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노래가 수록된 라디오헤드의 3집 앨범 < OK COMPUTER >

본 노래가 수록된 라디오헤드의 3집 앨범 < OK COMPUTER > ⓒ Genius


라디오헤드의 노래에는 항상 무기력함이 깔려있다. 팔세토를 사용해 가늘고 높은 음색인데다 종종 발음을 어물거리는 톰 요크의 보컬 때문에 더욱 그리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노래에는 언제나 세상일과는 한 발짝 떨어져있는 방관자적 태도가 느껴진다. 'Let Down'은 그러한 무기력함의 결정체와도 같은 곡이다. 사실 이 노래가 수록된 3집의 다른 곡들이 워낙 쟁쟁한 노래가 많다보니 그 존재감이 옅어진 감이 있지만 한 번 듣고 나면 절대 이 노래가 다른 노래들에 비해 못하다고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맑게 울리는 기타반주로 시작하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붕 뜨는 기분과 함께 음악 밖의 세상과는 잠시 단절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잠시 꿈을 꾸는 듯 몽롱한 기분이 들 때쯤 들려오는 가사는 연못에 던진 돌처럼 이 반강제적인 몽롱함에 잔잔한 파장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부드러운 멜로디 사이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리고 이내 적응이 되어 또 가만히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곧이어 두 가지의 감정이 전해진다. 바로 무기력함과 단조로움이다. 그 어떤 일에도 흥미 내지는 상관이 없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내뿜는 보컬은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것을 전하고 싶은 걸까, 슬쩍 궁금해진다.

Disappointed people clinging on to bottles

실망감을 안은 사람들은 술병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이 한 문장은 마치 일상에서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좋든 싫든 사회라는 틀 안에서 살아가면서 타인으로부터, 또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받은 상실감에 대한 도피처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마치 술로 힘든 생각을 잊어내려는 취객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을까. 그리고 그 무기력함을 만들어낸 사회는 어린왕자가 만났던 "술 마시는 걸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술꾼이 사는 그 별과 같은 곳이 아닐까.

Let Down

하지만 벌레처럼 바닥에 가라앉아 배회하는 것 이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 무던히 살면서 현상 유지만을 목표로 삼고 살아갈 뿐, 그저 공허함을 잊으려고 술에 취해 바닥을 기어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바닥에 깔린 벌레의 모습이다.

Don't get sentimental

바닥에 깔린 벌레처럼, 껍질이 뭉개져 즙이 흘러나오고, 날개가 경련하면서도 다리는 아직 꿈틀거려도 "감상에 빠지지 말라"며 단언하는 이 말은 끝없이 비관적이며 관조적이며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이들은 왜 이토록 냉정한 것일까. 그것은 아마 그들도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상실감을 느끼는 것을, 그리고 그 상실감이 우리를 좀먹는 것을 그들도 달리 해결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삶을 비관으로 일관하며 고통에 무감각해지지 말라고, 술병에만 매달리면서 고통을 잊으려고 하지 말고 "감상에 빠지지 말라"고 단호하게 다그치는 것뿐.

I am gonna grow wings/You know where you are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 ⓒ Billboard


곧이어 노래는 두 갈래로 나뉘어져 오른쪽과 왼쪽이 서로 다른 가사를 노래한다. 한쪽에서는 언젠간 날개를 피울 거라고, 다른 한쪽에서는 너의 위치를 알라고 각각 말한다. 마치 우리보고 선택하라며 던져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날개를 피울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내 위치에 서서 계속 무감각 속에서 살아갈 것인지. 이제 와서 세상을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도 해볼 것인지, 아니면 가라앉은 상태로 배회할 것인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이제 우리는 노래의 목소리가 단순히 무기력하고 단조롭게만 들리지 않는다. 의미 없는, 하지만 달리 대신할 만한 것도 없는 자기위로에 취한 취객들의 한탄과 푸념을 들으며 함께 공감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한 번 더 깨어나라며 우릴 다그치는 깊이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어찌할 수도 없게 막막하고 무거운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는 담담한 목소리가 들린다. 라디오헤드의 노래에는 무기력함이 깔려있지만, 그 무기력함에는 반드시 예리함이 담겨있다.

노래를 다 듣고 난 후 문득,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상의 공허함을 받아들이고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상실과 공허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들이 두려워 피하려고만 한다면 오히려 더욱 우리를 조여오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깔끔하게 맞서서 감정을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든다면 그 반동을 줄일 수라도 있지 않을까, 아니, 최소한 바닥을 배회하는 벌레처럼 되는 것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분의 피로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음악 라디오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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