동맹이라고 해도 국가간 갈등과 마찰은 필연적이다.

"시점이 문제"라는 시각도 '문제'다. 문정인 특보는 한국에는 드문 '국제 마당발'로 인정받는다. 한국 국제정치학자 중 가장 저명한 인물이고, 미국에서도 그렇다. 그를 활용해서 문재인 정부가 대북정책을 구사할 공간과 선택지를 최대한 확장할 필요가 있다. 때에 따라서는 '배드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청와대의 '꼬리 끊기'는 과도하다. 트럼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목전이라는 점에서 문 특보의 발언이 부담스러울 수는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는 조율되지 않은 학자 개인의 의견'정도가 아니라, "한미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엄중 경고'했다고 공개하기까지 했다.

이같은 '과잉 친절'이 비판과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까. 국내적으로는 '노무현 2기, 아마추어 문재인'이라는 프레임을 만들려는 의도를 충족시켜 줄 뿐이다. 대외적으로는 문 특보의 '예고탄'을 부정함으로써, 6월말 한미 정상회담은 물론 그 이후 대북 정책을 구사할 공간을 스스로 좁히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게 더 큰 문제다.


태그:#문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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