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시간 실점을 내줬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들의 축구를 했다. 어린 선수들이었지만, 무리하지도 않았다. 너무 '여유'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였다. 그러자 결과로 보여줬다. 지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축구를 한다면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대역전승을 만들어냈다.

잉글랜드가 8일 오후 8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IFA(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준결승전 이탈리아와 경기에서 3-1로 승리했다. 이로써 잉글랜드는 U-20 월드컵 역사상 첫 우승을 노릴 수 있게 됐다.

첫 우승에 도전하게 된 잉글랜드

이탈리아가 경기 시작 2분 만에 선제골을 뽑아냈다. 마테오 페시나의 침투 패스를 왼쪽 측면을 파고든 안드레아 파빌리가 잡아 크로스로 연결했고, 이를 리카르도 오르솔리니가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지난 5일 잠비아와 8강전 120분 혈투로 인해 체력적인 부담이 컸던 터라 이른 시간 선제골은 큰 힘이 됐다.

예상치 못한 실점과 함께 경기를 시작하게 된 잉글랜드는 볼 소유부터 늘려나갔다. 좌우 측면을 오가는 패스로 경기장을 넓게 활용했고, 자리를 잡고 서 있는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기 위해 많은 움직임을 가져갔다. 순간적인 뒷공간 패스와 침투로 득점을 노렸고, 여러 차례 이탈리아의 골문을 위협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공격에도 득점이 터지지 않자, 잉글랜드 폴 심프슨 감독은 키에런 도웰을 빼고, 셰이 오조를 투입하며 변화를 줬다. 용병술은 적중했다. 오조의 연속된 슈팅으로 기세가 오른 잉글랜드는 마침내 동점골을 터뜨렸다. 후반 20분 오조가 우측면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고, 안드레아 자카노 골키퍼 처낸 것을 솔란케가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지난 5월 26일 오후 경기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잉글랜드의 경기. 한국 백승호가 잉글랜드 셰이 오조를 제치고 드리블하고 있다.

지난 5월 26일 오후 경기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잉글랜드의 경기. 한국 백승호가 잉글랜드 셰이 오조를 제치고 드리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잉글랜드의 기세는 멈출 줄 몰랐다. 후반 31분 다시 한 번 오조의 발에서 역전골이 만들어졌다. 오조가 절묘하게 휘어져 들어가는 크로스를 올려줬고, 이를 아데몰라 루크먼이 잡아 슈팅으로 연결해 이탈리아의 골망을 출렁였다. 이탈리아는 뒤늦게 라인을 끌어올리며 공격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추가골까지 내줬다.

후반 42분 잉글랜드의 빠른 역습 상황에서 볼을 잡아낸 솔란케가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추가골을 뽑아냈다. 이탈리아의 무리한 전진이 중원에 많은 공간을 만들어냈고, 솔란케가 이를 노린 것이 적중했다. 결국 잉글랜드는 이탈리아의 빗장수비를 상대로 3골을 뽑아내며, 대역전승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한국-이라크전이 오버랩 된 리틀 삼사자와 아주리의 맞대결

이 경기가 열리기 18시간 전, UAE(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이라크의 친선 경기가 있었다. 졸전이었다. 완전히 내려앉은 이라크 수비를 상대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스리백으로 대응했고, '유효 슈팅 0개'라는 아쉬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더 굴욕적이었던 것은 전체 슈팅 숫자에서도 수비 축구를 선보인 이라크보다 적었다는 사실이었다.

U-20 월드컵 우승 가능성이 커진 잉글랜드지만, 성인 대표팀과 단순 비교는 어렵다. 그러나 '리틀 삼사자 군단'의 경기를 지켜보며, 앞선 한국 국가대표팀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이른 시간 선제골을 내줬고, 완전히 내려앉아 수비에 집중하는 팀을 상대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했기 때문이랄까.

두 경기 분위기는 상당히 비슷했다. 우리가 이라크에 실점을 내주지는 않았지만, 한국과 잉글랜드 모두 높은 점유율을 가져가며 공격을 노렸다. 다만, 내려앉은 팀을 상대하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완전히 내려앉은 이라크를 상대로 세 명의 중앙 수비수를 뒀다. 이라크의 최전방 공격수는 한 명이었고, 그마저도 우리 진영으로 넘어오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지만, 변화는 없었다. 우리 지역에는 늘 세 명의 수비수가 버티고 있었다.  

반면 잉글랜드는 중앙 수비수 두 명을 중앙선 부근까지 끌어올렸다. 최전방 공격수부터 중앙 수비수까지 상대 진영 가까이에 머무르면서, 이탈리아와 대등한 숫자 싸움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덕에 잉글랜드는 좁은 간격을 유지할 수 있었고, 짧은 패스로도 볼을 빠르게 돌릴 수 있었다. 

잉글랜드는 자리를 잡은 이탈리아 수비를 무너뜨리기 위해 쉼 없이 움직였다. 패스를 주고, 앞에 있는 수비수 뒤쪽으로 뛰어들어갔다. 볼에 관여하지 않은 선수들도 계속 움직여주면서, 상대 수비의 시선을 끌어왔다. 그렇게 조금씩 전진했고, 페널티박스 안쪽에 진입해서는 슈팅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좌우로 벌려주는 패스, 백패스만 시도했다. 수비수를 제쳐내는 드리블을 볼 수 없음은 물론이었고, 패스를 주고받으며 전진하는 모습도 없었다. 더 자세히 말하면, 국가대표팀에 전진 패스가 가능한 이는 기성용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손흥민이 상대 수비 뒷공간으로 뛰어도 별 효과가 없었다. 

풀백(윙백)의 모습도 많이 달랐다. 잉글랜드 풀백 존조 케니는 이날 우측면을 지배했다. 엄청난 체력을 앞세워 끊임없이 수비와 공격을 오갔고, 상대 수비 뒷공간을 파고들었다. 왼쪽 풀백 카일 워커-피터스처럼 화려한 드리블과 개인기는 부족하지만, 연계 플레이를 통해 상대 측면을 여러 차례 무너뜨렸다. 

반면, 우리 대표팀 풀백은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한 시즌에 65분만을 뛴 왼쪽 풀백 박주호는 떨어진 경기 감각만큼이나 몸도 무거웠다. 공간 침투는커녕 기본적인 패스와 볼 간수도 힘겨웠다. 우측에 위치한 김창수 역시 개인 드리블 돌파나 연계 플레이에 의한 침투는 볼 수 없었다. 

같은 날 18시간 전후로 벌어진 경기에는 똑같은 문제가 내려졌다. 수비 축구에 맞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 팀은 수비 축구에 맞서 수비로 대응했고, 다른 팀은 공격으로 맞섰다.

왜일까. 떨어진 경기 감각을 U-20 대표팀에 이어 성인팀에서도 걱정해야 하는 것은 왜일까. 두 팀은 왜 똑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달랐던 것일까. 결국에는 답을 낼 수 있는, 내야 하는 권한을 가진 지도자의 책임이자 역량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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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VS 이탈리아 U-20 월드컵 한국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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