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검색
클럽아이콘0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헌법 제33조 제1항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춘투(春鬪)는 매년 봄이면 대규모 노동쟁의가 일어나고는 했던 일본의 노사관계에서 유래된 말이다. 봄마다 노동쟁의가 일어난 이유는 일본 정부의 예산·회계연도와 관련이 깊다. 일본 정부는 4월 1일 예산·회계연도를 시작한다. 대다수의 기업들도 이에 맞춰 회계연를 역시 4월 1일에 시작한다. 4월에 회계연도를 시작하기 위해 3월 말까지는 결산과 차기연도 예산계획의 수립이 끝나야 한다.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 수준과 기타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 역시 2~3월 마무리 되고는 했다.

인건비는 기업 예산 중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다른 항목과는 달리 사측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도 없다. 임금은 사측과 노동자의 협의를 통해 결정된다. 하지만 최대한 예산을 절감하려는 사측과 가급적 임금을 인상시키려는 노동조합의 의사가 일치되기는 쉽지 않다. 원활히 진행되기 어려운 임단협은 회계연도의 마감이 다가오면서 기장관계의 고조로 이어져 결국 노동조합은 파업에 돌입하고는 했다. 이렇게 대부분의 파업이 회계연도 마감시기인 봄에 발생하고는 했다. 이를 봄에 발생하는 쟁의행위라는 뜻에서 춘계투쟁(春季鬪爭)이라 불렀다. 춘계투쟁의 줄임말이 춘투다.

한국 정부의 회계연도는 일본과 달리 1월 1일에 시작한다. 하지만 기업들 대부분은 관례적으로 3월 1일에 회계연도를 시작한다. 그러나 대기업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발전한 한국에서 주요 대기업에서는 4월정도 임단협 요구안을 마련하여 사측에 전달하고 5~6월부터 본격적인 임단협이 진행되고는 했다. 때문에 한국에서 파업은 주로 여름에 발생해왔다. 이를 춘투에 빗대어 여름에 발생하는 임금투쟁이라는 의미로 하투(夏鬪)라 부른다. 하지만 일본의 춘투가 고유명사화 되어 특정시기 집중되는 임금 투쟁을 모두 춘투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노동조합이 거의 매년 파업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은 노동자에게 그들의 노동력에 대한 처분권을 돈(임금)을 주고 구입한다. 모든 거래가 그렇듯 노동력의 처분권에 대한 거래에도 협상이 발생한다. 기업은 깎으려, 노동자는 올리려한다. 하지만 협상에서 노동자는 기업에 비해 매우 열등한 위치에 놓인다. 거대한 기업과 협상하기에 노동자 개인은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다. 때문에 노동자들은 서로 뭉쳐 협상력을 높이고자 한다.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힘을 높였다고 해도 협상을 하려면 상대를 위협할 카드가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카드는 노무(勞務)제공의 거부, 즉 파업이다.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으면 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반면 기업의 카드는 노무수령의 거부다. 노동자가 일한다 해도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이다. 공장 문을 닫아버리는 행위(직장폐쇄)다. 물론 기업에게는 해고라는 강력한 무기도 있다. 하지만 해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생존권 자체를 위협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엄격한 조건과 절차를 갖추도록 제한된다.

파업을 하게 되면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아버리기 때문에 공장은 멈추게 되고 기업은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때문에 노동조합에게 파업은 매우 강력한 카드다. 하지만 공격력이 강한만큼 위험도 크다. 일하지 않으면 돈도 받을 수 없다는 무노동무임금(無勞動無賃金) 원칙에 따라 파업기간 노동자들은 임금을 포기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근본적인 이유인 임금을 포기하면서까지 파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왜 임금을 포기하면서까지 파업을 감행하는 것일까. 이는 파업이 노동조합의 거의 유일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공장을 멈추게 하는 것 말고는 노동조합이 기업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만약 파업을 할 수 없다면 노동조합과 기업 간 협상의 추는 한 없이 기업 쪽으로 기울어 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파업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다. 이에 더해 일하지 않겠다(파업)는 자에게 노동을 강제한다면 이는 강제노동(노예)에 해당한다.

노동자가 기업과 협상하기 위해서는 하나로 뭉쳐야 한다(단결권). 하지만 하나로 뭉쳤다고 해도 기업과의 협상을 개별적으로 해야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때문에 노동자들의 조직, 노동조합이 개별 노동자들을 대표하여 기업과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단체교섭권). 그리고 협상이 결렬된다면 노동자들은 파업과 같은 단체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단체행동권). 헌법이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 즉 노동3권을 규정한 이유다.

그런데 헌법의 노동3권 규정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라는 단서가 붙는다. 이 단서는 1962년 5차 개헌에 의한 6호 헌법에서 도입 되었다. 이전까지 헌법은 "근로자의 단결,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의 자유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고만 규정하고 있었다. 이에 더해 6호 헌법은 노동자의 이익분배균점권도 삭제했다. 이전 헌법에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여 노동자가 기업의 수익 중 일정비율을 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었다. 이처럼 5차 개헌은 노동3권을 근로조건의 향상이라는 범위로 제한시키고 기업의 수익분배에서 노동자를 배제시킴으로써 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축소시켰다.

1962년 5차 개헌에 의한 6호 헌법은 박정희가 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직후 헌법을 다시 만드는 수준으로 개정한 헌법이다. 당시 박정희는 자신에게 권력이 집중 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권한을 최대한 축소시키기 위해 노동3권에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라는 단서를 붙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라는 단서는 현장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 1999년 6월 7일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이었던 진형구는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큰 말실수를 하게 된다. 이는 곧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고 당시 옷로비 사건으로 위기를 맞았던 김대중 정권은 또 다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 실수는 1998년 11월 발생한 조폐공사 파업을 검찰이 유도했다는 것이었다.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를 겪게 된 한국은 산업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정부의 절대적인 영향력 하에 있는 공기업이 구조조정의 선봉에 섰다. 공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한국조폐공사에서는 대규모 인력감축을 포함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단행되었다.

노동조합은 강력히 반발했고 전면적인 파업으로 이어졌다. 한국조폐공사는 직장폐쇄로 대응했다. 그런데 이 시점 당시 대검찰청 공안부장이었던 진형구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었던 한국조폐공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좋지 않은 정보보고가 올라온다. 서울이 시끄럽다. 빨리 직장폐쇄를 풀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라", "위법성 시비가 있는 직장폐쇄를 철회하라. 임금협상과 관련한 파업은 불법이 아니어서 제압이 곤란하므로 공기업체 개혁에 차질이 생긴다.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파업은 불법이니 임금 삭감안을 가지고 노조와 협상하려 하지 말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라. 그러면 노조가 파업을 하겠지만, 이는 불법파업이므로 내가 즉시 공권력을 투입하여 제압하여 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경영상 문제로 해석되어 노동조건의 개선과 관련 없기 때문에 이를 이유로한 파업은 불법파업이 된다. 검찰이 불법파업을 유도하여 노동조합을 탄압하려 한 것이다. 검찰은 즉각 내사를 벌였고 파업유도 사실을 인정했지만 진형구의 단독범행으로 덮으려 했다. 하지만 재판에서는 이보다 축소되어 직장폐쇄를 풀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라는 대화만 사실로 인정되었고 파업유도 발언은 확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05. 4. 15. 선고 2002도3453 판결).

이렇듯 헌법 제33조 제1항에 의해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파업 외 모든 파업은 불법이 되면서 노동조합의 힘은 극도로 약화되었다. 한국조폐공사의 경우와 같이 대규모 인원감축을 수반하는 구조조정은 노동자에게는 일터를 떠나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지만 근로조건과 관련되지 않기 때문에 파업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만약 노동자들이 정부의 노동정책 등 사회구조적 문제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파업을 한다면 이 역시 노동조건 향상과는 무관한 사안으로 해석되어 불법파업이 된다.

기업은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사회 속에서 다양한 사회구성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사회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바꾸기도 한다. 그리고 한국조폐공사의 파업유도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정부의 정책은 기업과 노동자들의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당연히 노동자들도 사회구조가 자신들에게 유리해질 수 있도록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앞서 살펴보았듯, 노동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방법은 파업이다. 하지만 헌법은 노동자들의 노동3권 행사를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경우로 제한시켜 놓고 있어 정부 정책 등에 대한 파업 역시 불가능하다. 노동자들은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권력과 맞서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0만인클럽아이콘

변호사이며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헌법 쉽게 읽기' 등이 있다.더보기

시민기자 가입하기

© 2017 OhmyNews오탈자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