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축구계의 '전설' 디디에 드로그바는 '신'으로 불린다.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 통산 254경기 출전 104득점을 기록했고, 득점왕을 두 번이나 차지했다. EPL 우승 4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4회, 리그컵 우승 3회 등 수많은 우승 트로피도 수집했다. 위대한 업적이다.

그러나 그가 '신'으로 불리는 데는 축구 실력 외적인 이유도 있다. 조국 코트디부아르의 사상 첫 월드컵 진출을 이끌었던 지난 2006년, 드로그바는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수단과 경기 이후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서는 카메라를 응시한 후 무릎을 꿇고, "제발 전쟁을 멈춰 달라", "단 일주일 동안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춥시다"라고 외쳤다.

기적이 일어났다. 코트디부아르 건국 최초로 내전이 한 달간 멈췄다. 2007년에는 10년 이상 지속된 내전이 종식됐다. 드로그바의 간절한 외침이 국민을 울렸고, 정부군과 반군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후 드로그바는 재단을 설립해 의약품과 식음료, 축구공과 유소년 시설 등의 지원을 시작했고, 개인 재산 60억 원을 기부하며 코트디부아르 종합병원 건설을 돕기도 하는 등 축구를 통해 다른 걸 할 줄도 아는 선수의 꿈을 이루어나가고 있다.  

'기적' 꿈꾸는 베네수엘라, 그들이 전하는 희망의 노래

이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가 있다. 'FIFA(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결승 진출에 성공한 베네수엘라를 바라보며, 드로그바가 일궈낸 기적이 다시 한 번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는 낯선 팀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칠레 등 축구 강호가 득실한 남미지역에 속해서인지 월드컵 본선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남미지역 예선에서도 1승 3무 10패를 기록하며, 일찌감치 본선 무대 진출이 좌절됐다. U-20 월드컵 본선 무대도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승 진출이란 신화를 써냈다. 독일(2-0), 바누아투(7-0), 멕시코(1-0)와 한 조에 속해 당당히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에이스' 아달베르토 페냐란다를 제외하면, 유럽 무대를 누비는 선수가 없어 기대가 적었지만, 놀라운 경기력(10득점·무실점)을 보여주며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기세는 이어졌다. 아시아 예선을 1위로 통과한 일본을 1-0으로 물리치며 8강 진출에 성공했고, 만만찮은 전력을 자랑한 미국까지 2-1로 눌렀다. 준결승에서는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힌 남미 예선 1위 우루과이를 페널티킥 접전 끝에 이겼다. 16강과 8강, 4강전 모두 연장 120분 승부를 벌였음에도 그들은 승리를 따냈다.

베네수엘라 청년들은 심장이 터질 듯이 힘들고, 더 이상 뛸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버텨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절망적인 자국 내 상황이었다. 베네수엘라는 수출의 95%를 차지하는 유가가 급격히 하락하며 국민 삶이 피폐해졌고, 물가 상승률이 올해는 720%, 내년에는 2,000%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생필품을 얻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고, 약탈도 일어난다. 지난 3월부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고, 군경과 시위대가 충돌해 67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도 1,000여 명을 넘어서고 있다.

그래서 참고 뛰었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개최국인 한국과 프랑스, 잉글랜드 등에 비해 관심도 훨씬 적었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오로지 축구와 승리를 통해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뿐이었다.

베네수엘라에 기적의 씨앗이 뿌려지길 기대하며...

베네수엘라는 최근 10일간 3경기를 치렀고, 모두 120분 연장 혈투였다. 반면, 결승 상대인 잉글랜드는 연장 승부를 치른 적이 없다. 16강부터 준결승전까지 모두 정규시간 내에 승부를 봤다. 

베네수엘라는 체력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마지막까지 투혼을 불살라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지금까지 상대해온 팀들보다 훨씬 강하다. 조별리그를 포함해 6경기를 치르는 동안 11골을 넣었고, 3실점뿐이 내주지 않았다. 3실점 중에서도 2골은 자책골과 페널티킥 실점이었다. 공격과 수비, 중원, 심지어 골키퍼까지 탄탄하다. 약점을 찾기 어렵다.

개인 기량도 뛰어나다. '주포' 도미닉 솔란케는 준결승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진가를 드러냈다. 최근 리버풀로 이적한 그의 몸값은 784만 파운드(약 106억 원)로 베네수엘라 대표팀 21명의 몸값(718만 파운드·약 102억 원)을 모두 합한 것보다 비싸다. 솔란케와 함께 공격을 이끄는 아데몰라 루크먼도 화려한 개인기와 스피드를 뽐내며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좌우측 풀백 존조 케니와 카일 워커-피터스는 이번 대회 최고의 선수로 손색없다. '캡틴' 루이스 쿡 역시 깔끔한 경기 조율과 창의적인 패스 능력을 뽐내며 잉글랜드의 결승 진출에 앞장섰다. '에이스' 페냐란다를 제외하면, 대부분 봉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자국 리그 소속인 베네수엘라와는 큰 차이가 있다. 몸값은 물론이고, 개인 기량도 말이다.

하지만 대회 시작 전부터 결승에 진출한 현재까지, 베네수엘라는 인간의 예측을 매번 뛰어넘었다. 어디에서 축구를 배웠고, 성장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승리에 대한 '간절함'을 잃지 않는다면,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도 '기적'을 써낼 수 있다고 믿는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8일 우루과이와 준결승전에서 0-1로 끌려가다 후반 추가 시간에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다. 17세 소년 사무엘 소사가 그 주인공이었다. 소사 덕분에 베네수엘라는 결승 진출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준결승 경기가 열리기 바로 전날, 베네수엘라에서는 네오마르 란데르라는 17세 소년이 시위 도중 목숨을 잃었다. 그 소년은 기적 같은 승리를 바라지도 않았고, 꿈같은 삶을 꿈꾸지도 않았다. 그저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과 군경의 탄압이 이루어지지 않는 정상적인 국가에서 살아가길 원했다.

"오늘의 17세 소년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지만, 어제의 17세 소년은 목숨을 잃었다", "이제는 무기를 내려놓을 때다", 베네수엘라 라파엘 두다멜 감독은 역사상 최초로 FIFA 주관 대회 결승에 오른 날 벅찬 소감 대신 이러한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래서 드로그바가 떠올랐다. 그의 한 마디가 절망을 걷어내고 희망을 불러왔듯이, 기적의 씨앗이 베네수엘라에도 뿌려지길 기원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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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 드로그바 베네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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