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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언론노조 MBC본부 집행부 이취임식과 ‘MBC방송정상화를 위한 전국조합원 결의대회’가 열렸다.
▲ MBC방송정상화를 위한 전국조합원 결의대회 지난 2월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에서 언론노조 MBC본부 집행부 이취임식과 ‘MBC방송정상화를 위한 전국조합원 결의대회’가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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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를 노영방송 구조로 만들어 노조 저널리즘을 실현하겠다는 저의가 담겨 있다.(중략) 회사는 '홍위병'을 연상케 하는 '바람잡이 성명전'으로 시작된 언론노조 MBC 본부의 방송 장악과 노영방송 회귀 음모에 대해 단호히 대처할 것이다."

격세지감이라고 해야 옳을지, 상전벽해라고 표현해야 할지 어리둥절하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문화방송(사장 김장겸, 아래 MBC) 회사 측과 노조 측의 입장이 뒤바뀐 듯하다. 특히 회사 측이 지난 5일 내놓은 보도자료는 이명박-박근혜정권 때 노조 측이 권력의 방송장악 정책에 맞서 일관되게 주장했던 표현과 어찌된 영문인지 비슷하다.

보도자료 제목도 '언론노조는 청와대 지침으로 방송 장악에 나선 것인가?'로 그동안 언론노조가 주로 사용해 왔던 표현이다. 게다가 이날 보도자료에 명시된 '청와대 지침', '방송장악', '홍위병' 등의 표현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공영방송 낙하산 사장 투하에 이은 방송장악 정책을 통해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무렵 방송사 노조측이 강력히 저항하며 썼던 표현들이다.

그런데 회사 측이 이러한 표현을 다시 끄집어내어 사용한 이유는 뭘까. 심지어 '노조 저널리즘'과 '노영방송'이란 극한 표현과 음모론까지 제기할 정도니 다급했던 모양이다. 궁지에 몰려 더는 나아갈 길이 없어지자 상대방이 사용했던 전략일지라도 무작정 사용하며 위기를 돌파해 보려는 최후의 꼼수로도 읽혀진다.

MBC 회사 측 보도자료 통해 노조비난 '적반하장'

그러지 않고서야 사측이 성명을 내고 "민주노총 산하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위원장 김연국. 아래 MBC 노조)의 회사 경영진 교체 주장이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지침'"이라며 강력히 반박하고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 두 정권(이명박-박근혜)을 지나온 사이에 방송사 측이 구성원들, 특히 노조에 행했던 무지막지한 행태들을 들춰보면 '적반하장도 유분수'란 비난을 들어 마땅하다.

사측은 보도자료에서 "언론노조 소속 조합원들은 아직도 '공채'를 벼슬로 생각하는 모양이다"며 "갑자기 회사와 경영진 비방에 서명하는 경력 사원에 한해 벼슬인 양 여기며 '공채 기수'에 편입시켰다"고 비난했다. 회사 측이 외부로 나가는 자료를 통해 공채 직원들을 공개적으로 헐뜯는 모양새가 이례적이다.

더구나 전파의 주인은 엄연한 국민임을 너무 잘 알고 있을 공영방송사라는 점에서 의외다. 그러나 그동안 권력에 기대 편파방송을 만들고 내부적 갈등과 반목을 방치했다는 지적을 받는 사측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다.

우선 사측은 노조를 비방하기 위해 자료를 낸 듯하다. 곳곳에서 노조에 직격탄을 가했다. 사측은 "언론노조 MBC 본부의 경영진 교체 주장과 방송 장악을 위한 파업, 공정방송 구호 등은 정권에 따라 180도 달랐다"면서 "특정 정권에서는 단 한 차례도 경영진 교체 주장이 없었지만, 다른 정권에서는 교체 주장을 밥 먹듯이 해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언론노조의 정치 편향적 이중성은 평소에는 입으로만 '공정 방송'을 외치며 실제로는 '불공정 편파 방송' 요구로 연결돼왔다"며 "언론노조의 경영진 교체 주장은 MBC를 노영방송 구조로 만들어 노조 저널리즘을 실현하겠다는 저의가 담겨 있다"고 힐난했다.

한발 더 나아가 사측은 "MBC를 노조 강령인 '진보정당 선전'과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전진 기지로 삼겠다는 저의"라면서 "'홍위병'을 연상케 하는 '바람잡이 성명전'으로 시작된 언론노조 MBC 본부의 방송 장악과 노영방송 회귀 음모에 대해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MBC 내부 적폐 상존... 구성원 적대시 풍조 '만연' 원인

이 보도자료를 읽는 내내 편치 않은 이유는 두 가지 이유다. 첫째, 아직도 MBC 회사 측은 공영방송의 주인이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희소성을 지닌 공공재(전파)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이 위임한 정부에 의해 사측이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공공성에 최우선을 두고 엄정하게 관리해야 할 책무를 지닌 사측이 마치 주인인양 방송을 쥐락펴락 운영하며 구성원들을 마음대로 해고시키거나 통제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지금은 시민들이 들불처럼 촛불을 들고 일어나 세상이 바뀌었다.

또 다른 이유는 방송사의 구성원인 노조를 적대시하는 사측의 비민주적 발상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사는 우리나라 언론을 대표하는 언론사이다. 이러한 언론사의 독립성과 자율성, 공정성은 곧 국내 언론의 자유지수와 직결되는 문제다.

그럼에도 언론사 내부의 민주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어떻게 공정성과 자율성을 담보할 수 있겠는가. 더 나아가 언론이 권력에 맞서 과감한 비판과 감시기능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겠는가.

오죽하면 지난 3월 21일 MBC <100분토론> 민주당 대선주자 토론회에서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는 "박용찬 MBC 논설실장 앞에서 말씀드리기 미안하지만, MBC가 심하게 무너졌다고 생각한다"고 대놓고 말했을 정도다.

'이명박-김재철', MBC 망가진 단초 제공

이러한 근본 원인의 단초는 이명박 정권이 제공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2년 차인 2010년 MBC 노조는 정권의 낙하산 사장 강행에 맞서 강력히 저항하며 공영방송 사수를 위해 맞섰다. 2010년 2월 26일 MBC 노조 측이 내놓은 성명을 보면 얼마나 당시 상황이 위급하고 처참했는지 알 수 있다,

'권력의 나팔수로 정권을 찬양하며 살 수는 없다'란 제목에서부터 살벌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성명은 "마침내 MBC에 낙하산 부대가 내리 꽂혔다"면서 "김재철 사장은 부역자로 나서지 말라는 후배들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권의 용병을 자처했다"고 운을 뗐다.

노조는 이어 "MBC 사장이라는 순간의 탐욕에 눈이 멀어 이명박 정권의 MBC 장악에 앞장 설 칼잡이로 나선 것"이라며 "그의 칼끝은 권력에 복종하고 정권을 찬양하라는 협박과 함께 후배들의 양심을 가차 없이 베어 낼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그대로 적중하고 말았다.

그 후 MBC는 가장 혹독한 시련을 맞게 됐다. 최장기간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구성원들이 해고 또는 징계의 칼바람을 맞으며 직장을 잃었고 파업 과정에서 사측으로부터 무수한 고소·고발을 당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이명박 정권 기간에만 170여 일 파업에 징계나 해고 등으로 100명이 넘는 MBC 종사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지금도 그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MBC는 진실을 원하는 국민들의 눈과 귀에 거짓과 어둠의 장막을 드리우고 있다는 따가운 비판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한번 권력에 짓밟힌 방송사의 독립성과 공정성 회복은 좀처럼 어렵다는 것을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국민 앞에 보여주고 체험시켜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로 인한 적폐는 촛불시민혁명의 개가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MBC 사측, 내부 문제점 치유 외면한 채 소통 차단 '급급'?

MBC는 새 정부 들어서도 구성원들이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언론자유와 공영방송의 정상화에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거세다. MBC 노조는 "우리는 권력을 등에 업은 칼춤을 추며 MBC를 만신창이로 만든 패악질의 장본인과 단 하루도 같이 있을 수 없다"며 "김장겸 사장은 당장 MBC를 떠나라"고 주장한 지 오래다.

그러나 회사 측은 내부적인 문제점 치유는 외면하고 대신 구성원들이 내놓은 기명 성명을 삭제하는 등 내부 소통 차단하기에 급급한 형국이다. 이 바람에 갈등의 골을 더욱 키우고 있다. 거기에다 최장 파업의 악몽까지 되살리게 한다.

MBC 노조는 "회사 측이 전자게시판 운영위원회 명의로 지난 4월 24일부터 6월 1일까지 사내 게시판(커뮤니케이션)에 게시된 게시물 23건에 대해 심의했고, 이 중 보도국 43기 성명·보도국 33기 성명·보도국 42기 성명·MBC 영상기자회 성명 등 13건의 게시물을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게시물들은 주로 김장겸 사장과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등을 향해 방송사 구성원들이 '공정방송을 망가뜨린 주범'으로 지목하고, 이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김연국 본부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회사 측의 기명성명 대거 삭제 소식을 전하면서 "사내게시판에서 글을 지울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이름과 결의를 지우지는 못한다"고 밝혔다.

7년 전 방송사 구성원들이 정권의 낙하산 정책에 맞서 주장했던 "정권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인사들로 방문진을 새로 구성하지 않고서는 결코 MBC의 독립성과 공영성을 지킬 수 없다"는 내용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정상화, 문재인 대통령에 거는 기대 큰 이유

MBC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공영방송사의 지배구조는 권력에 편향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위험에 놓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늘 정권은 방송을 장악하고 권력유지 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에 거는 기대가 크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줄곧 '언론자유와 독립을 회복하겠다'는 공약을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 추진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공영방송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 '보도·제작·편성권과 언론사 경영의 분리·독립' 그리고 '편성위원회를 방송사업자와 취재·제작·편성부문 종사자 대표가 동수로 추천하는 위원으로 구성하는 등의 보도와 제작, 편성의 자율성 확보'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외에도 문 대통령은 종합편성채널과 지상파 방송을 동일하게 규제하는 체제로 전환하고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억울하게 해직·정직 등의 징계로 탄압받은 언론인에 대한 명예회복·원상복귀 및 언론탄압 진상규명 등을 추진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동안 이러한 방송정책 공약에 관해서는 구체적 정책이나 언급이 아직 없다. 권력의 방송장악 금지 차원의 큰 그림을 그리려는 것 때문일까.

MBC뿐만 아니라 KBS, 연합뉴스 구성원들의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는 비등한 목소리에 청와대가 이제 답해야 할 차례다.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 방송사에서 직접 언급했던 것처럼 '심하게 무너진 공영방송을 바로 세우기 위해' 직접 나서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태그:#공영방송, #MBC, #경영진 퇴진요구, #문재인 대통령 공약, #노조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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