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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Benn_이한열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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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열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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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라 반갑기 그지없으나 그간의 가뭄을 해갈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그야말로 삥아리 눈물만큼 찔끔찔끔 내린다.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내린 게 어디냐고 하면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몇 달째 가뭄에 시달려온 농부들의 입장에서야 성이 찰 리가 없다. 비야 내려라. 밤새도록 내려라, 오래된 유행가 가사처럼 제발 농부들의 입에서 한숨 소리 안 나오게 밤새 주룩주룩 내렸으면 좋겠다.

모처럼 비가 내리니 파전 부쳐 막걸리 한 잔 하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농부는 아니지만 일찍이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나 역시 농부나 한가지다. 예전에는 농부의 아들이라는 것이 그리 자랑스러울 것도, 솔직히 더러는 좀 창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나이 먹고 보니 그나마 사기꾼, 모리배의 자식 아닌, 순전히 제힘으로 땅 파서 먹고 살았던 농부의 아들인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연어의 회귀처럼 사람도 나이 먹으면 고향이 그리워지는가 보다. 언제부턴가 부쩍 어렸을 때 먹었던 음식 생각이 자주 나고 - 어머니 아버지 오래 전에 돌아가셨으니 마음으로만 그릴 뿐이다. - 또 애써 감추고 싶었던 고향사투리도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다시 들으니 고향 사투리는 갓 볶아낸 커피 향처럼 구수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들어 부쩍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는 횟수가 늘었다. 고향에서는 병아리를 '삥아리'라고 불렀다. 삥아리가 눈물 흘리는 걸 본적 없지만 아주 작고 미미한 양을 일컬어 삥아리 눈물 같다고 했다. 오늘처럼 찔끔찔끔 내리는 비를 말이다.

오랜만에 비 냄새를 맡으며 여기저기 인터넷 신문을 뒤적이다보니 낯익은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끈다. 바로 1987년 6월 9일 시위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이한열 열사와 그를 부축하고 있는 이종창씨의 사진이다. 당시 로이터통신 사진기자가 촬영한 이 한 장의 사진은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고, 6·29 선언을 이끌어내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남았다. 벌써 30년이 흘렀다. 이한열은 가고 이종창은 남아 연세대 교정에 세워진 그의 기념비를 어루만지는 모습이 애잔하다 못해 눈이 시리다. 나 역시 그때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들처럼 앞장서 싸우지 못했다. 살아가면서 늘 마음의 빚이었다. 그렇다고 지금껏 잘 먹고 잘 산 것도 아니었으니 무엇 하려고 그리 몸을 사리고 아꼈던가? 그나마 아직 살아가야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삥아리 눈물만큼이라도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기여할 수 있는 시간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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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기행 작가. 콩나물신문 발행인. 저서에 <그리운 청산도>, <3인의 선비 청담동을 유람하다>, <느티나무와 미륵불>, <이별이 길면 그리움도 깊다> <주부토의 예술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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