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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신항 여행의 종착지인 목포신항에 학교 구성원 전체가 모였다. 미리 가서 이틀 정도 자원봉사를 한 조도 있었고, 당일날 가서 짧은 시간 여러 부스에서 진행하는 활동들에 참여하고, 세월호의 실물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었다.
▲ 목포신항 여행의 종착지인 목포신항에 학교 구성원 전체가 모였다. 미리 가서 이틀 정도 자원봉사를 한 조도 있었고, 당일날 가서 짧은 시간 여러 부스에서 진행하는 활동들에 참여하고, 세월호의 실물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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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작은학교는 2001년 학교를 시작한 이래로 매해 봄마다 '세상보기'라는 학교밖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에는 3~4박 정도의 기간 동안 봉사활동, 지리산 종주, 지역문화답사, 강따라 걷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덕분에 나도 두 번이나 천왕봉의 새벽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지리산 둘레길이 완성되던 2012년, 둘레길 완주를 시작으로 2주간의 일정으로 늘게 되었다. 방학 중 교사회의에서 정해진 나름 과감한 이 변화에 대한 아이들의 첫 반응은 '3~4박도 힘든데, 2주라니? 말도 안 돼!'가 다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힘들겠지만 함께 한 번 해보자'며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이렇게 시작된 2주간의 세상보기 여정은 올해까지 6년간 이어지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 완주, '평화로운 에너지'라는 전체 주제를 가지고 밀양까지 걷기, '동학혁명' 등 각 조별 주제와 길을 정하고 걷기, 조별 자유여행 등 다양한 방식의 길 걷기를 해오고 있다.

기상시간 보통 식사당번은 6시 30분, 전체는 7시에 일어나기로 했지만, 조금은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다가 일어난다.
▲ 기상시간 보통 식사당번은 6시 30분, 전체는 7시에 일어나기로 했지만, 조금은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다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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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펠, 버너, 조에 따라서는 텐트까지 서로 나누어서 짐을 지고, 하루에 15~25km 정도의 길을 걷는다. 식사당번을 정해 하루 세끼를 해먹고, 씻는 공간이 마땅치 않아 제대로 씻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우리는 사서 고생하며 세상을 본다.

6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2주간의 길고 고된 여행은 짧은 여행보다 훨씬 더 큰 성취감과 자신감을 아이들에게 안겨주는 것 같다. 다녀온 소감을 얘기할 때도 생각보다는 안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좀 의아하기도 하다. 도대체 어느 만큼 각오를 다졌기에?

지난 4월 중순부터 진행된 올해 세상보기는 '희망의 길찾기'라는 추상적인 주제를 가지고 걷기로 결정되었다. '헬조선' 등의 유행어에서 감지할 수 있듯 절망이 하나의 시대정신이 된 듯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지난 몇 달간 우리 사회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어 오기도 했고,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들의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뼈 한조각이라도'라는 아픈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곳, 목포신항을 여행의 종착지로 정했다. 삶이 무너져내리는 절망과 아픔의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는 분들에게 조그만 손길 하나 마음 하나 보탤 수 있기를 바라면서. 

싸가지없조의 세상보기 그림 우리조원 중 한명인 지향이가 자기 노트에 그린 그림. 우리조의 이름, 사람들 얼굴, 저녁 휴식시간 우리들을 즐겁해해주던 화투장, 매일 잘 싸던 똥, 목포신항에 와 있을 세월호, 길을 걸으며 보았던 물새 등을 그렸다.
▲ 싸가지없조의 세상보기 그림 우리조원 중 한명인 지향이가 자기 노트에 그린 그림. 우리조의 이름, 사람들 얼굴, 저녁 휴식시간 우리들을 즐겁해해주던 화투장, 매일 잘 싸던 똥, 목포신항에 와 있을 세월호, 길을 걸으며 보았던 물새 등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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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9명과 교사 2명으로 구성된 우리 조의 이름은 '싸가지없조'였다. 답 없고, 겁 없고, 외톨이 없고, 내일이 없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준비물, 조이름, 주제, 규칙, 길 등을 정하는 사전 모임에서 이러저런 이야기가 나오다가 길을 미리 정하지 말고 걷자는 의견이 나왔다. 순간 좀 걱정이 되었지만, '다수 의견이 그렇다면 한번 시도해보는 거지 뭐'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였다. 가능한 만큼 숙소도 미리 섭외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현장에서 숙소를 구하는 것에 익숙한 친구들이 현장에서 구하면 된다며 자신있어 했다. '그러면 너네만 믿을게'라며 여전히 약간은 있는 불안감을 신뢰와 대책없음으로 극복(?)해버렸다. 

드디어 우리 조는 실상사에 가서 우리의 출발을 고하는 삼배를 올리고, 첫날 지리산을 올랐다. 이렇게 우리의 세상보기는 시작되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힘듦을 견디며 걷는 시간도 있고, 혼자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진정한 나만의 시간도 있고, 힘든 길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수다와 간식 시간도 있다. 심신이 힘들고 날카로워진 상태에서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그런 문제와 대면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계획 없는 자유여행'에 불안감과 기대감으로 들떠있던 초반 3~4일이 지나가면서 조원들이 조금씩 지쳐가는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힘들어서 오늘은 그만 걷고 싶다', '지금 그만 걷기에는 너무 조금 걸었다. 조금 더 걷자' 등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논쟁이 길 위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걷는 것도 힘든데,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의논해야 돼?'라는 피로와 짜증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러다 넷째날 밤, 우리가 왜 계획 없이 걷자고 했었는지, 각자 어떤 상상과 바람을 갖고 있었는지 수다를 떨게 되었다. 하루하루 길을 책임지는 길잡이 정하기, 길잡이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하기, 걸으면서 만나는 주민 분들에게 최대한 많이 묻고 정보를 얻기 등을 결정했다. 우리가 계획 없이 길을 걷기로 한 것은, 우리끼리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정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길에서 만나는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여쭤보면서 걷겠다는 의미임을 공유했다.

나와 2주를 함께 했던 양말.  내가 신었던 양말이 조금 두꺼워서 신발이 꽉 꼈는지 첫날 숙소에 도착하니 왼쪽 세 번째 발톱이 시꺼멓게 멍이 들어있었다. 얇은 양말 하나를 빌려서 2주 동안 거의 이것만 신고 걸었더니 마지막날 이런 양말이 되어버렸다. 안녕~!
▲ 나와 2주를 함께 했던 양말. 내가 신었던 양말이 조금 두꺼워서 신발이 꽉 꼈는지 첫날 숙소에 도착하니 왼쪽 세 번째 발톱이 시꺼멓게 멍이 들어있었다. 얇은 양말 하나를 빌려서 2주 동안 거의 이것만 신고 걸었더니 마지막날 이런 양말이 되어버렸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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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우리와 인연이 있는 순천의 학교와 졸업생 부모님 민박집의 경우만 하루 먼저 섭외를 했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아이들이 마을회관 등을 섭외했다. 정 구하지 못할 경우 노숙을 할 수도 있다고 내심 결의를 다지고 있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저기 이장님들께 전화를 돌리며 숙소를 구해주시고 숙소로 정해진 마을회관까지 경찰차로 안내해주시던 순천의 경찰분,

밭에서 일하시다가 지나가는 우리에게 어느 쪽으로 가냐고 물으시더니 방향이 같았으면 자신의 집에서 재워줬을 텐데 라며 웃으시던 아주머니,

벌교에서 장을 보던 우리에게 말을 건네시며 자신이 살고 계신 고흥의 마을회관을 숙소로 내주시겠다며 차로 데려다주시던 목사님,

목사님의 소개로 우리를 기꺼이 맞아주시고, 자신이 하실 마을 안내 방송을 우리들에게 하라시면서 즉석 방송 오디션을 진행하시던 이장님,

고추 모종심기 품앗이를 하시던 동네 어르신들이 숙소를 구하는 아이들을 보시고는 밭에서 즉석 회의를 하시며 "나는 좋아!"라며 의견을 내시던 생생한 마을회의 풍경,

어른들의 넉넉한 친절과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는 아이들의 맑은 에너지,

숙소 구하기를 처음 해보는 1학년들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드디어 성공하고는 터질 듯한 기운으로 달려오던 모습....

낯선 이들에게 작은 관심을 표하기도 무척이나 어색해진 우리 사회에서,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신기하고 고마운 인연들을 길 위에서 많이도 만났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애써 '희망'을 찾은 것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단어가 따스한 온기와 함께 내 맘 속으로 쑥하고 밀려 들어왔다. 희망은 돈과 물질의 풍요로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따스한 그 무엇에 있음을 생생하게 느낀다. 그래서 사람만이 희망이라 했던가? 

혼자라면 엄두도 내지 않았을 200km가 넘는 여정을 함께 걸으며, 무거운 공용짐을 서로 미루지 않고 각자 체력에 맞게 자연스럽게 나누던 아이들의 모습, 처마밑에서 힘들게 밥을 하면서도 불평없이 척척 해내던 광경들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것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쌓인 자신감과 지혜 덕택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얘들아~! 많이 고마웠다는 말, 안했던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전한다. 고맙고 멋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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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을 지리산 자락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살았다. 지금은 멀리 한라산과 가까이 파란 바다를 보며 지낸다. 아직은 조금 비현실적인 듯한 풍경들 속에서 이사와 정리와 청소로 이어지는 현실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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