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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여민1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을 하기위해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여민1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을 하기위해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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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위장전입 등 고위공직자 인선 논란에 대한 입장 표명으로 '국무총리 인준안' 정국의 돌파를 시도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 이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등 야2당은 총리 인준안 처리에 협조하기로 돌아섰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저는 대선 때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세금 탈루, 논문 표절. 이 5대 중대 비리자는 고위 공직에 임명하지 않겠다 라고 공약했다"며 "정치자금법·선거법 위반, 음주 운전 등 더 큰 범죄 사유가 있을 수 있는데도 특별히 5대 중대 비리라고 공약했던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인사청문회에서 특히 많이 문제가 됐었던 사유들이기 때문이다. 5대 비리를 비롯한 중대 비리자들의 고위 공직 임용 배제 원칙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와 깨끗한 공직 문화를 위해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작년 12월 13일 국민성장포럼 연설에서는 '5대 비리 관련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날 모두발언에서는 '5대 중대비리자'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계열 정권에서 반복적인 문제 제기를 받아온 '5대 비리'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이라는 점을 재확인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저의 공약은 그야말로 원칙이며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며 "사안마다 발생 시기와 의도, 구체적인 사정, 비난 가능성이 다 다른데. 어떤 경우든 예외 없이 배제라는 원칙은 현실 속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최고위원을 맡은 전해철 의원도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나치게 일반적인 기준,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는 기준을 이야기하다 보니까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며 비슷한 진단을 내렸다.

한편으로, 문 대통령은 당선과 동시에 조각 작업에 나서야 하는 '대통령 보궐선거'가 빚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5대 비리' 공약을 구체화할 인수위가 있었다면, 일부 공직 후보자들을 발표하기 전에 구체적인 인사 기준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대통령의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지금의 논란은 그러한 준비 과정을 거칠 여유가 없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구체적인 인사 기준을 마련하면서 공약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야당 의원들과 국민들에게 양해를 당부했다.

문 대통령이 국정기획자문위와 청와대 인사수석실, 민정수석실의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인선 기준 마련을 요청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6일까지만 해도 이런 작업들을 국정기획자문위가 맡아줬으면 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는데, 문 대통령은 청와대 관련 부서의 협의를 언급함으로써 참모들에게 인선 기준 마련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한 것이다.

임종석 회견 후 대통령 입장 표명까지, 청와대도 3일간 '기류 변화'

26일 오후 임종석 비서실장의 기자회견 이후 29일 대통령의 입장 표명까지 만 3일 동안 청와대에서는 '고위공직자 인선' 정국의 해법을 놓고 상당한 기류 변화가 있었다.

주말까지만 해도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는 "문제가 터질 때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선례가 만들어질 수 있다", "대통령이 해명한다고 해서 야당의 공세가 수그러들지 확신이 안 선다"는 우려가 많았다.

여당에서는 여론전으로 야당들을 압박하겠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28일 워크숍에서 "(야당이) 국민의 눈높이가 아니라 야당 눈높이에서 그저 반대하는 것", "공직후보자의 단순 실수·불찰까지 흠결로 삼아 대통령을 흔들고 보겠다는, 정략적 심산은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리얼미터가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의뢰로 2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준에 찬성하는 의견이 72.4%에 이르렀다(반대 15.4%, '잘 모름' 12.2%,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럼에도 여권 안팎에서는 "인선 발표는 대통령이 하고, 인선에서 드러난 부작용은 참모(비서실장)가 떠안는 모양새가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지적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아무리 여론의 높은 지지를 받는다고 해도 국회 교섭단체 야3당(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의 협조 없이 민주당만의 인준안 단독 처리가 어려운 현실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날 오전 국회를 방문해 여야 원내대표들을 만나고 온 전병헌 정무수석의 보고가 청와대 기류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전 수석은 "대통령의 입장 표명만 있으면 (총리 후보자 인준에 부정적인) 국회 분위기를 돌려놓을 수 있다"는 취지의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사안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힘으로써 자칫 야3당이 '총리 인준안 비토'를 매개로 공조할 가능성을 차단하게 됐다.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가 29일 오후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과 관련 "이 후보자가 위장전입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은 대승적 차원에서 총리 인준안 처리에 협조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 국민의당 "이낙연 인준, 대승적 협조할 것"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가 29일 오후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과 관련 "이 후보자가 위장전입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은 대승적 차원에서 총리 인준안 처리에 협조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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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의 입장 발표가 나온 직후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인준에 대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바른정당도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정부 운영을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를 감안하여 향후 인준절차에 응할 방침"(오신환 대변인)이라고 밝혔다.

'인준안 불가' 자유한국당과의 관계 정립은 '풀어야 할 숙제'

야2당과 정의당이 협조할 경우 31일로 예정된 이낙연 총리 후보자 인준안은 국회를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총리 인준안 교착 정국으로 그동안 속도를 내지 못했던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진 인선 작업도 빨라질 공산이다.

다만, 대통령의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총리 인준안에 협조할 수 없다는 의견이 여전히 우세한 자유한국당과의 관계 정립은 '풀어야 할 숙제'로 계속 남게 됐다. 자유한국당은 총리 인준안 불가는 물론이고, 강경화 외교장관·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추가 의혹을 거론하며 두 사람의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으로, 문 대통령은 인사권자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사과'나 '유감' 같은 표현을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명 후보자의 국회 인준이 늦어지고 정치화되면서 한시라도 빨리 지명하고자 했던 노력이 허탈한 일이 됐다", "5대 비리의 구체적인 인사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거나 또는 후퇴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다"고 말했다.

공직자 인선 과정에서 부딪힌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되, 그것이 야당에 대한 굴복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태그:#문재인, #이낙연, #임종석, #전병헌, #김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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