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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8일 세계일보가 입수한 한 문건이 권력의 심장을 향해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청와대가 작성한 감찰보고서인 이 문건 이름은,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동향'.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의 내부감사결과 정윤회씨 등 10인의 '십상시'가 김기춘 비서실장의 해임을 논의하는 등 비선에서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권력실세로 '문고리 3인방'의 존재가 폭로되고 청와대 비서실에 대한 대대적인 내부감찰이 전개되면서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혐의를 받아온 최경락 경위가 목숨을 끊는 등 정치권과 언론이 온통 '문건태풍'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었다. 그해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구조실패로부터 심각한 리더십의 타격을 입고 있던 터에 터진 악재였다. 청와대의 국정 장악력이 급속히 와해되어 갔다.

통합진보당에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선고가 열린 2014년 12월 19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판결문을 읽고 있다. 재판관 9인중 8인의 인용의견으로 통합진보당은 해산 결정됐다.
▲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통합진보당에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선고가 열린 2014년 12월 19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판결문을 읽고 있다. 재판관 9인중 8인의 인용의견으로 통합진보당은 해산 결정됐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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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이었다. 2014년 12월 17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선고를 이틀 뒤인 12월 19일(금) 오전 10시로 확정해 심판 청구인인 법무부(대리인 황교안)와 피청구인인 진보당에 통보했다고 밝힌다.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인 정기선고기일(12월 26일)보다 6일을 당겨 선고일을 잡은 것이고, 이날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헌재의 주문. '1.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 2.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 김미희, 김재연, 오병윤, 이상규, 이석기'는 의원직을 상실한다.' 그와 동시에 진보당에 대한 헌재의 정당해산 선고로 도배된 방송과 신문, 인터넷은 일거에 '정윤회 문건'을 사람들의 관심사로부터 밀어냈다.

조금 비약해서 말하자면, 만약 그 당시 정윤회 문건이 더 상세히 보도돼서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면, 훗날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은 예방되었을지 모르고, 박근혜가 탄핵을 당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터무니 없는 것이 아니라면, 정윤회 문건을 덮어 버린 진보당 해산 선고가 오히려 훗날 박근혜 정부 몰락의 씨앗을 잉태했다는 상상까지 하게 된다.

김이수는 진보당 해산에 반대한 유일한 재판관이었다. 그의 반대표는 헌법재판소 역사상 최초의 정당해산심판에서 8대 1의 '소수의견'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의 '소수의견'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보수일색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의 조직상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다. 김이수의 판결이 근원적으로 '소수의견 편향'이었다기 보다 헌재의 조직과 정치적 상황이 김이수의 의견을 '소수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소수의견' 발의자 김이수 재판관

이런 가정을 해보자. 만약 문재인 정부가 끝나고 정권재창출에 성공해서 최소 10년의 '중도진보개혁정권'이 계속된 상태에서 헌재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하게 된다면 어떤 판결이 내려질까? 8대 1의 판결로 해산청구는 기각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때는 정당해산에 찬성한 사람이 한 명밖에 없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김이수 재판관과 같은 의견이 절대 다수의견, 박한철 헌재 소장 같은 해산 찬성의견이 극히 소수의견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걸 두고 중도진보정권과 그 정권하의 헌법재판소더러 '좌파'니 '종북'이니 딱지를 붙인다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그 정권 하의 헌법재판소는 수구꼴통 아니면 극보수 집단이라 이름 붙여도 할말이 없으리라.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어떤 정권하에서든, '정치적 성격'을 띤 사건의 판결에서 8대1이 나오는 것은 이 조직이 결코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편향돼 있기 때문에 이런 판결이 나오는 것이란 얘기다.

헌법재판소의 선고는, 최소한 정치적 사안에 관한한, 정권의 성격에 따라, 또 동일한 정당이 집권한 정부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는가에 따라, 심판이 달라질 개연성이 매우 높은, '정치적 조직으로서의 특수성'을 내장하고 있다. 대통령이 3인, 국회가 3인, 대법원장이 3인을 지명 혹은 추천하는 헌법재판관에 대한 임명구조로부터 '정치성'은 피할 수 없다.

한 정당이 오랫동안 집권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의 재판관과,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는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3인의 재판관만 합쳐도 위헌판결이나, 정당해산선고에 필요한 6대 3은 기본적으로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국회추천 3인 중 여당 1인과 여야가 합의한 1인의 재판관까지 합치면 정부 여당에 우호적인 재판관은 최소 7인, 최대 8인까지 확보하게 된다. 정치적 사건에 대한 선고에서 임명권자의 의사에 반해 판결하는 것은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기에 대체로 임명권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봐야 한다.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를 앞두고 언론이 분석한 헌재 재판관 성향으로부터 진보당 해산결정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3인)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명한 양승태 대법원장(2인), 새누리당(1인)을 통해 임명된 6인이 보수성향으로 분류되었고, 이용훈 대법원장(노무현 대통령 지명)이 지명한 이정미 재판관과 당시 야당이 추천한 김이수 재판관 등 두명이 진보로, 여야 합의로 추천된 강일원 재판관이 중도로 분류되었다.

2014년 12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2년 못살겠다! 다 모여라! 국민촛불' 집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참석자들이 통합진보당 해산과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박근혜 정권의 보복정치이며 민주주의 파괴, 독재로 회귀하고 있다"고 규탄하고 있다.
▲ "박근혜 정권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과거로 회귀시켰다" 2014년 12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2년 못살겠다! 다 모여라! 국민촛불' 집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참석자들이 통합진보당 해산과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박근혜 정권의 보복정치이며 민주주의 파괴, 독재로 회귀하고 있다"고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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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성향 분석에 비춰볼 때, 강일원 재판관은 논외로 하더라도, 진보성향으로 분류된 이정미 재판관이 '보수성향'의 재판관들처럼 진보당 해산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이 때문에 김이수 재판관의 '해산반대' 의견은 더욱 더 '소수편향적'인 의견으로 인식되었던 측면이 있다.

헌법재판에서 특정 재판관의 의견은 본인의 헌법적 소신에 더해, 여론의 동향, 임명권자의 의중, 사안의 정치적 특성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요소를 콕 집어, 내놓은 의견의 배경을 짚어 내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헌재 결정문의 김이수 재판관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의견이 단지 헌재가 보수일색으로 편향된 탓에 소수의견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 그가 얼마나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헌법적 가치를 깊이 고민했는지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나아가 진보당 해산을 왜 반대하는지를 피력한 김이수의 재판관의 의견은 '민주주의 헌법'의 교본처럼 다가온다.

정당 해산의 기준 1 : 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가

헌재 결정은 다수결에 따라 판단이 내려지지만 그 다수결이 곧 옳고 그른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때의 다수의견은 다른 시대와 상황을 만나면 소수의견이 될 수도 있고, 소수의견이 훗날 옳은 것으로 판명날 수도 있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헌법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분명히 짚어 내고, 해당 사건에서 그 가치를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명확히 규명해 나감으로써 바로 세울 수 있다.

수호해야 할 헌법적 가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더라도, 사실관계 규명과 사건에 대한 해석을 놓고 의견이 극명하게 갈릴 때,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력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진보당 해산 결정에서 다수의견(8)과 소수의견(1)은 바로 그 '팩트'와 '해석'의 차이로 인해 빚어진 것이었을 뿐, 수호해야 할 헌법적 가치에 대해서는 재판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했다.

진보당 사건에 관한 '팩트'와 '해석'에 대한 김이수 재판관의 의견을 읽어 보면,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정당활동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소신이 짙게 깔려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한쪽으로 치우친 편향된 '소수의견'이라는 이미지는 언론에 의해 덧씌워진 것일 뿐, 매우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헌법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8명이 합동으로 제시한 다수의견보다 김이수 재판관 혼자서 낸 의견이 분량이 더많은 180쪽이나 되는 것도 그의 '소수의견'에 무게감을 더한다.

진보당 사건의 시작은 2013년 5월 10일과 5월 12일 두차례 있었던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전현직 당직자와 당원 모임에서 강사로 초빙된 당시 이석기 의원의 발언이 발단이 됐다. 회합이 있기 수개월 전부터 한반도에는, 북한이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장거리 로켓 '광명성 3호'를 발사하고, 3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한국과 미국이 키리졸브 훈련에 돌입하자 북한이 '정전협정 폐기'를 선언하는 등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던 차였다.

이런 상황에서 130여명의 당원들이 모인 정세분석 강연에서 이석기 의원은 미국을 남북이 함께 싸워야 적대적 대상으로 규정하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무기 보유를 옹호하는 데서 나아가, 미국과의 전쟁준비를 주장하였다. 이 회합과 발언을 이아무개씨가 국정원에 제보하면서 이석기 등 6명의 모임 주모자들이 내란선동, 내란음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되었다.

1심에서 이석기 의원은 혐의가 모두 인정돼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이 선고되었으나, 항소심에선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 내란선동과 국보법 위반만 인정돼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이 선고됐다. 형사재판과 별개로 정부는 헌재에 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했고 헌재는 대법원 상고심을 한 달 앞둔 2014년 12월 19일 정당해산심판 선고를 하게 된다.
    
헌재가 진보당 해산심판을 하게 된 근거는 헌법 제8조4항,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는 조항이었다. 쟁점은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지 여부'였다.

헌재 심판의 초점은, 이석기 등의 회합참석자들의 활동과 발언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진보당 차원'의 활동으로 볼 수 있느냐 여부를 가리는데 집중되었다. 재판관 다수는 진보당 지도부와 중앙당이 이석기 등의 활동과 발언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고, 당차원에서 그들의 구명활동에 나선 점을 들어, 참석자 130명의 모임을 정당활동과 동일시하였고, 진보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활동을 했다고 보았다.

반면, 김이수 재판관은 회합을 가질 당시 이정희 대표 등 당지도부와 이석기 등 회합참석자들이 전혀 다른 정세인식과 대응을 했던 점을 들어, 정당활동으로 보기 어려운 경기도당의 일탈행동으로 보았다. 화해와 평화의 자주적 민족통일국가 건설과 한반도 비핵 평화체제 실현을 당강령에 명시했을 뿐 아니라,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정희 당대표가 긴급기자회견(2013.4.10.)을 통해 "북한은 미사일 시험 발사 등의 군사행동을 중단할 것과 한미일도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군사대응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거나 반전평화활동 지침을 내린 점 등을 고려할 때 이석기 등의 전쟁대비 발언과 행동은 당의 기본노선과는 배치되는 '일탈행동'이라는 것이 김 재판관의 판단이었다.

이석기 등의 발언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이 있다고 보지만, 그것은 당 전체의 기본노선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그런 활동을 옹호한 것도 아니어서 진보당의 책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당 해산의 기준 2: 비례원칙의 충족 여부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된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지난 5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된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지난 5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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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37조 2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 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정당해산결정에 적용할 경우, 정당해산결정을 통한 '사회적 이익'이 정당 해산결정으로 인해 초래되는 정당활동의 자유 제한으로 인한 불이익과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중대한 제약이라는 '사회적 불이익'을 초과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경우에 한하여 정당해산결정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른바 '비례원칙의 충족 여부'다.

김이수 재판관이 진보당 해산에 반대하면서 근거로 들고 있는 이 '비례 원칙의 충족여부'는 김 재판관의 헌법심판의 '정수'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정당해산으로 달성할 수 있는 사회적 이익보다 해산결정으로 인해 초래될 사회적 불이익이 더 커서, 정당해산결정이 실효성 면에서 원래 의도하였던 목적을 달성하는데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그 이유는 첫째, 강제적 정당해산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정당의 자유 및 자율적 의사결정원리에 대한 중대한 제약을 초래한다는 것이고, 둘째 정당해산이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보호해야 할 사상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특히 소수자들의 정치적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며, 셋째 정당 해산결정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통합과 안정에도 심각한 위해를 끼친다는 것 등이다.

나아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 인적집단에 대해 형법과 국가보안법, 국회의 제명 등을 통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반되는 이념을 관철하려는 세력을 정당의 정책결정과정에서 배제시킬 수 있는 여러 제도들을 마련해 두고 있는 상황에서 정당해산은 필요이상의 과도한 침익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김 재판관의 소견이다. 따라서 정당해산제도는 비록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최후적이고 보충적인 용도로 활용되어야 하고, 정당 해산 여부는 원칙적으로 '정치적 공론의 장'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과정 등 민주적 정치과정을 통해 정당의 목적과 활동의 위헌적인 측면이 진지하게 논박되고 그 결과로 해당 정당의 지지기반이 상실되도록 함으로써 그 정당이 자연스럽게 정치영역에서 고립되거나 배제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함으로써' 정당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김 재판관은 자신의 이런 견해가 '공적이성이 주재하는 역사의 법정에서 자유에 대한 억압이나 불합리한 폐습들이 궁극적으로 교정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한다'는 말로 진보당 해산에 '반대의견'을 던진 법철학적 배경을 피력한다.

자유민주주의, 어떻게 수호할 것인가

김이수 재판관의 '소수의견'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부분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특수상황에서 우리 헌법이 수호해야 할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는 대목이다. 그는 우리 헌법이 지향해야 할 자유민주주의의 핵심가치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꼽는다. 난무하는 사상들과 표현들로 인해 초래되는 자유로운 혼란보다 정견의 합치로 얻어지는 인위적인 안정이 더 위험하며 난립하는 정견들의 대립을 용인하고 그로 인한 불편 내지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이 더 큰 '사회적 이익'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적 이득이란 개인의 자율성과 민주적 정치의 이념을 실현하고 이를 기초로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향유하는 데 보다 적합해 질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김 재판관이 결정문 말미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별도의 견해를 피력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종북 몰이'가 사상이나 견해의 표명을 억압하고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읽힌다.

북한에 대한 과도한 적대감과 경계심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억압할 위험도 있는 만큼, 반국가단체이면서도 동시에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인 북한에 대해 경계를 느슨히 해서도 안되지만 북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교류와 협력을 넓혀갈 책무도 함께 이행해가야 하는 것이 헌법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체제경쟁이 무의미해 진 현실을 감안할 때, 북한에 대해 긴 안목과 호흡, 그리고 더욱 적극적·주도적인 태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진보정당에 진 빚은 없는가

진보당 해산 심판에 대한 '소수의견'을 마무리하면서 김 재판관이 덧붙인 의견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끼친 진보정당의 공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의 좌우날개처럼 균형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논쟁의 틀이 기울어진 접시처럼 치우치지 않도록 견제할 수 있는 진보정당은 우리 사회의 자산'이라는 것이다. '진보정당이 민주화의 발전에 이바지하며 진정한 사회통합과 안정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뇌'한 결과로 이같은 의견을 내놓았음을 고백한다. '의심스러울 때는 자유를 우선시 하는 원칙을 지켰는지', 다수의견을 내놓은 재판관들에게 그는 묻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사(李斯)가 진시황에게 들려준 고사를 인용하며 진보당 해산에 반대 의견을 내놓은 이유를 덧붙인다.

'바다는 작은 물줄기를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그 깊이를 더해 갈 수 있는 법이다(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민주주의야 말로 바다와 같아서 다양한 생각들을 포용해 가는 것을 그 제도의 본질로 한다.'

덧붙이는 글 | 갈상돈 기자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민본정치경제연구소를 운영하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태그:#김이수, #통합진보당, #헌법재판소, #비례원칙, #소수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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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 연구로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요신문 기자, 고려대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교수, 경상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서 '갈상돈 박사의 뉴스브리핑'을 담당하기도 했다. 현재 사단법인 지방혁신연구원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시사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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