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상암동 CJ E&M 사옥 앞에서 고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씨와 시민단체 대표들이 CJ E&M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 4월 24일 서울 상암동 CJ E&M 사옥 앞에서 고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씨와 시민단체 대표들이 CJ E&M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김윤정


중학교 3학년 여름, 우연히 접했던 KBS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속 PD와 작가, 배우 그리고 모든 제작진의 삶은 찬란했다. 작품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뭉친 그들의 삶에 감동한 청소년기의 나는 드라마 PD가 되어 좋아하는 것을 평생 만들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8년, 어느덧 이번 여름 대학교 졸업을 앞둔 취준생이 되었고, 드라마 PD가 되고 싶다는 꿈 하나로 지금까지 공부했다. 그래서 8개월 전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이었던 고 이한빛 PD의 사망은 개인적으로 혼란스럽고 힘든 일이었다. 그동안 선배들께 드라마 PD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돌아오는 건 '버티기 힘들다'라는 우려였다. 대학 시절 동안 그 두려움 탓에 꿈을 포기하는 선배와 동기, 후배들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고 이한빛 조연출의 죽음은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했다. 드라마 제작 환경이 한 생명을 앗아갈 만큼 어렵다고 하는데, 내가 만약 PD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환경을 버틸 수 있을까 고민됐다.

하지만 환경이 문제이지 내가 문제가 아닌데 내가 꿈을 포기할 이유는 없었다. 한 생명을 앗아갈 만큼 잔인한 사회라면 그 사회를 바꾸면 된다. 학부에서 공부를 계속하면서, 드라마 제작 환경을 개설할 실질적인 방법에 대해 나름의 고민을 이어갔다.

죽음의 원인은 어디에 있나

 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

지난 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에 시민들이 모였다. ⓒ 김윤정


고 이한빛 PD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종영 다음 날, 고 이한빛 PD의 시신이 유서와 함께 발견되었다. 실종된 지 5일째였다. <혼술남녀> 촬영 총 55일간 휴일은 단 이틀, 평균 수면 시간은 4.5시간에 불과했다고 한다. 제작 기간 그는 계약직 스태프들을 해고해야 했다는 얘기도 돈다. 이에 유가족은 지난 8개월간 고인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왔다.

CJ E&M(tvN) 측의 초기 대응은 실망스러웠다. 드라마 시장은 '원래' 힘든 환경이며 고인의 '나약함'이 죽음의 원인이라고 일축했다. 이해할 수 없다. 첫째, 처음부터 드라마 제작 환경이 한 생명의 꿈을 짓밟는 현장은 아니었을 것이며, 둘째, 설령 현재 드라마 제작 환경이 열악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한 생명을 앗아가는 명분이 될 수 없다. 대중은 tvN을 그리고 CJ를 비난했다. '즐거움은 끝이 없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던 tvN은 진정으로 즐거움을 좇는 방송사가 아니었다. 그 실상은 억압과 차별이 일상화된 공간이었다.

그리고 지난 13일, CJ E&M 측은 고인의 죽음이 개인의 책임이 아닌 제작 환경과 일 하는 방식의 문제임을 인정하고, 유가족과 대중 앞에 사과했다. 표준 근로계약서 작성을 비롯하여 제작진의 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조처를 할 것도 약속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할까. 그들이 약속하듯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근로자들의 처우가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까?

tvN은 지상파 방송사와는 달리 편성에 따른 시청 점유율을 높일 수 없으므로 오로지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 따라서 외주 제작 계약 형태도, 방송 자체성 외주 제작에 해당하는 '수익 정액 보전 형태'를 선호한다. 외주제작사의 기획 역시 2015년 특수 관계 회사에 대한 제한이 사라지면서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 측에 대부분 맡기고 있다. 이때 저작권은 tvN 측에서 갖는다. 제작비용은 100% tvN이 부담한다. 제작 관리 및 리스크 역시 tvN의 몫이다. 궁극적으로 이 부담은 제작 환경 속에서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는 계약직 근로자들 및 스태프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tvN이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이에 따라 추구하는 방식이 결국 그 환경 속의 사람들을 궁지로 몰고 있는 셈이다.

tvN만의 문제가 아니다

 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

지난 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에서 고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씨가 촛불을 들고 있다. ⓒ 김윤정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tvN만이 겪는 게 아니다. 한 지상파의 드라마 PD는 특강에서 "지상파 방송사도 안정적인 제작비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드라마, 예능에서 벌어들인 광고 수익으로 다큐멘터리, 뉴스 등의 예산을 메우고 있다. 지상파도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지상파도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tvN의 전략이 초래한 어려움도 있지만, tvN의 드라마 제작 환경만을 비난할 게 아니라 전반적인 국내 드라마 제작 환경 전체의 문제를 짚어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의 드라마 외주 제작 정책의 가장 큰 쟁점은 첫째,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의 저작권을 둘러싼 갈등 문제, 둘째, 이에 따른 수익 배분 문제이다. 따라서 방영권 계약, 표준 계약, 수익 정액 보전 계약 등 저작권과 수익을 둘러싼 다양한 계약 형태가 존재하고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드라마 제작 환경의 60~70%는 스타 배우와 작가의 수임료로 쓰이고 있다. 과거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배용준의 출연료는 회당 1억5000만 원에 육박했고, 이에 드라마 종영 후 체납 문제를 감당하지 못했던 외주제작사 김종학 프로덕션의 책임 연출자 고 김종학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방송사와 드라마의 저작권 및 수익 배분 문제에 대해서는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제작비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스타 배우 및 작가에 대한 수임료 상한선 규제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형 기획사와 방송사, 제작사는 이 쟁점으로 씨름하고 있고, 이에 따른 제작비 문제를 방송가와 외주제작사 측에서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드라마 제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드라마 제작비 중 특정 비율을 스타 작가 및 배우에게 지급되는 상한선을 설정해 사전 규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일반 경쟁 시장에서 사전 규제를 통해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들을 따져 보아도 스타 작가 및 배우 측에서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행사하고 있는 지배력을 무시할 수 없고, 이에 따른 폐해가 컸으며, 현시점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수임료의 규모를 책정할 수 있다. 그래서 충분히 사전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수입 분배 문제를 조절할 수 있다. 당장 그 비율을 정확하게 산정하기는 어렵지만, 과거 제작비 체납 문제를 일으켰던 사례와 종영된 드라마에 대한 제작비를 포괄적으로 비교 검토할 경우 그 방법론을 분명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더는 방송사만이 제작 환경 속에서 갑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얽혀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모두 공정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거나 규제를 마련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번 여름, 지금까지의 학부 공부를 마치고 나는 드라마 PD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와 또 다른 공부를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내 꿈은 '드라마 PD'였다. 그리고 이제부터의 내 꿈은 '즐거운 제작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드라마 PD'이다. 먼 길이겠지만, 대중에게 제작진 모두가 즐겁게 제작한 콘텐츠를 선물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더 이상 꿈을 좇는 청춘의 좌절은 없어야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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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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