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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 30주년 6.10민주항쟁기념식에서 시민대표가 국민께 드리는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10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 30주년 6.10민주항쟁기념식에서 시민대표가 국민께 드리는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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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당시엔 분위기가 굉장히 삼엄했다. 지금처럼 경찰과 함께 있는 건 상상도 못 했다. 그때가 있어서 지금이 있다."


독재에 대항해 농성을 했던 청년은 중년이 돼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을 찾아 이렇게 말했다. 김아무개(59)씨는 서울광장에서 온 시민들을 보며 "참 좋다"라고 말했다. 내내 서서 행사를 지켜 보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최루탄 맞는 것보다 괜찮다"고 웃었다.

30년 전 6월10일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한 유경석(65)씨는 서울광장을 한 번 슥 둘러보며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유씨는 "넥타이 부대와 많은 시민들이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냈지만 직선제는 정치형태일 뿐 국민의 권리를 담보하지 않았다. 군부정권이 연장되는 우여곡절이 있었다"며 "촛불시위를 거쳐 성숙된 민주정부가 민주항쟁 30주년에 맞춰 들어서게 돼 감격스럽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민주화 동지이기도 한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열망을 잘 받들어 민생을 잘 돌봐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87년 민주항쟁 아빠와 2017 촛불 든 딸의 공개편지
10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 30주년 6.10민주항쟁기념식에서 87년 당시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했던 아버지 김만곤씨와 2017년 촛불을 든 딸 김래은 양국민께 드리는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10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 30주년 6.10민주항쟁기념식에서 87년 당시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했던 아버지 김만곤씨와 2017년 촛불을 든 딸 김래은 양국민께 드리는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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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10시쯤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시 중구 서울광장에 도착하자 '기억과 다짐'을 주제로 '6.10 항쟁 30주년 기념식'이 시작됐다. 87년 당시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했던 아버지 김만곤씨와 2017년 촛불을 든 딸 김래은 양이 무대에 올라 공개편지를 주고 받았다.

아버지 김씨는 "아빠는 네게, 너의 친구들과 언니 오빠들에게 한없이 고맙다. 너희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와줘서 참으로 고맙다"며 "희미해진 엄마·아빠의 눈을 다시 밝혀줘서 너무나 고맙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용기를 이제 다시 갖게 됐다"고 고마워했다.

이에 딸 김래은 양은 "30년 전 아빠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왜 다른 이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지, 아픔을 나눠야 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래은 양은 "우리들의 꿈이 모두 같지는 않겠지만 보듬는 세상을 만들려면 서로 손잡고 지켜야 한다"며 "지금 어른들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가 마음껏 꿈을 꾸고 키워나갈 수 있게 해달라. 가난이, 불행이 우리 꿈을 방해하지 못하게 해달라. 아름다운 꿈에서 우리 함께 살자"고 힘줘 말했다.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행사를 지켜보던 정성태(74)씨는 "세상이 얼마나 좋으냐"고 말했다. "촛불은 미완의 6.10 항쟁을 완성시키라는 국민의 명령"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정씨는 "태극기 부대가 천막을 치고 있던 광장에서 민주주의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지니 감회가 새롭고 좋다"고 말했다.

일반시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정씨는 "87년 당시 서울 신림동에 살았는데 서울대 입구는 늘 매캐한 냄새가 났다"며 "당시엔 벌어먹고 사느라 민주화 운동을 하진 못했지만 마음속에선 늘 민주화를 응원하고 기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렇게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게 돼서 좋다"고 덧붙였다.

서울 광장에서 처음 열린 민주항쟁 기념식..."눈물 흘릴 정도로 좋다"
10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제 30주년 6.10민주항쟁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10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제 30주년 6.10민주항쟁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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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 30주년 6.10 민주항쟁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 30주년 6.10 민주항쟁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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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성균관대학교 새내기였던 아들 한병환씨의 민주화 운동을 쫓아다녔던 어머니 이금환(78)씨는 "기분 좋은 마음으로 왔다"고 밝혔다. 이씨는 "민주화 운동을 하며 아들이 수배, 구속됐을 때는 아들이 미웠지만 민주화가 된 이후엔 마음이 풀렸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화 운동도 했고 민주주의를 이해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 전과는 분명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송경평(60)씨는 이날 행사를 보기 위해 인천에서 왔다. 87년 당시 경찰이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탁 하고 책상을 치니 억하고 엎어졌다"고 한 것에 분노해 일어난 '3.3 투쟁'에 참여한 송씨는 지금의 청계광장쪽에서 잡혀 4개월 징역을 살았다. 송씨는 "감옥에서 나오니 6.29 선언이 나와 있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과 시민사회가 이렇게 함께 합동추모식을 여는 게 8~9년 만인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는 국회 여야 대표와 정관계 인사, 민주화운동 단체 회원 등 시민 5000여 명이 참석했다.

대통령이 참석함에도 보안은 이전보다 약해졌다. 서울광장으로 들어오는 4개 입구에서 경찰이 소지품 검사를 했으나 신분증을 확인하진 않았다. 무대 앞 쪽엔 사전에 등록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으나 뒤쪽은 소지품 검사만 통과하면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다. 한 시민은 "비표가 없어도 들어갈 수 있다"며 좋아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예전에는 보안검사가 더 심했다. 3.1절 행사나 8.15 행사 때 더 타이트하게 했다"며 "예전엔 6.10항쟁 기념식에 미리 신청한 사람만 참석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신청 안 한 일반인도 참석할 수 있게 했다"고 전했다.

이날 광장에 온 프로레슬러 출신 김남훈 스포츠 해설가도 "확실히 분위기가 예전과는 다르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주의는 고비용 구조라고 생각한다"며 "비용을 내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한열 열사와 같은 희생과 노고도 필요하지만 평범한 시민도 (민주주의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30년 전 항쟁이 있어서 누리는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친구와 함께 온 고등학생 한준아(17)씨는 "꼭 오고 싶었다"며 "민주주의를 누리게 해준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민주화 열사들에게 마음을 전했다.


태그:#서울광장, #6.15, #이한열, #문재인,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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