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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목 선생의 옥중 서간집 '붉은 담 안에서 전한 사연'의 표지
 이목 선생의 옥중 서간집 '붉은 담 안에서 전한 사연'의 표지
ⓒ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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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그리는 심정을 무엇으로 표현하겠소마는, 당신을 보고파 하는 마음이 나의 하나뿐인 기쁨이자 단 하나뿐인 괴로움인지도 모르지요. 나의 가슴에 당신을 위한 사랑이 충만하고 나의 세포 하나하나에 당신의 환영이 박혀 있을 때 나는 이 땅 위의 천국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 죽어서 육신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천당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당신 가운데서 나의 생명을 찾고 나 가운데 당신의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이 땅에서 천국을 찾고 싶습니다.

여보! 나는 진정 하늘나라를, 나의 낙원을, 나의 천당을 당신 가운데서 찾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당신은 나를 비춰 주는 단 하나의 태양이외다. 만물의 근원이 태양에 있듯이 내 생명은 당신에게서 나와서 당신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들이 내 육신을 열 겹 스무 겹 철문으로 격리시킨다 하더라도 마음대로 허공을 넘나드는 우리들 사랑의 감정은 가둘 수 없는 모양이지요. 내 조국에 대한 나의 사랑, 그리운 당신에게 가는 나의 사랑은 오히려 강해지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흡사 연애편지의 한 토막 같은 이 글은 1960년 4월 혁명 후 조직되었던 한국교원노동조합 전국 사무국장의 이목 선생이 쓴 옥중 서간이다. 이듬해 61년 박정희의 5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그를 비롯한 교원노동조합 간부들은 체포되어 감옥에서 수년의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이목선생 추모식 플래카드 전교조 대구지부 교사들이 이목 선생 묘소 앞에서 플래카드를 걸고 있다.
▲ 이목선생 추모식 플래카드 전교조 대구지부 교사들이 이목 선생 묘소 앞에서 플래카드를 걸고 있다.
ⓒ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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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은 이목 선생이 돌아가신 지 2주기를 맞이한 날이었다. 전교조 대구지부 교사들과 퇴직 조합원 모임 '참벗회' 교사 20명은 경북 의성 산운리에 있는 이목 선생의 묘소를 찾아 추모식을 가졌다. 이틀 전인 15일에는 지부 강당에서 이영희 대구지부 자문위원을 모시고 '4.19교원노동조합과 전교조 결성의 역사적 의의'란 제목으로 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목 선생 2주기 추도식 경북 의성군 산운리에서 이목선생 추도식을 하고 있는 전교조 대구지부 교사들과 참벗회 퇴직 교사들
▲ 이목 선생 2주기 추도식 경북 의성군 산운리에서 이목선생 추도식을 하고 있는 전교조 대구지부 교사들과 참벗회 퇴직 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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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4.19 때 힘들었던 걸 바탕으로 조언도 해주시고 격려도 해주시고...... 1989년 전교조가 조직되어 이듬해 천 몇 백 조합원 교사들이 해직될 때 가슴아파하며 눈물을 글썽이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나도 나이가 들면 저런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당시 나는 교육 운동에 대해 하나도 몰랐습니다. 이목 선생을 보면서 선생님의 가르침과 모습이 제게 큰 바위와 산과 나무와 같았습니다."

참벗회 김용수 회장은 추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교육은 민족과 국가의 영원한 발전을 위하여 이루어져야 하고,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하며, 어떤 정파의 예속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원도 생활인이다. 성직인이 아닌 생활인이다. 짓밟힌 권리를 찾아야 하고 우리들 스스로 권익을 보호하여야 한다. 입이 있어도 말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했던 지난날의 욕된 생활을 박차고 다시는 제자들에게 죄짓지 않아야 한다. 정의와 인도를 위해서는 우리들 스스로가 앞장서 나아가야 한다는 울분의 폭발이다.

드디어 5월 7일! 단체명은 현행법상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교원노동조합으로 수백 명의 동지들이 규합했다. 우리들 스스로의 단체! 우리들을 위한 단체! 학생과 민주주의를 위한 단체! 진실 밑에서 솟아오르는 민주주의적 세력 규합! 독재자가 항상 이단시하는 국민주권 수호의 교두보가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경북사대부고에 재직하던 이목 선생이 학교 교우지에 기고한 글이다. 57년의 성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글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일까?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전교조가 교직원 노동조합의 효시라고 알고 있다. 30년 전인 1960년의 한국교원노동조합이 바로 전교조의 전신이다.

이목 선생의 추도시 배창환 시인이 쓴 추도시를 전교조 대구지부 소속의 교사가 낭독하고 있는 모습
▲ 이목 선생의 추도시 배창환 시인이 쓴 추도시를 전교조 대구지부 소속의 교사가 낭독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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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세대들은 재미와 쾌락을 추구하지요. 이목 선생이 1960년에 교원노동조합을 만들고 다음 해 5월 군사 정변에 의해 끌려갈 때까지 1년간 치열하게 활동한 것, 어쩌면 젊은 세대들에겐 재미없고 골치 아픈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목 선생의 이야기가 젊은 세대들에게 다시 부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대구에서 가장 먼저 4.19 교원노동조합이 조직됩니다. 전국으로 번져 나가 총연합회가 만들어져서 이목 선생이 사무국장을 맡으셨지요. 주중에는 근무하시는 학교에서 수업을 한 시간도 안 빼먹고 다 하시고 주말엔 서울에 가셔서 사무국장 일을 보셨다고 해요. 지금처럼 빨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서울까지 근 10시간 가까이 걸렸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하셨는지 모르겠어요. 이목 선생님을 모시고 다닐 때 그게 하도 궁금해서 몇 번씩이나 여쭤봤어요. 당시에 대구 경북의 조합원이 8000명이나 됐어요. 전국 평균의 몇 배였지요. 그때는 대구가 활화산의 중심이었고 그 선봉에 이목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대구지부 손호만 지부장의 말씀이다.

'붉은 담 안에서 전한 사연'은 이목 선생의 바통을 이어받은 전교조 대구지부의 후배들이 이목 선생의 편지를 정리하여 펴낸 책이다. 아내와 어린 자식들, 그리고 이 땅의 교육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행간을 적시고 있다. 그들을 향한 세심한 애정의 표현은 지금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정하고 열정적이다.

이목 선생이 사셨던 마을 이목 선생이 사셨던 경북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의 산운 이씨 동족 마을
▲ 이목 선생이 사셨던 마을 이목 선생이 사셨던 경북 의성군 금성면 산운리의 산운 이씨 동족 마을
ⓒ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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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관리도 잘 하셔서 구순이 넘어도 정정하게 사신 편이지요. 근데 사모님이 돌아가시고는 충격이 아주 크셨던 것 같아요. 사모님 장례식에 가 뵈었을 때 너무 상심하셔서 차마 뵙기가 송구할 정도더라구요. 아니나 다를까 두 달 만에 따라가신 거예요. 지금 묘지도 사모님 합장으로 했지요."

이목 선생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전 경북지부장 이영희 선생님이 회고하신 말씀이다. 접시꽃이 피는 유월에 이목 선생은 접시꽃 당신을 따라가셨다.

1960년 당시 시가지에 무수히 걸렸다던 플래카드.

"교원노조는 민주학원의 보루"
"정부는 교원노조의 합법적 단결을 시인하라!"

57년의 세월이 흐른 2017년에도 이 구호는 여전히 현재적이다.

이목선생 추모식 전교조 대구지부 조합원과 참벗회 소속 퇴직 교사들의 헌화
▲ 이목선생 추모식 전교조 대구지부 조합원과 참벗회 소속 퇴직 교사들의 헌화
ⓒ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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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목 선생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고자 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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