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무현입니다> 메인 포스터

▲ 영화 <노무현입니다> 메인 포스터 ⓒ 영화사 풀


지난 일요일, 주말 아침마다 가는 등산을 기꺼이 포기하고 아내와 함께 조조 영화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일요일 오전을 함께 할 수 없어서 아이들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꼭 봐야 하는 영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무현입니다>였다.

아내는 출발하기 전 손수건을 챙기며 내 것까지 챙길까 물었지만 고사했다. 울 게 뻔했지만, 그래도 참고 싶었고, 또 눈물이 나면 그대로 흐르게 놔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게 오랜만에 만나는 노짱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았다.

일요일 아침 조조인데도 관객석은 가득 차 있었다. 젊은 20대서부터 나이 지긋한 연배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그냥 느낌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두 나와 마찬가지로 다들 울 준비를 하고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영화의 영리함

2002년 민주당 경선 노무현 후보의 사자후

▲ 2002년 민주당 경선 노무현 후보의 사자후 ⓒ 영화사 풀


무엇보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영리했다. 감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생에 있어서 2002년 민주당 경선에 초점을 맞췄는데, 그 경선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신화적이고 영화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의 주인공이 오랫동안 온갖 시련을 겪다가 결국은 승리하는 내용의 뻔한 서사. 그러나 영화는 다큐멘터리로서 실화를 다룬 만큼 힘을 갖고 있었고, 최소한 이 영화를 제 발로 찾아온 관객들이라면 그들 역시 2002년을 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전제로 했기에 더 큰 울림을 주고 있었다.

영화는 관객들 각자의 2002년을 소환하고 있었다. 국민의 정부 이후 IMF를 졸업하고, 한일 월드컵에서 무려 4강 신화를 이루고, 심지어 남북 관계도 제2 연평도 해전에도 불구하고 나빠지지 않았던 2002년. 당시 사회 분위기는 지금보다 훨씬 희망적이었고 에너지가 넘쳤다. 나는 제대를 하고 복학생으로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다이내믹 코리아'처럼 우리 자신을 잘 나타내는 문구도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노무현 후보가 나타났다. 아니 다시 회자했다. 그는 대선후보로서 지지율 2%밖에 안 되는 만년 꼴찌였지만, 적합도에서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고 있던, '그가 대통령이 되면 참 좋겠는데, 빌어먹을 한국 정치 현실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생략하고 넘어가는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그가 여당의 대세 이인제 후보를 제치고 민주당 대선후보로 결정되었다. 늘 뻔한 실패를 고집하고, 옳은 말만 할 줄 알았던 '바보 노무현'이 국민 대다수의 예상을 뒤엎고 여당 후보로 선출된 것이다. 그것은 한 편의 드라마였고 기적이었다. 그때만큼 신문 보는 맛이 나고, 뉴스가 재미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감독은 이 영화를 볼 관객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바보 노무현'의 시작 영웅 서사는 결코 우연하게 시작되지 않는다

▲ '바보 노무현'의 시작 영웅 서사는 결코 우연하게 시작되지 않는다 ⓒ 영화사 풀


또한, 영화는 2002년 경선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거를 과하지 않게 교차편집 함으로써, 영웅 서사를 완성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낙선에도 불구하고 약자의 편에서 묵묵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를 보여줌으로써 2002년의 승리가 결코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특히 영화는 이와 관련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모셨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이용했는데, 이는 현명한 전략이었다. 관객들은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 노무현'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으며, 관객들이 간직하고 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채의식과 죄책감이 결코 자신만의 것임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인터뷰를 보면서 슬픔을 나누고, 극장 안에서 들리는 흐느낌을 들으며 지난 8년의 세월을 치유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터뷰의 백미는 문재인 대통령의 것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를 항상 소지하고 다닌다는 문 대통령은 직접 그 문구를 읽으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장면에는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얼마나 존경하고 사무치게 그리워하는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8년 전 영결식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고 MB에게 인사를 했던 그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그리고 이번 대선의 승리가 얼마나 절치부심의 결과인가를 어렴풋이 그릴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터뷰 너무나 가슴아팠던 그

▲ 문재인 대통령의 인터뷰 너무나 가슴아팠던 그 ⓒ 영화사 풀


2002년 민주당 경선의 의미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특화된 영화 <노무현입니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시점은 다름 아닌 2002년 민주당 광주경선 때였다.

영화에서도 언급하고 있었지만, 당시 광주 경선은 매우 중요한 고비였다. 누가 뭐라든 어쨌든 호남, 그중에서도 광주는 민주당의 핵심 지역이었고, 광주시민은 그 어느 지역보다 전략적인 투표를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혹자들은 이 '전략적'인 의미를 그만큼 광주 시민들이 노회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며 광주에서의 승리를 폄훼하기도 하지만 이는 편견에 불과하다. 광주의 선택은 그만큼 절박하며 절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누가 80년 광주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으며,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여 우리의 피눈물을 헛되지 않게 할 것인가.

따라서 최소한 1980년 광주의 비극을 부채의식으로 가지고 있는 자라면 광주의 선택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광주에서의 승리는 호남에서의 승리였고, 그것은 곧 민주당 경선에서의 승리를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2002년과 2017년은 엄연히 다르다

▲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2002년과 2017년은 엄연히 다르다 ⓒ 영화사 풀


영화는 이와 같은 광주 경선을 이기기 위해 노무현 후보가, 아니 '바보 노무현'을 사랑했던 시민들이 얼마나 죽도록 노력했는지 스크린에 담았다. 처음으로 정치집회에 참여하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꼭 2번을 찍어달라고 호소하는 사람들. 즐겁고 기꺼운 마음으로 흔쾌히 자신의 지지 후보를 말하는 사람들.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아도 그것이 곧 역사의 진보라고 믿는 사람들.

노무현 후보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노무현은 다 좋은데 대통령 될 가능성이 없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고 있었다. 그것은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꿔본 적 없는, 아니 자신이 원하는 세상으로 바꿔 본 적이 없는 시민들의 몸부림이었으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국민이 국가'라는 당연하지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한 시민들의 처절한 몸짓이었다.

눈물이 났다. 그것은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하는 시민들의 행동에 감동한 눈물이었으며, 그들의 절박함에 가슴 시린 눈물이었다. 그리고 노짱은 그와 같은 시민들의 등에 업힌 하나의 표상이었다. 유시민 작가가 이야기하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무현의 시대'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기폭제로서 참여정부의 대통령 그 이상이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만들어낸 기적으로서의 노무현. 우리가 계속해서 그를 기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깨어있는 시민을 호명해 냈고, 깨어있는 시민들이 그를 통해 정치적 자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난겨울 엄동설한을 환하게 비춘 촛불과 그를 바탕으로 서 있는 현 정부 모두 그의 신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2017년 시민의 정치 참여

촛불의 힘 문자폭탄이라고 폄훼하지 말라

▲ 촛불의 힘 문자폭탄이라고 폄훼하지 말라 ⓒ 이희동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승리를 위해서 살신성인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소위 '문자 폭탄' 논쟁이 겹쳤다.

현재 야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현 정부를 비판하면 소위 '문빠'들이 조직적으로 문자 폭탄을 보내 민주주의를 해친다고 주장하지만 동의할 수 없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에서 보여주듯이 깨어 있는 시민은 2002년 당시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SNS 등의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 지금처럼 직접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고, 대신 자신들을 대변한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을 뿐이다.

문자 폭탄이 민주주의를 해친다고? 웃기지 마시라. 자신의 실명을 밝히면서까지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 어찌 비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자신에게 닥칠 신체적, 정신적, 정치적 피해까지 감수해가며 행하는 시민의 행동이며, 정치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시민들의 거부권이다. 대의제의 울타리 안에서 마음대로 '국민'을 운운하며 자신들이 그 대표인양 하는 국회의원들이 함부로 범죄라고 칭할 수 없는 결연함이다.

이는 최근 불거진 소위 '한경오' 이슈와도 결부된다. 2017년의 시민은 2002년도와 다르다. 달라진 SNS 환경으로 인해 그들은 스스로 기사를 생산해내고 유통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한다. 그전처럼 단순히 기사를 소비하는 계몽의 대상이 아니다. 최근 청문회 등에서도 보듯이 시민들의 정보가 언론보다 앞서나가는 것이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진보언론 역시 앞으로 이를 주지하고 기사를 써나가야 할 것이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현재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신기록을 경신하는 중이다. 좀 더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기를 바란다. 영화를 통해 깨어있는 시민들이 좀 더 조직되어 다시는 민주주의의 퇴보가 불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내기를 기원한다.

노무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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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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