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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터키와 시리아 국경에 있는 난민 캠프에 갔을 때는 시리아 사람들이 심리치료 센터에 한 달에 2~3번 올까말까할 정도였다. 2015년에도 심리 치료 활동가들이 활동을 계속 유지를 해야 하는지 고민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 갔을 때는 '자살하고 싶다는 등….' 치료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가게라면 장사가 잘되는 것이라 기뻐할 텐데. 너무 슬픈 일이다. 지금은 심리치료 단체가 모자랄 지경이다."

지난달 6일, 국제구호단체 '개척자들' 모임에서 '압둘 와합'을 만났다. 시리아 출신인 그는 시리아 상황 파악 및 구호 물품을 전달하고자 터키에 갔다가 지난 3월 말에 한국에 들어왔다.

압둘 와합이 한국 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건 2007년. 당시 압둘 와합은 법대에 재학중이었고,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대학으로 아랍어를 배우러 온 한국인들에게 우연히 도움을 주면서부터 인연이 시작됐다. 그는 다른 나라의 법을 공부하여 시리아 법을 좀 더 연구하고 싶었다고 한다. 친구의 나라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그는 2년 뒤 프랑스 대신 한국을 택했다.

2011년, 아랍권과 너무나도 다른 한국 생활에 차츰 적응할 때쯤 전쟁 소식이 들려왔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친구들과 함께 만든 작은 규모의 NGO '헬프시리아'가 설립된 지는 이제 4년 정도. 만들 때만 해도 일시적으로 유지할 생각이었다. 시리아 사람 압둘 와합도, 평소 중동 정세에 관심이 많던 한국인 친구들도 이렇게 오랫동안 전쟁이 지속될 줄 몰랐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티끌같은 문제가 돌아보니 나도 모르게 엄청난 재앙이 되어버렸을 때.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찾아야할지 아득할 때가 있다. 이번 전쟁이 그런 양상이다. 처음에는 시리아 내에서 오랫동안 권력을 잡고, 되물림하는 정부에 대해 반대하는 등 내적인 마찰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러시아와 미국의 대리전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미국의 주도하에 2014년에 설립한 연합군은 ISIS를 격퇴한다는 이유로 학교, 병원 등 공공기관까지 폭격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일반사람들도 많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폭격을 당한) 학교에 130여 명의 일반 사람들이 있었고, 그 중 60명이 아이들이었다. 농사를 짓다가 폭격 받기도 한다."

압둘 와합은 지난해에 난민 캠프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시리아 본국으로 돌아가 2시간 동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가족을 만나겠다", "고향 음식을 먹겠다", "가족의 무덤을 찾겠다", "컴퓨터를 챙겨 나오겠다", '사진 앨범을 가지고 나오지 못한 게 후회된다", "여권을 챙기고 싶다"

대답은 가지각색이었다. "어릴 때부터 쓴 내 다이어리가 전부다"라고 말한 20대 청년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압둘 와합이 들었던 대답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시리아 사람들의 대답에 압둘 와합은 힘이 빠졌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을까. 다이어리가 자신의 전부였다고 말한 청년을 다시 찾았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 내 인생은 다 없어졌다. 차라리 다 잊었으면 좋겠다." 

압둘 와합의 얘기를 듣는 내내 내 몸은 점점 붕 뜨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이 이 시각에도 죽어나가고 있다는, 믿고 싶지 않은 사실. 내 삶과는 괴리감이 너무 컸다.

시리아를 둘러싼 OO들

"시리아에 있는 이란 군대가 작년보다 2배 늘어났다. 이란과 러시아 정부군은 함께 힘을 합쳐 확대시키는 중이다. 쿠르드족(나라 없이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에 걸쳐 거주)은 이참에 독립을 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시리아 정부를 반대하는 쪽에 힘을 합쳤지만 지금은 시리아 정부쪽에 합류하였다. 아마 시리아 정부로부터 독립을 약속받은 것 같다. 미국도 쿠르드로부터 정보를 얻으며 지원하고 있다."

압둘 와합은 이러한 상황에서 ISIS활동까지 더해진 결과, 시리아 난민들은 더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난민들은 시리아와 가까운 터키로 많이 넘어간다. 그런데 2015년부터는 터키 정부가 공식적으로 국경을 닫아버렸다. 국경을 넘어가려는 사람들을 하루에 총격으로 30~40명씩 죽인다(죽는 이들의 수는 매번 달라진다). 2015년까지 터키 군인이 시리아 사람을 죽이면 비난 많이 받았지만 요즘은 아니다. 마치 터키 정부로부터 허가라도 받은 것 같다.

보통 유럽으로 들어가는 난민들은 터키를 지나는데 유럽연합은 터키와 협상해 경제적 지원을 내밀며 난민들이 유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지중해까지만 올 수 있게 선을 그었다. 그러나 점점 유럽의 요구는 커졌고 이제는 터키 안에까지도 들어가지 않게, 아예 시리아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하다못해 유럽연합의 담당자들은 국경 근처에서 감시까지 하였다."

압둘 와합은 터키보다 오히려 유럽 국가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하였다.

"2014년부터 매년 시리아와 터키를 오가며 시리아 사람들을 만났다. 시리아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 지쳐서 이 비극이 끝나기만을 바란다. 난민 캠프에서도 관리나 지원해주는 사람이 없다. 정신적으로 지친 것은 난민뿐만 아니라 활동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에게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물었다.

"해소는 못해요. 그냥 지금처럼(마침 전화가 왔다) 친구가 전화와서 맛있는 것 같이 먹자고 할 때 좋죠. 바빠도 웬만하면 만나려고 해요. 그리고 '헬프시리아' 활동 하면서 시리아 사람들 돕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위안을 받아요."

춤도 가끔 배운다고 말하던 그는 활짝 웃었다.

활짝 웃는 압둘 와합
 활짝 웃는 압둘 와합
ⓒ 개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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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프시리아'를 도우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
"사실 나도 모르겠어요. 각자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좋겠어요. 웹사이트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은 홈페이지 운영을 도울 수도 있고, 기획을 잘하는 사람이면 행사를 진행할 수도 있겠죠. 글을 잘 쓰는 사람이면 또 글로 알릴 수도 있고요. 저는 TV뉴스나 신문 인터뷰 외에 시리아를 알리는 교육도 많이 다니는데 혼자 하려니까 좀 힘들어요. 시리아 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되죠."

후원금을 먼저 생각한 나로서는 그의 대답이 의외였다. 시계를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시리아 소식을 전해준 압둘 와합. 시리아 얘기를 할 때는 절대 지치지 않는다고…. 내가 편하게 먹고, 자는 이 순간에도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 상황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시리아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것처럼. 그에게도 한국은 그저 먼 타국이었을 수 있다. 우연히 만난 친구로 인해 한국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한국어로 이렇게까지 어려운 얘기를 술술 전해주는 압둘 와합. 그는 어쩌면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한국인을 세계 시민으로 한 단계 더 끌어 올려주기 위해 시리아가 보내준 귀한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국제국호단체 ‘개척자들’에서는 올해 3월부터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씩 세계사 모임을 한다.
압둘 와합을 만난 위 모임은 5월 첫째 주에 진행되었으며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태그:#시리아, #압둘 와합, #헬프시리아, #개척자들,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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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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